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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생물학은 '남자는 외도를 하게 되어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 박세회
  • 입력 2016.08.04 12:45
  • 수정 2016.08.04 14:35

지난 8월 2일 '한국 남자가 여자보다 5배 바람을 많이 피우는 이유'라는 기사를 발행한 후 특이한 걸 발견했다.

기사의 내용은 한 잡지가 20대 이상의 남녀 1,090명을 대상으로 '외도의 경험이 있느냐' 물은 설문에서 남자의 53.7%가 '외도의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여자의 경우 그 비율이 9.6%였다는 것. 그런데, 그 기사에 '남자가 여자보다 바람을 많이 피우는 이유는 생물학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남자는 바람을 피우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어!"

정말 호모사피엔스의 수컷은 진화적으로 바람을 피우도록 태어났을까? 이런 믿음이 지배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1979년 돈 시몬스가 '섹슈얼리티의 진화'를 출간한 이후 ‘남자는 새로운 성적인 경험을 추구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는 반면에, 여자는 보편적으로 자식을 부양할 한 남자와 안정된 관계를 추구한다’는 인식이 과학적인 것처럼 지배해왔다. 이 일련의 이론들이 바탕을 두는 전제는 아래 세 가지다.

-모든 개체는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자손을 최대한 많이 번식하고 싶어 한다.

-남성은 번식을 위해 많은 정자를 별로 노력을 들이지 않고 빠르게(미국 기준 4분) 게다가 쾌락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여성의 번식은 난자를 하나 만드는 시간과 수개월의 임신 수유 등을 생각하면 장기적이고 고통스럽다. _프랭크 미엘/스켑틱 편집차장

이 기본적인 바탕 위에서 남성들은 아래와 같이 설명하기를 즐긴다.

인간 남성은 번식에 한 번 투자하는 기회비용이 적기 때문에 포트폴리오를 최대한 다양하게 구성(혼외정사를 많이) 하려 하고, 여성은 한 번의 시도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므로 제일 나은 선택으로 남성이 월급을 자신에게 투자하도록 만들기 위해 애를 쓴다._프랭크 미엘/스켑틱 편집차장

*편집자 주 : 인용된 프랭크 미엘의 기술은 이를 반박하기 위한 목적으로 쓴 '진화하는 진화심리학'의 일부입니다. 해당 기사는 한국어로 번역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진화 생물학, 특히 사회생물학의 영역에는 항상 열린 해석이 가능하다. 이런 질문을 던져 보자. '그럼 남자가 바람을 피우도록 프로그램 한 사람은 누구일까? 남자는 왜 바람을 피우게 되었나?'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인간 여성이 배란기를 알 수 없는 거의 유일한 동물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인간의 번식 행위 중 가장 특이한 점이다. 대부분의 유인원(고릴라, 침팬지 등)은 물론 원숭이들도 배란기가 되면 성기가 분홍색을 띠며 성적 수용상태가 되었음을 자각하고, 수컷에게 성기를 들이미는 등의 적극적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반면 인간 여성의 배란기는 자각이 거의 불가능하고 진단도 정확하지 않았으며 1930년이 지나서야 생리 주기를 바탕으로 배란일을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과학자들은 '은밀한 배란의 역설'이라고 표현하는데, 그 이유는 아직 생물학자들 사이에서도 지배적인 이론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불분명하다. 이 '은밀한 배란'이 왜 일어나는가를 두고 생물학자 사라 블래퍼 흘디(소수 이론)는 자신의 저서 '여성은 진화하지 않았다'에서 재밌는 이론을 내놓은 바 있다.

흘디는 인간 여성의 진화가 누가 아비인지 모르도록 배란을 숨겨 남성을 조종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많은 남성과 몰래 섹스를 한 여성은 그녀의 아이를 두고 여러 남성이 자신의 아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그만큼 많은 남성으로부터 원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흘디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교미만이 갖는 또 다른 특징을 설명할 수 있다. 바로 '은밀한 섹스 역설'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일부일처의 집단생활을 하는 모든 동물은 다른 개체의 앞에서 교미를 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난혼을 하는 침팬지는 다른 침팬지가 보는 앞에서 다섯 마리의 수컷과 차례로 교미하기도 한다. 하디의 이론은 이 은밀한 섹스의 역설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인간의 여성은 자신의 아이를 두고 여러 남성이 자신의 아이로 착각하도록 은밀하게 섹스한다'.

여성을 진화의 중심에 둔 흘디의 이론에 따르면 (진화 단계의) 남성을 바람피우는 존재로 만든 것은 바람을 피우는 (진화 단계의) 여성이다. 물론 '은밀한 배란'을 두고 흘디의 학설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제3의 침팬지'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총 6개의 학설을 내놓은 바 있다. 하나의 현상을 두고 진화 생물학은 이렇게나 많은 해석을 내놓는다.

그러니, 이쯤 되면 우리가 지금까지 논의해 온 방향이 전부 잘못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 것이다. 실상, (제대로 된) 진화 생물학자들은 진화 생물학이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바람을 피우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제3의 침팬지'를 쓴 재레드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이런 해석이야말로 진화 생물학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핵물리학을 비롯하여 사회생물학도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중략) 다윈이 진화론을 제창한 이후 진화에 대한 설명도 그런 억지의 하나로써 악용됐다. (중략) 진화적 설명은 인간의 행동 기원을 아는 데만 유효하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보노보와 침팬지가 난혼이라는 말과 인간이 난혼이어야 한다는 건 전혀 다른 말이라는 뜻. 생물학자들은 암수의 몸집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가지고 해당 사회의 번식 형태를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일부다처제의 동물들일수록 암컷보다 수컷의 몸집이 크고, 암수의 몸집이 비슷할수록 난혼이나 일부일처제의 형태가 많다고 한다. 예를 들어 수컷이 암컷에 비해 훨씬 거대한 고릴라는 한 마리의 수컷 고릴라가 무리의 암컷 모두를 거느리고 나머지 수컷들은 짝없이 외롭게 산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이를 두고 자신의 책에 '외계에서 온 동물학자가 178㎝인 나와 173㎝인 내 아내를 본다면 우리를 약간 일부다처에 속하는 종이라고 추측할 것이다'라고 썼다. 그러나 제발 오해하지 말자. 이 말은 절대 약간 일부다처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참고 도서 : '스켑틱 4호', '여성은 진화하지 않았다', '제3의 침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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