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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결 : 버니 샌더스가 '클린턴 전당대회'에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설득한 논리는 정말 완벽하다

  • 허완
  • 입력 2016.07.26 15:57
  • 수정 2016.07.26 16:05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첫날, 역시나 가장 큰 관심은 버니 샌더스의 지지연설에 쏠렸다.

우선 몇 가지 상황을 기억해두자.

'정치혁명'을 외치며 열광적인 신드롬을 낳았던 샌더스는 끝내 패배했다. 누구보다 열성적이었던 샌더스 지지자들이 느낀 실망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전당대회를 코 앞에 두고, 민주당 전국위원회(DNC)가 경선을 '편파 관리'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샌더스 지지자들은 시위를 조직했고, 꽤 큰 목소리를 냈다.

지지연설에 나선 샌더스에게 주어진 과제는 너무나도 명확했다. 실망과 낙담, 분노와 좌절에 휩싸인 자신의 열성적 지지자들이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도록 설득하는 것.

샌더스는 이 과제를 정말 훌륭하게 해냈다. 그는 단순히 감정에 호소하거나, 뻔한 당위를 주장하지 않았다. 대신 반박하기 어려운 논리를 들고 나왔다.

그의 연설을 순서대로 한 번 살펴보자. (전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기 : 우리는 정말 대단한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연단에 오른 샌더스는 첫 인사를 꺼낸 뒤 한참 동안이나 손을 흔들며 '고맙습니다'라고 말해야 했다.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난 그의 지지자들은 '버니' 피켓을 들고 흔들었고, 환호를 멈추지 않았으며, 일부는 눈물을 흘렸다. 연설을 시작하려던 샌더스는 몇 번이나 말을 멈추고 환호에 응답해야 했다.

그렇게 얼마 동안의 시간이 흐른 뒤, 샌더스는 제스처로 그들을 ‘진정’시켰다. 그러나 그 ‘진정 효과’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연설을 시작한 샌더스가 한참 동안이나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언급 없이 이런 말들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거운동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주신 수많은 미국인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연설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선거운동을 후원해주신 250만명에 달하는 미국인들, 1인당 평균 27달러씩을 모아 주신, 전례 없는 800만명의 소액기부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 대의원의 46%인 1846명의 대의원을 만들어주신, 정치 혁명에 투표해주신 130만명의 미국인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대의원 여러분들께도 이 자리에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동안의 모든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화요일 밤 있을 롤 콜(대선후보 호명 절차)에서 여러분의 투표를 기대합니다.

또한 제가 시장으로, 상원의원으로, 또 대통령 후보로 나설 수 있도록 저를 만들고 지지해주신 저의 지역구 버몬트 주민들께도 특별한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저의 가족, 아내 제인과 네 자녀, 일곱 손주들에게도 이번 경선에서 보여준 사랑과 노력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그리고 미국 전역에 계신 많은 분들께서 경선 결과에 실망하셨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저보다 실망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계신, 그리고 전국의 지지자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우리가 이뤄낸 역사적인 성취에 대해 거대한 자부심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승 : 이번 선거는 저에 대한 선거가 아닙니다

여기까지는 ‘샌더스 전당대회’를 방불케 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지지자들은 샌더스의 말이 끝날 때마다 감격에 찬 환호를 보냈다. 힐러리 클린턴은 아직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고, 모두가 ‘버니! 버니!’를 외쳤다.

그러나 샌더스는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 그는 “선거는 왔다 가는 것”이라고 말했고,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따로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미국을 전환시키기 위한 정치혁명을 함께 시작했고, 우리의 혁명은 계속될 것입니다. 선거는 왔다가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1% 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대변하는 정부, 경제적, 사회적, 인종적, 환경적 정의의 가치에 기반한 정부를 탄생시키려는 사람들의 노력은 계속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그 대열에 동참할 것입니다.

이건 최대한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번 선거는 한 번도 힐러리 클린턴이나 도널드 트럼프, 아니면 버니 샌더스, 대통령에 출마한 그 어떤 후보에 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선거는 정치적 가십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여론조사도 아닙니다. 선거 전략에 대한 것도 아닙니다. 선거자금 모금도 아닙니다. 언론들이 그렇게나 오랜 시간을 들여 다뤘던 그 모든 것들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이번 선거는 미국인들의 요구, 그리고 우리 자녀와 손주들의 미래에 대한 선거입니다.

이번 선거는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그로테스크한 수준의, 1928년 이후 최악인 소득·부의 불평등을 끝내는 것에 대한 선거입니다. 상위 10% 중에서도 1%의 사람들이 나머지 90%가 만큼의 부를 소유하고 있고, 그 1%가 최근 몇 년 간 신규 수입의 85%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은 일반적이지도 않고, 용납할 수도 없으며, 지속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이건 용납될 수 없습니다. 이건 바뀌어야만 합니다.”

전 : (우리의 모든 성과를 뒤로 하고) 공화당에 정권을 넘겨주시겠습니까?

아직도 ‘힐러리 클린턴’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샌더스는 멈추지 않고 또 한 번 화제를 전환했다. 그는 “이번 선거는 공화당의 낙수 경제를 8년 동안 겪은 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했던 7년 반 전을 기억하는 선거”라고 말했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싸움’이라는 구도를 언급한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이 연설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곳도 바로 여기다.

“공화당은 대공황 이후 우리 경제가 최악의 상황일 때 월스트리트(금융가)가 저질렀던 탐욕적이고 무모하며 불법적인 행동들을 우리가 잊어버리길 바라고 있습니다. (당시) 한 달에 8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1조4000억 달러라는 기록적인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고, 세계 금융 시스템은 붕괴되기 직전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모든 과정을 지난 7년 반동안 거쳐왔으며, 저는 우리를 그 끔찍한 불황에서 탈출하게 한 오바마 대통령과 바이든 부통령의 리더십에 감사를 표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진보를 이뤘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훨씬,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더 이뤄져야 한다는 데 동의할 것입니다.

이번 선거는 어떤 후보가 이 나라가 마주하고 있는 진짜 문제를 이해하고 있고, 그에 대한 진짜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선거입니다. 겉만 번드르르한 말이 아니라, 공포를 파는 게 아니라, 욕하는 게 아니라, 분열을 조장하는 게 아니라 진짜 해결책 말입니다.

이 나라에는 노동자 가족들과 어린이, 노인, 아픈 이와 가난한 이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를 단합시켜 강하게 만들어 줄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라티노, 무슬림, 여성, 아프리칸-아메리칸, 참전군인들을 분열시키는 리더십이 아닙니다.

이런 기준들에 따르면, 누구든 객관적인 관찰자라면 이렇게 결론 내릴 것입니다. 그녀의 견해와 리더십을 보면, 미국의 차기 대통령은 반드시 힐러리 클린턴이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선택은 너무나도 자명합니다.”

결 : 클린턴을 지지하는 건 바로 저를 지지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번 연설의 하이라이트이자, 마무리 부분이다. 그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는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복잡하거나 새로운 것들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바로 자신의 공약을 나열했다. 불평등 해소, 최저임금 인상, 여성 인권, 노동자 인권, 성소수자 인권, 기후변화 대응, 대학 등록금 면제, 의료개혁, 금융 규제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면서 샌더스는 (절대 트럼프가 아니라) 클린턴이야말로 바로 그 공약들을 지켜낼 유일한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가 트럼프를 언급할 때 청중들은 일제히 트럼프를 향해 야유를 퍼부었고, 클린턴에 대해 말할 때는 모두가 하나 되어 박수를 보냈다.

예를 들면 이런 부분이다.

“힐러리 클린턴은 누군가가 주당 40시간을 일한다면 빈곤에 시달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는 걸 이해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녀는 도로와 다리, 상하수도 시스템 같은 부서져가는 인프라를 재건함으로써 수많은 새 일자리를 만들어낼 각오가 되어 있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상대 후보인 트럼프는 그렇지 않습니다. 매우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죠. 그는 기아임금 수준인 시간당 7.25달러라는 연방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부자들을 위한 엄~~~청난 세금 감면을 지지하는 동시에 최저임금을 7.25달러 밑으로 떨어뜨릴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인물입니다. 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소립니까!”

또 이런 대목.

“이번 선거는 지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환경 위기인 기후변화, 즉 우리 자녀와 미래 세대들에게 건강하고 살 수 있는 세계를 물려줘야 할 필요성에 대한 선거이기도 합니다. 힐러리 클린턴은 우리가 대담하게 행동에 나서고 가까운 시일 내에 에너지 시스템을 전환시키지 않으면 앞으로 더 많은 가뭄과 홍수, 바다 산성화, 해수면 상승이 있을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충고를 경청하는 사람입니다. 그녀는 또한 우리가 그 과정에서 수많은 좋은 일자리를 창출해낼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요? 대부분의 공화당원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과학을 거부합니다. 그는 기후변화가 ‘거짓말’이라고 믿으며, 해결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대통령의 임무가 단기적인 화석연료 산업의 이익 대신 미래 세대를 염려하는 것이라는 점을 힐러리 클린턴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샌더스는 자신과 클린턴 사이의 ‘차이’를 감추지 않았다. 그 대신, 둘 사이의 ‘합의’와 그것이 이뤄낸 ‘진보’를 부각시켰다.

“이번 선거는 제가 만난 수많은 청년들, 대학을 졸업하면서 큰 빚을 진 이들, 또는 대학에 갈 여력이 없었던 이들에 대한 선거입니다. 경선 과정에서 클린턴 전 장관과 저는 이 문제에 집중하면서도 서로 다른 접근 방식을 취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우리는 미국의 고등교육에 대변혁을 가져올 제안에 합의했습니다. 이것은 연간 수입이 12만5000달러 이하인 가정의 모든 자녀들, 인구의 83%에 달하는 이들이 공립 대학이나 대학에 무상으로 진학할 수 잇도록 해줄 것입니다. 또한 학자금 대출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것입니다.”

“힐러리 클린턴과 제가 몇 가지 이슈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건 비밀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민주당 공약 위원회에서 우리의 두 선거 운동이 중요한 합의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어 기쁩니다. 이건 민주당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공약입니다. 민주당은 현재 월스트리트 주요 금융 기관들의 해체와 21세기판 글래스-스티걸법 통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과 같은 일자리를 없애는 자유무역을 강하게 반대합니다.”

그러면서, 샌더스는 자신의 지지자들을 이렇게 독려하는 것으로 연설을 마무리 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공약들이 민주당 상원, 하원, 힐러리 클린턴 대통령 임기 동안 시행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되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할 것입니다.”

“힐러리 클린턴은 뛰어난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오늘 밤 이 자리에서 그녀를 지지할 수 있다는 것이 저는 자랑스럽습니다.”

이보다 완벽하게 목적을 달성한 연설이 또 있었을까? 아마 없었을 것이다. 버니 샌더스는 '샌더스가 아니면 망한다'는, 일부 열성 지지자들의 호소를 거의 완벽하게 반박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차분히 '우리의 성과'를 상기시켰고, '희망'을 말했다. 그리고, 마침내 '힐러리 클린턴 대통령'을 함께 만들자고 역설했다.

그는 '패자'임에도, '승자'인 것처럼 말했다. 실제로도 그는 이날의 승자였다. 샌더스는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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