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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핵무장을 반대해야 하는가

핵무기라는 것이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닌데 미국이 즉시 안보보장 약속을 철회해 버리면, 우리는 우방으로서의 미국을 잃는 시점부터 우리 자체적으로 북한에 대한 핵억지를 갖추기까지 수 년간 안보의 공백 상태에 있게 될 것이다. 흔히들 수준 높은 원자력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한국이나 일본이 마음만 먹으면 내일이라도 당장 핵무장을 할 수 있을 것처럼 얘기한다. 그런데 이점에 있어 한국과 일본은 크게 다르다.

  • 김라미
  • 입력 2016.07.27 09:56
  • 수정 2017.07.28 14:12
ⓒ연합뉴스

지난 2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핵무장론을 제기한 바 있는 새누리당 원유철 의원 (국회 외교통일위 소속)이 또 다시 핵무장을 주장했다. 7월 25일 조선일보는 원 의원이 북한의 핵위협이 지속되고 있는데다 미국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대선 후보가 주한 미군 철수 가능성을 언급한 상황에서 한국이 "국제사회에만 기댈 게 아니라 자위권 차원의 자체 핵무장 추진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핵무장의 첫 단계로 원 의원은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한다면 자동으로 핵무기 추진에 나서겠다는 뚯을 천명하자"는, 이른바 '핵무장 트리거 (trigger: 자동조치) 선언'을 제시했다. 이러한 선언이 북한의 핵개발을 억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덧붙여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우리나라 역시 곧바로 비핵화를 추진할 것이란 점"을 분명히 하면 국제사회도 설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2년에는 정몽준 의원이 핵무장을 대선공약으로 내거는 등 영향력 있는 국회의원이 핵무장을 주장한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원 의원이 다음달 4일 '핵 포럼'을 출범시키며 핵무장 및 핵무장 트리거 선언을 적극적으로 촉구하고 있어 그의 주장의 타당성을 짚어보고자 한다.

일단 원 의원의 추측과는 달리, 우리가 핵무장을 추진할 경우 미국과 국제사회가 이를 용인 혹인 묵인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그들은 미국 핵우산의 아래에 있는 한국이 대체 왜 핵무기가 필요하느냐고 물을 것이다. 물론 최근 도널드 트럼프가 우방으로서의 미국의 신뢰도를 저하시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현 시점에서는 한국 핵무장 주장의 타당성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국제사회는 한국의 핵무장이 국제 비확산 규범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 우려할 것이다. 특히 한국이 1975년 핵무장을 지양할 것을 약속하며 가입했던 NPT (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핵비확산조약)에서 탈퇴를 하게 될텐데 이로 인해 NPT 규범이 약화되는 것은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무장을 눈감아 주면 다른 나라들의 핵무장을 저지하는데 정당성이 떨어질 것에 대해서도 걱정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핵무장이 일본의 핵무장을 초래할 가능성과 이로 인해 가뜩이나 고도로 군사화되어 있는 동북아시아 지역에 미칠 안보 위협에 대해서도 우려가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국제사회가 우리의 핵무장을 양해해 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미국이나 국제 사회 몰래 핵무기를 개발할 수도 없다. 한국은 1975년 발효된 IAEA (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국제원자력기구) 안전조치 (Safeguards)과 2004년 발효된 추가 의정서 (Additional Protocol)에 의거, 국내에 존재하는 모든 핵시설에 대해 면밀한 사찰을 받는다. 소수의 한국 핵과학자들이 아주 작은 규모로 감행한 플루토늄 추출 실험 (1981년)과 우라늄 농축 실험 (2000년)이 IAEA에 의해 적발된 점도 한국이 국제 사회를 속이고 핵무장을 할 수는 없을 것임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미국과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핵무장을 추진할 경우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미국은 당장 미국이 약속한 핵우산을 접고 주한 미군도 철수 하겠다고 위협할 것이다. 핵무기라는 것이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닌데 미국이 즉시 안보보장 약속을 철회해 버리면, 우리는 우방으로서의 미국을 잃는 시점부터 우리 자체적으로 북한에 대한 핵억지를 갖추기까지 수 년간 안보의 공백 상태에 있게 될 것이다. 흔히들 수준 높은 원자력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한국이나 일본이 마음만 먹으면 내일이라도 당장 핵무장을 할 수 있을 것처럼 얘기한다. 그런데 이 점에 있어 한국과 일본은 크게 다르다. 우선 핵무기를 만드는 데 가장 큰 장벽은 농축 우라늄이나 플루토늄 등 핵 연료를 만드는 일인데, 일본은 이미 플루토늄을 만들 수 있는 핵 재처리 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핵연료를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은 있으나 한미원자력협정을 통해 미국의 동의 없이 핵연료 시설을 만들지 않기로 약속했다. 다시 말해 한국은 미국의 반대로 인해 핵연료 생산 시설 및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이미 플루토늄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경우에도 핵탄두를 만들고 또 이 핵탄두를 미사일에 탑재할 만한 크기로 소형화시키는 등 사용가능한 무기로 만드는 데까지 적어도 수 개월 이상이 걸린다는데, 핵연료부터 만들어야 하는 우리로서는 수 년이 걸릴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우리는 미국은 이미 떠나고 우리의 자주 국방 능력도 아직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북한의 핵위협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과연 우리의 핵무장이 우리를 더 안전하게 해 주는 것일까?

우리의 핵무장은 심각한 경제적 문제도 초래할 것이다. 우선 UN 안전보장이사회는 우리의 핵무장을 막기 위해 경제 제재를 가할 것이고,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 우리의 원전 가동도 비상이 걸릴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은 핵연료 생산시설이 없으므로 연료를 미국으로부터 수입해 오고 있는데, 한국의 핵개발이 한미원자력협정을 위반하는 것이므로, 동 협정 11조에 의거 미국은 우리에게 핵연료 공급을 중단할 것이다. 물론 미국 외에도 러시아, 프랑스, 유럽합작회사인 Urenco Group 등이 핵연료를 공급하지만, 원전공급국그룹 (Nuclear Suppliers Group)이라는 국제 단체가 NPT를 위반하고 핵무기를 개발하는 국가들에게 핵연료를 공급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핵연료 수입이 어려워 질 것이다. 이로 인해 국내 전력생산의 30% 이상을 책임지고 있는 원자력 공급이 중단 될 것이고 이것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다.

이와 같이 막대한 외교적, 안보적, 경제적 비용을 비추어 볼 때 핵무장은 이성적인 선택이 아니다. 득과 실을 따져 봤을때 핵무장으로 초래될 실이 득보다 훨씬 크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도 힘들 것이다. 물론 북한이 핵실험을 한 직후에는 국민 여론이 핵무장을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기도 한다.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Gallup Korea에서 실행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64%가 한국의 핵무장을 지지한다고, 28%만이 반대한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미국이 안보 보장 약속을 철회하고, 국제사회의 경제 제제가 시작되고, 전기 공급이 중단되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보자. 과연 우리 국민들 대다수가 이렇게 큰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핵무장을 지지할까? 우리의 안보환경이 크게 변화하지 않는 이상 한국의 핵무장의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혹자는 우리의 핵무장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원 의원이 제시한 '핵무장 트리거 선언'은 해볼 만하지 않나 생각할 수 있다. 필자의 의견은 다르다. 일단 필자는 우리 정부가 북한의 핵실험 감행시 우리가 자동적으로 핵무장을 하겠다는 선언을 할 경우 북한의 핵실험을 억지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가정에 동의하지 않는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핵무장이 우리 국익에 미칠 악영향이 크고 따라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우리의 핵무장 트리거 선언은 신빙성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전략은 효용성이 없다.

문제는 이 전략이 효용성이 없을 뿐 아니라 역효과만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만일 북한이 우리 정부의 핵무장 트리거 선언에도 불구하고 5차 핵실험을 감행할 경우,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핵무장을 안하게 혹은 못하게 된다면, 그 이후부터는 우리 정부의 위협은 신빙성을 잃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최후통첩 성격의 발언을 할 때는 그 말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경우에는 대가가 따르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한 예로, 오바마 대통령이 2012년 8월 시리아 정부의 화학무기 사용을 '레드라인(금지선)'으로 규정하고도 그 이듬해 시리아 정부군이 사린 가스를 사용했을 때 강경하게 대처하지 않아 미국의 신뢰성을 떨어뜨렸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한국의 핵무장 트리거 선언도 이러한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물론 핵무장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국회에서 주류는 아니다. 핵무장 트리거 선언의 경우 새로운 주장이라 좀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러한 전략이 채택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원 의원과 같이 국회 핵심인사가 핵무장 주장을 제기하면 해외에서는 이를 주목하며 우려를 표명한다. 한국은 다년간의 노력의 결과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자리매김했다. 뿐만 아니라, 2012년 세계에서 두번째로 핵안보정상회의(Nuclear Safety Summit)를 서울에서 개최했고, 현재는 원자력공급국그룹의 의장국을 맡고 있는 등 국제사회의 핵비확산 노력에도 앞장 서 왔다. 무책임하게 핵무장을 운운하는 것이 우리가 상당한 외교력과 비용을 들여 쌓아 온 우리의 국제사회에서의 입지에 해가 될까 걱정이다.

자주 국방은 우리의 염원이다. 국가의 가장 큰 의무는 국민의 안보를 지키는 것인데, 변화 무쌍하고 냉철한 국제관계에서 자체적으로 안보를 확립하고 싶지 않은 국가와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무모하게 자주 국방을 외치는 것이 오히려 우리의 안보를 해치는 것일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핵무장과 핵무장 트리거 선언에 반대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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