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2022년 06월 11일 12시 59분 KST

[인터뷰] "함께여서 즐거웠습니다" 종로 이웃 성소수자 일동의 추모 현수막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시대 참어른이었구나' 싶어 마음이 뭉클해진다

참, 멋있는 어른이었다.

오계옥 / 김대현 제공
고 송해 / 종로 이웃 성소수자 일동의 추모 현수막 

‘체 게바라, 마틴 루터 킹, 안네 프랑크, 제임스 딘, 엘비스 프레슬리….’

공통점이 전혀 없을 것 같은 이 사람들을 하나로 묶은 건, 바로 ‘송해 선생님의 나이를 체감해보자!’는 온라인 밈이었다. 송해는 2018년 <문화방송>(MBC) 라디오 프로그램 <싱글벙글쇼>에 출연해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송해 옹 나이 체감 게임’을 직접 즐기기도 했다. 이날 그는 인류 최초로 달에 간 닐 암스트롱,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이 자신보다 늦게 태어난 ‘동생들’이란 사실을 맞췄다.

최근 송해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뒤, 온라인에서는 송해의 또 다른 면모가 알려지며 누리꾼들을 놀라게 했다. 시작은 한장의 사진. 서울 지하철 종로3가역 5번 출구 옆 송해 동상 옆에 내걸린 현수막이었다. “송해 선생님, 안녕히 가십시오. 함께여서 즐거웠습니다”라는 문구가 담긴 추모 현수막에는, “종로 이웃 성소수자 일동”이란 명의가 함께 쓰여있었다.

뉴스1
생전의 모습 

일부 누리꾼은 송해와 성소수자의 ‘연결고리’를 찾아 나섰다. 곧 송해가 2018년 <대화의 희열>(한국방송2)에서 퀴어문화축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발언이 ‘재발견’됐다. 송해는 당시 40여년 전 개인 사무실을 낸 종로 낙원동 일대를 ‘제2의 고향’으로 소개했다. 그는 또 종로의 “새로운 문화”로 퀴어문화축제를 화제에 올리며, “거기에 가면 배울 게 많다. 이런 변화를 우리가 체험하는구나. 참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이런 내용을 접한 누리꾼들은 “정말 열려있는 분”, “참 어른”이라며, 다양성을 포용하는 모습에 감탄했다. 한 누리꾼은 “연세도 있으신 분이 열린 마음 갖고 사시기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이 옹졸한 건 나였구나”라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현수막을 내건 ‘종로 이웃 성소수자’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한겨레>는 10일 현수막을 게시한 권순부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사회연대국장과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권 국장은 “(송해 선생과) 개인적인 인연은 없지만, 종로에 좀 다녀본 사람들이라면 으레 그렇듯, 성소수자들도 낙원동 거리에서 선생을 자주 마주쳤기에, 마치 동네 어르신 같은 친근함을 가지는 이가 많다”며, “부음을 듣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로 ‘뭐라도 하자’ 싶어 현수막을 건 것”이라고 말했다. 권 국장이 개인소셜미디어(SNS)에 현수막 제작을 제안하고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지역과 업종,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연령대가 다양한 10여명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고 했다.

김대현 제공
종로에 내걸린 추모 현수막 

ㅡ대한민국에서 나이 드신 원로 연예인분이 돌아가신 경우가 처음이 아닌데요. ‘성소수자 이웃’들이 길거리에 공개적으로 추모 현수막을 게시한 건 이례적인 풍경 같아요. 그것도 ‘최고령 현역’이셨던 95살 송해 선생님을 향한 추모 메시지여서 ‘무슨 인연일까’ 의아해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추모 현수막을 만들게 된 이유를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권순부(이하 권) “종로는 한국 성소수자에게 남다른 의미를 갖는 공간입니다. 1970년대 이래로 많은 남성 동성애자들이 극장과 주점 등 낙원동 일대의 다양한 공간으로 모여 (종로는) 명실공히 게이들의 해방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국내 최고(最古)의 성소수자 인권단체인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가 자리한 곳이기도 하죠. 종로에 좀 다녀본 사람들이라면 으레 그렇듯, 성소수자들도 낙원동 거리에서 선생(주로 막걸리를 한 잔 걸치신)을 자주 마주쳤기에, 마치 동네 어르신 같은 친근함을 가지는 이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부음을 듣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로 ‘뭐라도 하자’ 싶어 현수막을 건 것입니다.”

ㅡ추모 현수막 명의로 ‘종로 이웃 성소수자 일동’이라고 쓴 건 어떤 의미가 있나요?

권 “종로의 이웃이라는 말은 꼭 넣고 싶었습니다. 성소수자들은 지난 50여년간 종로에서 희로애락을 함께한 사람들이니까요. 성소수자 ‘일동’이라는 표현이 과한 건 아닐까 잠깐 고민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에게 다들 한때라도 위안받은 적이 있으리라 싶어 그냥 저질렀습니다.

또, 한국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대표하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라는 연대체가 있지만, 선생 추모가 운동단체만의 몫은 아니며, 바쁜 활동가들에게 일을 늘려주고 싶지 않아 그냥 (개별로) 진행했습니다.”

KBS
송해가 퀴어 문화 축제에 대해 했던 말

권 국장의 말처럼, 종로는 성소수자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공간이다. 1970년대 중반 개관한 파고다극장이 ‘게이들의 성지’로 불리며 성행하면서 1970년대 후반 게이바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게이바를 포함한 관련 업소는 점차 늘어서, 1990년대 이태원이 부상하기 전까지 국내 최대의 게이 놀이공간으로 자리했다. 2008년에는 국내 최초로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국회의원 후보가 종로구에 출마한 일도 있었다.

1994년 국내 최초로 남성 동성애자 인권 운동을 위해 결성된 단체인 ‘친구사이’도 1998년 종로 낙원동에 둥지를 틀고 현재까지 ‘터줏대감’으로 남아있다. 송해가 운영하는 ‘원로연예상록회’ 사무실과 ‘친구사이’ 사무실은 약 280m 거리. 이종걸 친구사이 사무국장은 “저는 2009년부터 (낙원동) 사무실에서 상근하는 활동가로 일했기 때문에, 간혹 송해 선생님을 길거리에서 뵙거나 식사하시는 모습도 보거나 했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방송이 아니더라도 항상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법, 타인과 행복하게 잘 지낼 수 있는 법을 고민하는 분으로 보였다”며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위로와 힘을 받았고 그런 순간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종로3가역 5번 출구 옆 '송해길' 입간판 주변에 추모 꽃바구니 등이 놓여있다. 

ㅡ현수막 게시한 뒤에 직접 목격하시거나 주변에서 전해온 반응은 어땠나요? 과거에 종로 일대에 성소수자 관련 현수막을 게시했을 때 이틀도 지나지 않아 훼손된 일도 있었다고 알고 있어요.

권 “뒤늦게 소식을 듣거나, 지나가며 본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대신 전해주어 고맙다고 연락을 많이 해왔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소개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고인께서 일전에 성소수자들의 운동을 옹호한 방송 내용(2018년 <대화의 희열>) 등과 함께 화제가 되더군요.”

ㅡ송해 선생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권 “실향민인 선생께서는 종로를 ‘제2의 고향’으로 삼으셨지요. 낙인과 차별에 지친 성소수자들 가운데도 일상의 시름을 잠시 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종로를 마음의 고향으로 삼은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종로를 함께 고향 삼아 이웃으로 지낸 지난 세월, 함께여서 즐거웠습니다. 선생님 안녕히 가십시오.”

송해가 성소수자들한테만 ‘이웃’으로 기억되는 건 아니다. 2016년 종로문화원은 종로 2가에서 낙원상가 앞까지 240m 거리를 ‘송해길’로 이름 붙였다. 수십 년 동안 종로구 낙원동을 거점으로 활동해온 송해를 예우하면서, 대중문화사에 오래 남을 그의 공을 기리고자 하는 취지였다.

10일 오후 방문한 서울 지하철 종로3가역 5번 출구 옆 송해 동상, ‘송해길’ 입간판 근처에는 커다란 근조 화환과 꽃바구니가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수많은 ‘종로 이웃’들이 그를 추모했고, 다른 사람들도 추모차 종로를 찾아왔다. 경기도 광명시에서 송해를 추모하고자 일부러 ‘송해길’을 찾아왔다는 이경미(69)씨는 송해 동상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이씨는 ‘종로 이웃 성소수자’들이 내건 현수막에도 눈길을 보냈다. 그는 “(현수막에 쓰인) ‘성소수자’의 뜻이 뭔지 몰라서, 나중에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내겐 낯선 사람’도 주변 이웃처럼 여겨지도록 유쾌하게 품어 안았던 송해의 <전국노래자랑>이 그랬듯, 송해는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만남의 장’을 제공하고 있었다.

뉴스1
10일 오전 고 송해 발인식 

송해는 2018년 <대화의 희열>에서 특별한 일정이 없을 때 낙원동 사무실로 출근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 계통(대중문화예술인) 분들이, 한때는 만인의 박수를 받고 영광을 누렸다 그럴까, 그런데 그게 다 시들고 나면 잘 안 나오려고 해요. 사람들 만나는 걸 그렇게…(원하지 않아요). 내가 연예계에서도 선배 축에 들다 보니까 (내가) ‘모여봅시다’ 하면 (그래도 집 밖에 나와서) 낮에는 마작도 하고 바둑도 두고 고스톱도 치고.” 그는 또 사무실이 자리 잡은 종로 낙원동의 매력으로, “인심이 후해서 밥값이 싸다”는 점과 옛것이 계속 보존된 풍경 등을 꼽았다.

종로의 예스러움을 아끼는 한편, 시대가 바뀌며 거리로 나온 퀴어들의 축제를 새로운 문화로 받아들인 송해는 종로의 ‘핵인싸’(인맥이 넓고 트렌드에 강한 사람)였다. 대중에게 잊히거나 배제되기 쉬운 존재들을, 방송이 아닌 일상에서도 기꺼이 이웃으로 대했다. 이종걸 친구사이 사무국장은 “종로는 성소수자만이 아니라 노인, 쪽방촌 주민 등 사회적 약자들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다. 종로의 다양성, 소수자성에 대해 송해 선생님도 잘 알고 계셨을 거란 생각이 든다”며, “‘송해길’이 지닌 다양성, 포용성을 잊지 않고 이 공간을 계속해서 잘 꾸려나가겠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