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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때녀' 심판 오현정이 말하는 K리그에 여성 축구 심판이 18년째 없는 씁쓸한 이유(인터뷰)

모두가 말하지 않지만, 여성 축구 심판을 바라보는 편견이 분명 존재한다.

'골 때리는 그녀들' 주심 오현정. 15년차 베테랑 심판이다. 
'골 때리는 그녀들' 주심 오현정. 15년차 베테랑 심판이다.  ⓒSBS/오현정

모두 여자다. 공을 골문으로 몰고 가는 공격수, 이를 막는 수비수, 골대 앞을 지키는 키퍼에, 흥분한 선수들을 가라앉히는 심판까지. SBS 축구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의 운동장에는 여성들이 우뚝 서 있다. 성공적으로 끝낸 시즌1에 이어 시즌2까지 인기리에 방송 중인 ‘골때녀’의 최고 매력은 진심으로 축구를 하는 여자들의 모습이다. 우당탕탕 골때녀들의 경기 시작과 끝에는 15년차 베테랑 심판 오현정이 있다. 

'골때녀' 주심 오현정.
'골때녀' 주심 오현정. ⓒSBS

‘골때녀‘에서 오현정 심판은 거친 플레이를 하는 선수에게 단호히 주의를 주고, 축구 규칙이 아직은 낯선 선수들에게는 규칙을 친절히 설명해주기도 한다. ‘축알못’ 시청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지난 17일 허프포스트코리아 사무실에서 오현정 심판을 직접 만났다.

오현정 심판.
오현정 심판. ⓒ강현욱/스튜디오 어댑터

- 국내에는 4명뿐인 여자 국제 심판(주심)으로 알고 있어요. 대단한 커리어인데 예능인 ‘골때녀’에는 어떻게 합류하신 거예요?

= 사실 제가 ‘슛돌이’ 심판 출신이에요. (2005년부터 KBS가 방송했던 ‘날아라 슛돌이’는 7세 미만 축구 유망주들의 성장 서사를 담은 예능이다. 축구 국가대표 이강인이 3기 슛돌이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축구 심판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으로 방송에 출연했어요. 저도 그랬지만 축구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심판의 역할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어요. 심판이라는 직업이 가지는 숙명 때문이기도 한데, 심판이 드러나지 않는 경기일수록 심판이 ‘열일’한 거란 말이죠. 열심히 하면 할수록 티가 안 나는 아이러니한 직업이에요. 

 

- 축구에 꽤나 관심이 있는 저도 여성 축구 심판이 생소하긴 했어요 

= 그럴 만도 해요. 국내 남자 프로 축구 K리그에서 여성 심판 자체를 찾아보기 어려워요. 축구팬들이 가장 많이 보는 K1리그에는 여성 심판이 15년 넘게 없어요. 국내 최초로 여자 축구 국제 심판을 했던 임은주 심판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에요.

 

여자 축구 심판에게 필요한 ‘기회’

올해 대한축구협회가 발표한 K1~K4리그 심판 128명 중 여성은 7명뿐이다.  이마저도 하위 리그인 K4에 집중돼 있다. 오 심판 또한 K4에 배정됐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여성 축구 심판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20년 1명 → 2021년 5명 → 2022년 7명이다.

하지만 벽은 여전하다. 지난 1999년 여성 축구 심판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남자 프로 축구 1부 리그 심판으로 뽑힌 임은주 심판이 2004년 은퇴한 뒤로 K1에는 여자 심판이 아예 없다. 임은주 심판 기용 역시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둔 시점에 분위기 조성을 위한 ‘이벤트’였다는 분석이 많다.

오현정 심판.
오현정 심판. ⓒ강현욱/스튜디오 어댑터

- 아무래도 축구가 90분 이상 뛰어야 하는 스포츠니까 체력적인 문제 때문에 여자 심판들을 보기 힘든 건가요?

= 체력적인 문제라고만 보기 힘들어요. 왜냐하면 저만하더라도 남자 프로 축구 심판들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체력 테스트를 거쳤으니까요. 대한축구협회 심판국에서 매년 초에 K리그에 기용할 심판 명단을 발표하고 경기마다 배정을 하는데요. 체력뿐만 아니라 실전에서 보여주는 경기 운영 능력을 주요하게 심사하는 것으로 알아요. 경기 배정 자체가 쉽지 않은 여성 심판들은 평가받을 기회 자체가 적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승급도 어려워요. 안 하는 게 아니고, 못 하는 게 아니고, 발판이 없었던 거죠.

심판 선발과 경기 배정 시스템의 한계를 지적한 오 심판은 여자 축구 심판들을 바라보는 축구계 내부의 편견도 부정할 수 없다고 탄식했다.

″‘여자 심판이 어떻게 남자 리그에서 뛰냐?’라는 분위기가 느껴져요. 다들 말은 아니라고 하지만 말이죠”

경기를 진행하는 오현정 심판.
경기를 진행하는 오현정 심판. ⓒ오현정 제공

오 심판이 전한 축구계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는 14년 전 인터뷰가 있다. 김용대 전 대한축구협회 심판 부위원장은 K리그에서 여성 심판을 볼 수 없는 이유를 묻는 오마이뉴스에 ”남자 심판들이 경기를 운영할 때도 선수들의 험한 말과 항의를 견뎌야 하는데 여자 심판의 경우는 더 어려울 것”이라며 “K리그에서 앞으로도 여성 심판이 호각을 불기는 힘들 것 같다”라고 답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낮은 수준의 발언이다.

 

- K1리그에서 여성 축구 심판이 ‘0명’이라는 건 정말 충격적인 숫자예요. 그래도 한두 명은 있겠지 싶었거든요.

= 그나마 다행인 건 지난해 취임한 문진희 심판위원장이 여성 축구 심판들에게도 기회를 주겠다는 입장이에요. 문 위원장은 심판 출신인데, 남자분이지만 여자 심판들에게 주눅 들지 말고 도전하라고 항상 말씀하시죠. 이렇게 조금씩 분위기를 바꿔가다 보면 ‘조만간 여성 심판 중에서도 K1에서 뛰는 사람이 나올 수 있겠다’라는 기대감 같은 게 생겨요. 그게 저라면 참 좋겠고요.

2019 WK리그 인천현대제철과 창녕WFC 경기에서 거친 태클을 한 선수에게 옐로카드를 주는 여성 심판의 모습. 2019.8.22
2019 WK리그 인천현대제철과 창녕WFC 경기에서 거친 태클을 한 선수에게 옐로카드를 주는 여성 심판의 모습. 2019.8.22 ⓒ뉴스1

- 한국의 여자 축구 심판들은 어디에서 활동하나요?

= 주로 WK리그(국내 여자 프로 축구)에 있어요. 참 안타까운 건 WK리그에서 K리그로 넘어오는 여자 심판들이 드물다는 점이에요. 대한축구협회 소속된 심판들은 연봉이 아니라 경기 수당을 받거든요. WK리그가 열악하다 보니 선수들은 물론이고 심판까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요. 프로 축구 경기는 보통 주말에 열리는데 매주 한 경기를 꾸준히 소화한다고 해도 WK리그 심판들은 월 100만원도 벌지 못해요. 속상하지만 그렇게 축구장을 떠나는 여성 심판들이 많아요. 사실 이건 여자 심판들만의 문제는 아니고, 하위 리그에서 축구 심판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겪는 아주 심각한 현실이에요.

 

심판은 외로운 퍼포먼스

인도에서 열린 여자 아시안컵 대회에 참여했던 오현정 심판. 2022.1
인도에서 열린 여자 아시안컵 대회에 참여했던 오현정 심판. 2022.1 ⓒ오현정

- 지금부터는 심판들의 직업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해볼게요. 축구를 즐기는 사람조차도 축구 심판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든요

= FIFA(피파, 국제축구연맹)가 만든 축구 규칙이 17조까지 있어요. 전 세계에서 이 규칙을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축구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돌발 상황을 담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축구 규칙을 기준으로 심판이 파울 여부를 따지죠.

 

- 판정이 주관적이라는 게 영 틀린 말은 아닌 거네요? 마치 법관과도 같은 심판이 경기장에 1명이 아닌 이유와도 연결되겠어요.  

= 맞아요. 축구 경기에는 총 4명의 심판이 있어요. 경기장 안에서 경기를 진행하는 주심 1명, 경기장 사이드에서 주심을 돕는 부심 2명, 그리고 경기장 밖 대기심 1명까지 ‘원팀’이라고 할 수 있죠.

오현정 심판의 유니폼.
오현정 심판의 유니폼. ⓒ강현욱/스튜디오 어댑터
가지런히 정돈된 심판 물품.
가지런히 정돈된 심판 물품. ⓒ강현욱/스튜디오 어댑터

- 심판에게 가장 중요한 건 뭐예요?

= 체력을 빼놓을 수 없어요. ‘선수도 아닌데 웬 체력?’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축구 선수들은 포지션이 정해져 있잖아요? 축구 심판은 포지션이 따로 없어요. 저희끼리는 ‘존(zone)’이라고 하는데 주심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최대한 볼에 가까이 자리하고 있어야 해요. 골문과 골문 사이 넓은 운동장 전체가 심판이 서 있어야 할 존이죠. 경기가 끝나면 체중이 2~3kg 줄어들 정도로 운동장을 쉴 새 없이 뛰어다녀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프로 심판들은 매일매일 체력 단련을 하고, 그 기록을 피파와 대한축구협회에 보냅니다. 저 같은 경우는 국제 심판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영어도 항상 공부하고 있어요.

VAR 판독을 알리는 안내판. 
VAR 판독을 알리는 안내판.  ⓒNurPhoto via Getty Images

- 심판에게 실례가 되는 질문일 수도 있지만, ‘오심’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심판도 사람이니까 실수를 할 때가 있죠?

= 절대 하고 싶지 않지만 그럴 때가 있죠. 하나 분명히 하고 싶은 건 오심임을 알고도 오심을 하는 심판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아니, 없어야 합니다. 축구 경기는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심판이 순간적으로 판단을 잘못할 수 있지만 경기 중에는 그 판단이 최선이라고 결론을 내린 거예요. 최근에는 VAR(Video Assistant Referees)이 도입돼 오심 가능성을 줄이고 있어요. 

 

- 자신의 판단으로 경기가 좌우되니 심판에게는 1분 1초 시험의 연속일 것 같아요

= 선수와 감독은 물론이고 관중까지 심판의 행동 하나하나를 주목해요. 긴장이 안 될 수가 없죠. 그러나 티를 낼 수는 없어요. 심판이 흔들리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면 판정에도 신뢰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에요. 심판들이 지나치게 무표정인 이유가 여기 있는데, 그런 점에서 저는 심판 역할을 일종의 퍼포먼스라고 생각해요. 심판은 경기장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현재 공정한 경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온몸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욕을 먹을 때도 많죠. 최근에는 개인 SNS에 악플을 다는 사람들도 많아서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심판들도 많습니다.

오현정 심판.
오현정 심판. ⓒ강현욱/스튜디오 어댑터

- 듣다보니 축구 경기는 선수들만 뛰는 스포츠가 아닌 것 같아요. 축구 심판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요?

= 심판이 드러나지 않는 경기가 베스트인 경기지만, 축구 경기에 심판이 존재한다는 분명한 사실을 잊지 않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심판도 사람인지라 인정받고 싶거든요.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심판들도 박수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축구장 안에 존재하는 모두가 존중받아야 우리가 원하는 재미있는 경기도 가능할 테니까요!

자료사진. 
자료사진.  ⓒPaul Tamas / 500px via Getty Images

월드컵보다 먼저 정립된 게 축구 규칙이다. 축구 규정과 경기 방식을 결정하는 국제 축구 평의회(IFAB)는 FIFA보다도 먼저인 1886년 만들어졌다. 국제 축구 평의회는 축구 심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 경기 규칙을 시행하는 심판을 늘 보호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경기에 임하는 양 팀의 지도자와 주장 선수는 심판과 심판진이 내린 결정을 존중해야 할 분명한 책임이 있습니다” 축구장에서도 역시 존중이 미덕이다.  

도혜민 기자: hyemin.do@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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