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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김태호 PD의 MBC 퇴사를 응원하며

김태호 PD가 예능 레전드가 되기까지.

김태호 PD와 유재석.
김태호 PD와 유재석. ⓒMBC

″오래오래 해먹어요 우리...”

김태호 PD와 유재석이 손을 맞잡고 가수 이문세의 ‘소녀’를 함께 부르던 그 시절, 우리는 ‘무한도전‘의 끝을 감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때가 2010년 10월이었다. 8년 뒤 어느 토요일 MBC ‘무한도전’은 563회를 마지막으로 종방했다.

 

도무지 끝나지 않는 ‘무도 유니버스’

그러나 ‘무도 유니버스’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밥을 먹을 때나 잠이 들기 전에 무도를 본다. MBC 유튜브에 과거 무도 레전드 방송이 끊임없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볼 게 넘쳐나는 요즘에도 무도를 보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아이러니. 그 중심에는 호태, 김태호 PD가 있다. (호태는 유재석이 김태호 PD를 부르는 애칭) 27년 경력의 베테랑 예능 작가인 김성원 작가는 ”한국 예능은 ‘무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여기에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김태호 PD의 사원증.
김태호 PD의 사원증. ⓒ김태호 인스타그램

돈보다 즐거움

2001년 MBC에 입사한 김태호 PD는 올해를 끝으로 퇴사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20년 꽉 채운 근속이다. 김태호 PD는 그동안 수차례 퇴사설이 불거졌다. 한 번은 종편 방송국에서 30억원을 제안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김 PD는 지난 2012년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액수가 부풀려졌다. 어딜 가더라도 지금 이 즐거움을 대체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결국 종편에서는 그런 것을 줄 수 없으니 돈을 제시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수많은 직장인들의 이직 사유가 ‘돈’인 것을 감안할 때, 김태호 PD의 대답은 정말 놀랍다. 

김태호 PD는 거액의 스카우트 제안에도 MBC를 지켰기에 그의 진짜 퇴사 소식은 ‘마침내 올 것이 왔구나‘라는 인상을 준다. 김태호 PD는 ”입으로는 매주 ‘무한~도전!’ ‘놀면 뭐하니? 뭐라도 찍자!’ 늘 새로움을 강조해왔지만, ‘나는 정작 무슨 변화를 꾀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점점 머릿속을 채워갔다”라며 새로운 변화를 위해 퇴사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실패, 실패, 실패

믿기 어렵지만 자타 공인 ‘예능 레전드’ 김태호에게도 숱한 실패의 역사가 있었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SNL 주현영 인턴기자처럼 김태호 PD 또한 잘 모르고 실수하던 때가 있었다.

김태호 PD는 MBC 입사 후 ‘섹션TV 연예통신‘, ‘느낌표‘,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 내로라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맡았는데 연출자로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정해진 대로 찍고 편집하고 방송하면 되는 프로그램들로 이미 정상궤도에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참 PD가 더하거나 덜하거나 할 수 있는 선택지도 그다지 없었을 것이다. 김태호 PD가 모든 키를 잡았던 입봉작 ‘미스터 요리왕(2005)’은 조기 종영했다. 이 프로그램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김 PD는 씨네21과 인터뷰에서 당시를 ”마늘과 쑥을 먹던 시기”라고 표현했다.

'무한도전'에 등장했던 김태호 PD의 이력서. 무도가 유일한 경력이다. 
'무한도전'에 등장했던 김태호 PD의 이력서. 무도가 유일한 경력이다.  ⓒMBC

동굴 같은 편집실에서 버티고 버티던 김태호 PD는 운명처럼 ‘무한도전‘을 만났다. 2005년 처참한 시청률로 폐지 위기에 놓였던 무도를 김태호 PD가 자처해 맡기로 한 것이다. 무도 멤버들은 모두가 버리고 떠날 때 구세주처럼 김태호가 나타났다고 기억하지만, 사실 김 PD는 ‘유재석과 친해지기 위해 잠시 쉬어가는 느낌으로 무도를 맡았다’라고 털어놓은 바 있다. 어쨌거나 무도와 김태호 PD는 만나게 됐다. 김태호 PD는 반드시 지켜야 할 포맷도, 시청률도 없었던 무도를 이전에 없었던 스타일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무한도전’의 탄생

김태호 PD는 대한민국 예능 역사상 최초로 출연자 모두에게 각자의 카메라를 투입했다. 한 카메라로는 놓칠 수밖에 없었던 출연자들의 캐릭터를 살리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에 대해 김태호 PD는 ”야외에서 노홍철씨가 작게 말하는 멘트가 아주 시적이고 창의력 있는데 풀숏에서는 소화가 안됐다. 예능하면 무조건 카메라 한대 주던 때였는데 무조건 일곱대 이상은 있어야 한다고 고집해서 덕분에 인사위원회에 회부될 뻔하기도 했다”라고 설명했다.

‘무한도전’은 일정한 포맷을 유지하지 않았고, 매주 아이템을 소화하면서 말 그대로 무한한 도전을 했다. 이 기조는 프로그램이 종방할 때까지 이어졌는데 김태호 PD는 과거 인터뷰에서 ”먼저 시작한 입장에서 저희가 한 아이템은 다른 프로에서 할 수 있지만, 그 반대는 허용되지 않아요”라는 신념을 강조하기도 했다. 

촬영 장소가 수없이 바뀌는 동안에도 불변하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예능 본연의 웃음. 김태호 PD는 ”다른 건 몰라도 ‘무한도전‘은 웃음 rpm(분당 회전수)이 높아야 해”라고 말한다. ‘해피선데이-1박2일‘이나 ‘일요일이 좋다-패밀리가 떴다’는 앞에서 천천히 흐르다가 마지막에 웃음을 줘도 되지만 우린 1분에 2~4번은 웃음을 줘야 한다는 게 있다”라고 했다. 

 

사과마저 무도처럼 

무도 멤버들의 사과쏭.
무도 멤버들의 사과쏭. ⓒMBC

인기가 점점 높아지면서 무도는 종종 논란에 휘말렸다. 지난 2009년 뉴욕 특집에서는 멤버들의 서툰 영어 실력이 도마 위에 올랐는데, 일부 시청자들이 미국 한복판에서 미국인들에게 어설픈 영어로 대화를 시도하는 멤버들이 보기 창피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지금 생각하면 한국에서 나고 자란 멤버들이 영어를 못하는 일이 무슨 문제냐 싶겠지만, 그때는 이게 문제가 됐다. 무도의 대처는 어땠을까. 무한도전은 ”무식했니. 무식했다. 무한도전. 좀 더 노력할게요~????”라는 노래를 부르며 논란을 종식시켰다. 이때부터였을까. 별 걸 다 트집 잡는다는 의미에서 ‘무도 시어머니’라는 말도 생겨났다.  

 

‘동아일보’ 최종 합격했던 김태호

김태호 PD가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에서 열린 MBC 새 예능 프로그램 ‘같이 펀딩’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9.8.14
김태호 PD가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에서 열린 MBC 새 예능 프로그램 ‘같이 펀딩’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9.8.14 ⓒ뉴스1

MBC하면 무한도전이 생각날 정도로 MBC 내 무도의 입지는 실로 대단했다. 무도가 MBC를 먹여살린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김태호 역시 MBC 입사를 희망하는 일개 취업 준비생에 불과했다. 다만, 대부분의 취준생들과는 좀 다르긴 했다. 20년 전 MBC 면접 당시 김태호는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채 피어싱을 하고 세미 정장 차림이었다. 이후 김태호 PD는 ”입사한 후에 면접관이었던 부사장이 ‘자네, 특이해서 뽑았어‘라고 말했다”라며 ”사실 면접에 갔는데 ‘왜 PD에 지원했는지‘,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은지’ 등에 대한 질문은 없고 ‘미용실은 어디를 이용하냐’라며 스타일에 대한 것만 물어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라고 회고했다. 

사실 김태호는 PD가 아닌 기자가 될 뻔했다. 취준생 김태호는 MBC에 지원하기도 전에 동아일보에 최종 합격했다. 글을 쓰는 건 싫었다는 김태호는 출근 첫날 정장을 입고 오라는 지시가 마음에 걸렸는데, 그는 결국 동아일보 인사 담당자에게 ”내일 못 갈 거 같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담당자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인지 “왜요?”라고 물었고 김태호는 “마음이… 안 내키네요”라고 답했다고. 

'무한도전'이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공개홀에서 열린 '제42회 한국방송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한 가운데 김태호 PD가 소감을 말하고 있다. 2015.9.3
'무한도전'이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공개홀에서 열린 '제42회 한국방송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한 가운데 김태호 PD가 소감을 말하고 있다. 2015.9.3 ⓒ뉴스1

돈보다 즐거움을, 안정보다는 모험을 택하며 언제나 웃음을 좇았던 김태호가 20년 만에 MBC를 떠난다. 이제는 토요일 저녁에만 매여있지 않겠다는 새로운 도전으로 들린다. 김태호 PD는 과거 한 강연에서 자신의 미래를 예측이라도 한 듯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예능 프로그램은 반응이 오면 안정을 찾으려고 해요. 전 그게 너무 싫었어요. 끊임없이 계속 날갯짓을 하자, 태양까지 가서 타죽더라도 말이죠.”

그의 날갯짓을 응원한다. 

 

도혜민 에디터: hyemin.do@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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