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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하면서 본다" 막장 대모 김순옥의 '펜트하우스'로 보는 막장드라마 법칙 4가지

김순옥에 이어 임성한, 문영남까지 이른바 '막장 트로이카'의 귀환.

펜트하우스
펜트하우스 ⓒSBS

 

욕하면서도 보게 만드는 힘. ‘막장 월드’를 지배하는 이른바 ‘막장 트로이카’가 차례로 돌아오면서 티브이가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김순옥 작가가 지난달 26일부터 <펜트하우스>(에스비에스 월·화 밤 10시)로 찾아왔고, 임성한 작가도 오는 12월 <티브이 조선>에서 자신의 첫 미니시리즈 <결혼작사 이혼작곡>을 선보인다. 문영남 작가는 내년 1월 <즐거운 남의 집>으로 돌아온다. 드라마 절필을 선언했던 임성한 작가가 5년 만에 다시 노트북을 열면서 세 사람이 비슷한 시기 안방극장을 찾게 됐다.

같은 막장으로 분류하지만, 세 작가의 작품 결은 조금씩 다르다. 문영남 작가가 서민 대가족을 중심으로 한 가족 통속극 전문이라면, 임성한 작가는 결혼을 둘러싼 이야기가 많다. 문영남 작가는 불륜·이혼 등 가정 내 사건을 주요 소재로 하고, 임성한 작가는 여기에 황당무계한 상황이 더해지지만, 사실 진짜 막장은 김순옥 작가의 작품이다. 두 작가와 비교해 갈등이 강하고 사건이 세다. 대부분 복수를 통한 ‘권선징악’이 주제인데, 선악이 극명히 대립하면서 악녀의 감정이 갈수록 극단으로 치달으며 납치, 살인 등의 ‘강력 사건’이 일상처럼 등장한다.

<펜트하우스>도 20회 중 6회 만에 이미 살인, 납치, 린치 등 자극적인 장면들이 속출하며 논란을 빚고 있다. <펜트하우스>는 강남 최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헤라팰리스 입주민들의 이야기인데, 김순옥표 막장이 ‘막장’에 다다른 느낌이다. 하지만 막장의 세계는 견고하다. 사람들은 또 욕하면서도 빠져들고 있다. 1회 9.2%(닐슨코리아 집계)로 시작해 가장 최근 방영한 6회가 14.5%로 시청률은 계속 오르고 있다. <펜트하우스>를 통해 김순옥표 막장드라마의 반복되는 심각성을 짚어봤다.

펜트하우스
펜트하우스 ⓒSBS

 

막장의 법칙 1: 더더더 자극적으로, 툭하면 죽인다!

막장드라마의 시작인 출생의 비밀, 불륜도 이젠 애교다. 툭하면 납치에 폭행도 그러려니 해야 할 판이다. <펜트하우스>가 시작부터 강력한 마라맛으로 시청자의 뇌를 마비시켜버리는 소재는 자극적인 죽음이다. 열심히 살아가던 민설아(조수민)가 헤라팰리스에서 추락해 석고상 위에 떨어져 사망하는 것을 시작으로, 6회 동안 매회 사람이 죽어 나간다. 악행의 주범 주단태(엄기준)의 비서 윤태주(이철민)와 별장에서 몸싸움을 벌이던 국회의원 조상헌(변우민)은 2층에서 떨어져 죽고, 윤태주는 뜬금없이 과거를 뉘우치며 육교에서 뛰어내린다. 주단태는 지금의 아내 심수련(이지아)과 결혼 전, 그가 사랑하는 남자를 기관총으로 쏴버리고 주검을 훼손하기도 했다. 이 드라마에서 사람 목숨은 너무 하찮다.

<아내의 유혹> <왔다! 장보리> 등 작가 전작에서도 어김없이 살인 시도는 있었다. <펜트하우스>는 더 잦아졌고 더 잔인해졌다. 이 드라마에서는 죽음을 전시한다. 민설아는 극 중 검정고시로 예고 시험에 합격한 고작 중3 나이의 청소년이다. 그런 그의 피가 석고상에 물들고 분수대를 적시는데, 이를 지켜보던 주단태는 말한다. “저게 얼마짜리 석고상인데 하필 저기 떨어져 죽어!” 드라마 대사일 뿐이라고? 한 지상파 간부 출신 프리랜서 피디는 “죽는 설정은 인간의 존엄성 측면에서 꼭 필요할 때만 사용해야 하고, 시청자에게 심리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게 드라마 만드는 사람의 기본 윤리다”라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더 자극을 주려다 보니 더 심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나중에는 아무런 감각이 없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펜트하우스
펜트하우스 ⓒSBS

 

막장의 법칙 2: 개연성은 필요없다, 내키는 대로!

불륜, 출생의 비밀은 셰익스피어 고전에도 등장한다. 단지 그런 소재를 차용한다고 막장은 아니다.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막장드라마들은 개연성 없이 등장하는 경우가 문제”라고 말했다. 작가의 전작 <아내의 유혹>에서 구은재가 얼굴에 점 하나 찍고 전혀 다른 사람인 척한 게 대표적이다.

<펜트하우스>에서도 몸싸움, 납치, 폭행, 살인 등 수많은 사건이 전개를 예측할 수 없이 뜬금없이 벌어진다. 갑자기 서재에서 손가락은 왜 나오고, 중3들이 사람을 납치하는 게 어찌 그리 간단한 일인지. 사건이 계속 일어나야 하니 작가가 인물들에게 감정에 따라 기분 내키는 대로 악행을 저지르게 하는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캐릭터가 무너지는 일은 다반사다. ‘선’으로 분류되는 오윤희(유진)는 딸 배로나(김현수)가 예고 예비합격자 1번이 되자, 한 명이 죽으면 딸이 합격할 수 있다는 생각에 1등으로 붙은 민설아를 따라가 계단에서 밀려고 하고, 뒤에서 접근해 부지깽이로 죽이려고도 한다. 물론 행동하려다 멈추지만, 딸을 위한 엄마의 희생으로만 이해하기에는 말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오윤희는 배로나를 위해 돈이 필요해지자 국회의원 별장에 몰래 들어가 불법 촬영 카메라(몰카)를 설치해 불륜 현장을 녹화한 뒤 협박해 돋을 뜯어낸다. 선으로 분류되는 인물이 할 수 있는 행동이라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이 드라마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정덕현 평론가는 “각종 악행에 설득력 있는 이유가 제시되지 않는다. 인물들이 작가가 고안해 놓은 자극의 틀을 위해 소비되는 소모품에 불과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펜트하우스
펜트하우스 ⓒSBS

 

막장의 법칙 3: 사람은 선과 악, 삶은 복수다!

막장드라마에선 인간의 내면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인간은 선 아니면 악 두 부류로 나뉜다. 착했던 사람이 악인한테 복수를 해나가는 과정이 주된 설정이다. <펜트하우스>에서는 심수련과 주단태, 오윤희와 천서진(김소연)이 대립을 이루고, 심수련과 오윤희가 손잡고 복수의 화신으로 거듭난다. 윤석진 교수는 “그래서 갈수록 악이 강해지다 보니 배우로서는 캐릭터가 명확해져 나중에 더 사랑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왔다! 장보리>에서도 연민정을 연기한 이유리가 그해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에게 강력한 복수의 동기를 심어주려고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가혹한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이 문제다. 이 작가의 전작 <황후의 품격>에서도 임산부가 성폭행당하는 장면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중징계를 받았다. <펜트하우스>에서는 가난에 대한 혐오가 논란이다. 보육원에서 자란 민설아를 입양한 부모는 민설아의 골수를 자신들의 친아들에게 이식시킨 뒤 파양했다. 헤라팰리스 사람들은 그의 가난을 모욕하고, 집단 린치에 납치, 감금까지 하더니 결국 처참하게 죽인 뒤 주검도 유기한다. 그런데 그 아이가 심수련의 친딸이었던 것이다. 성악 유망주였던 오윤희는 고등학교 시절 천서진이 휘두른 트로피에 목을 다쳐 음악도 그만두고 인생이 흔들린다. 그런 천서진의 그의 딸의 인생까지 방해하자 복수를 결심하는 것이다.

선을 나락으로 떨어뜨려야 하니 악행을 저지르는 이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인물로 표현된다. 주단태는 주검 훼손까지 아무렇지 않게 일삼는 사이코패스이고, 천서진은 늘 뭔가를 꾸미는 등 일상이 음모로 가득하다. 한 시청자는 “이 드라마 속 사람들은 모든 인간이 죄다 나쁘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불쾌한 마음만 남는다”고 말했다.

펜트하우스
펜트하우스 ⓒsbs

 

막장의 법칙 4: 사건 해결? 머리 쓰지 마라!

하지만 사건에 견줘 비밀을 풀어가는 방식은 너무 쉽고 유치하다. 심수련에게 주단태의 비밀을 알려주는 것은 누군가 문 밑으로 밀어주고 간 쪽지다. ‘당신은 주단태에게 속고 있다. 주혜인은 당신 딸이 아니다.’ 이 쪽지를 받은 심수련은 갑자기 탐정이 된다. 순식간에 민설아가 자신의 딸이라는 걸 밝혀낸다. 천서진과 주단태가 민설아에게 들킨 32층 불륜의 현장은 통유리로 된, 밖에서도 훤히 다 보이는 공간이다. 심지어 그렇게 조심한다면서 어이없게도 주단태의 집에서 만나다가 심수련한테 들킨다. 6회 만에 모든 비밀이 밝혀지고 복수가 시작되는 계기는 제작진의 ‘허술한 비밀 까발리기’를 동력으로 삼고 있는 듯 보인다.

윤석진 교수는 “빠른 전개를 위해서는 비밀을 빨리 드러낸 뒤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개연성이 있나,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야 하나’ 같은 고민을 할 시간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악녀 배우들의 과장된 표정이나,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은 한편의 코믹드라마 같다.

그런데도 김순옥 작가의 작품이 매번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건 그저 운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120분에 이르는 한 회가 12분으로 느껴질 정도로 빠른 전개는 장점이다. 시청률이 잘 나오게 쓰는 작가의 필력도 무시할 수는 없다. 방송사 처지에서 막장드라마는 저비용 고효율의 ‘효자상품’이다. 유명 배우가 없어도 오직 ‘이야기의 힘’으로 시청자를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캐릭터의 성격이나 이야기 흐름을 고려하지 않는 개연성 없는 전개는 작품의 질을 떨어뜨리고, 결국 한국 드라마의 질적 저하를 부를 수밖에 없다. 정덕현 평론가는 “드라마는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갈 것인가를 에둘러 보여주는 프리즘이기도 하다. 돈이면 다 해결된다는 헤라팰리스 사람들의 생각처럼 이 드라마도 시청률이면 다 용서된다는 식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석진 교수는 “한국 드라마가 전세계에서 화제를 모으는 시대에 방송사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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