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제주 4.3 유족들의 "무죄 선고 고맙다"는 말에 재심 판사가 '고맙다고 하지 마라'며 한 말은 당연한데도 특별하게 다가온다

"오늘의 선고가 아픈 걸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2021년 4월3일 제73주기 추념식이 열린 제주4·3평화공원에서 한 유족이 간단한 제물을 준비하고 희생자 이름이 새겨진 각명비 앞에서 제례를 지내고 있다.
2021년 4월3일 제73주기 추념식이 열린 제주4·3평화공원에서 한 유족이 간단한 제물을 준비하고 희생자 이름이 새겨진 각명비 앞에서 제례를 지내고 있다. ⓒ한겨레

 

14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202호 법정. 제주4·3 당시 수형 생활을 하다 행방불명된 이들에 대한 직권재심 재판을 하던 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가 택시에서의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엊그제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와 4·3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운전기사가 할머니였는데 그분 남편도 어릴 적 관덕정에 (3·1절 시위) 구경 갔다가 총알이 머리를 스쳐서 지금도 상처가 있다고 해요. 희생자 신고를 했냐고 했더니 안 했다는 겁니다. 그런 것도 신고하느냐고 하면서요. 지금 희생자 보상금도 나오는데, 당연히 받아야 할 거니까 지금이라도 신청하라고 했어요. 여기 있는 분들도 마찬가집니다.”
장 판사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고맙다고 하지 마세요. (희생자 보상금은) 국가에서 시혜적으로 베풀어주는 게 아니라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받는 겁니다. 늦었지만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겁니다. 미안함이나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여러분은 희생자의 가족입니다. 그 희생자만 피해를 보았겠습니까. 살아남은 사람들도 얼마나 큰 피해를 보았나요. 차라리 죽는 게 나았다고 합니다. 오늘의 선고가 아픈 걸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그런 소회가 들었습니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가 지난달 31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제주4·3 군사재판 수형인에 대한 직권재심 재판 이후 기자회견을 열고 무죄 선고를 환영했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가 지난달 31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제주4·3 군사재판 수형인에 대한 직권재심 재판 이후 기자회견을 열고 무죄 선고를 환영했다. ⓒ한겨레

이날 제주지방법원 형사4-2부(재판장 장찬수)는 군법회의 수형인 30명에 대한 직권재심에서 “유죄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 희생자 30명 모두 공소사실을 입증할 범죄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4·3 군법회의 수형인 직권재심은 지난 3월29일 40명을 시작으로 이날 7차까지 이뤄져 모두 160명의 수형인에 대한 명예회복이 이뤄졌다.

4·3 군법회의 수형인에 대한 직권재심은 1948년과 1949년 두 차례에 걸쳐 제주지역에서 이뤄진 불법적 군사재판에서 국방경비법 위반이나 내란죄 등의 형으로 선고받고 다른 지방 형무소에서 수형 생활을 하다 상당수가 한국전쟁 직후 행방불명됐다. 국가기록원이 소장한 당시 ‘수형인 명부’에는 2530명의 이름과 나이, 주소 등이 적혀 있다.

앞선 재판처럼 이날 재판에도 희생자들의 자녀나 조카 등 유족들이 재심 청구 대상자를 대신해 법정을 찾았다. 법정은 직권재심 때마다 엄숙하기도 하고, 무죄를 선고할 때마다 박수 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광주고검 산하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 소속 변진환 검사가 제주4·3으로 인한 당시 제주지역의 실정을 설명하고, 이들에 대한 무죄를 요청했다. 국선변호인을 맡은 문성윤 변호사는 “피고인들은 4·3 당시 학생이나 농업, 상업에 종사하거나 공무원 등 평범한 양민이었다. 하지만 군·경은 여장도 없이 이들을 끌고 가 옥살이를 시켰고, 대부분 형무소에서 행방불명되거나 사망했다. 가까스로 생존해 돌아온 이들은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하기도 했다”며 무죄를 요청했다.

무죄를 선고한 장 부장판사가 유족들에게 말할 기회를 드리겠다며 소감을 말하도록 했다. 일부 유족들은 눈물로 소감을 대신하기도 했다. 아버지(이성균)가 행방불명된 이길자씨는 “아버지의 행방을 모르는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평생 아픔 속에 살았다”며 “할 말을 못 하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희생자(고성우)의 동생 고성흠씨가 재판부에 “고맙다”고 하자 장 부장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고맙다는 말을 들을 이유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피해에 대한 명예회복을 너무 늦게 회복시켜줬는데, 국가가 미안하다고 해야 합니다.”

 

한겨레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사회 #제주4.3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