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8월 03일 16시 00분 KST | 업데이트됨 2020년 08월 03일 16시 25분 KST

[한글 의사] 스토리노믹스 대신 '이야기 산업'

글 읽는 속도를 1초로 줄여주는 한글 의사 시리즈 6편

<허프포스트>가 사단법인 국어문화원연합회의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의 지원을 받아 ‘한글 의사’ 시리즈를 진행합니다. 한글 의사는 영어로 써진 어려운 용어 등을 쉬운 우리말로 바꿔주는 이로서 ‘글 읽는 속도를 1초로 줄여주겠다’라는 포부를 가진 인물입니다. 어려운 용어 때문에 정보에 소외되는 국민 없이 모두가 함께 소통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왓챠 캡처
KBS에서 전래동화를 소재로 제작한 애니메이션.'배추도사 무도사의 옛날 옛적에'

마마신은 봄부터 가을까지 바람의 등을 타고 나들이를 즐겼다. 사람들은 마마신이 찾아오면 정성껏 대접했다. 만일 대접하지 않거나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마마가 요술 주머니에서 병정들을 풀어 마마병을 퍼뜨렸기 때문이다. 살기 막막해진 어느 해에는 마마신을 피하고자 높은 돌담을 세웠다. 하지만 돌 틈으로 병정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땅을 파 숨어봐도 마찬가지였다. 바람이 가지 못하는 곳은 없었다. 그 바람에 사람들은 마마병에 걸렸고 갖은 고초를 당하게 된다. 바람이 쫓아와 도망갈 수도 없는 처지, 사람들은 마마신과 싸우기로 작정하고 용왕에게 힘을 빌리고자 했다.

용왕에게 말을 전하기 위해 마을에서 잠수를 가장 잘한다는 상군 해녀가 선발됐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해녀도 용궁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거북에게 물었지만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으로 바위 신령에게 호소하자 딱한 사정을 들은 그가 몰래 용궁길을 알려줬다. 마침내 해녀와 용왕이 만나게 된다. 그의 간청을 들은 용왕은 바위 신령에게 군사를 풀어 마마신을 없애라 명한다. 이후 마마 병정과 바위 군대와의 큰 전쟁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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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군대는 맨주먹으로 나가 싸웠지만, 마마 병정들은 야비하게도 커다란 창칼과 활을 두고 돌격해왔다. 바위 군대는 병정의 창칼과 화살에 찔려서 구멍이 ‘뻐끔뻐끔’ 나고 말았다. 싸움은 길게 이어졌고 그러느라 큰바람이 석 달 열흘 동안이나 일었다. 그때 용궁에 간 해녀가 ‘산호수’로 굳어져 해안가로 떠밀려 올라왔다. 놀랍게도 병정들은 산호수를 보자마자 모두 죽어 버렸고 마마신은 달아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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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신의 창칼에 찔려 구멍이 '뻐끔뻐끔' 나고만 돌하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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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떠오르는 성산일출봉의 모습

이미 눈치챘겠지만 이야기의 배경은 ‘제주’다. 구멍이 뻐끔뻐끔 난 것들은 제주의 상징인 현무암이고, ‘산호’엔 사람을 지켜준다는 의미가 깃들어있어 조선 시대 여자들의 머리 장신구로 사용된다. 또 아직도 제주에서는 감사를 표하기 위해 바다를 향해 용왕제를 올린다. 신들의 숫자만 해도 1만 8천 명이 넘는다는 제주. 난생처음 듣는 이런 이야기가 우리나라에는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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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6일,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 있는 폭스 극장에서 열린 인피니티 워 상영 당시, 화면에 뜬 마블 스튜디오

사실 이야기는 어떻게 엮고 활용하는지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진다. ‘어벤져스’를 제작한 마블 스튜디오의 수장, 케빈 파이기는 콘텐츠를 섞고, 연결하며 영화에 맞게 변형했던 것이 마블 성공의 핵심이었다고 밝혔다. 마블은 미국의 만화 덕후들의 상징이었지만 만화 시장이 하락하면서 도산 위기를 맞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들은 이야기라는 탄탄한 배경을 발판으로 할리우드의 중심이 됐다. 새삼 이야기의 위상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듯 보인다.

마케팅 업계는 ‘스토리노믹스(storynomics)’가 중요하다고 외치고 있다. 스토리노믹스는 이야기를 뜻하는 스토리(Story)와 경제(Economics)의 합성어로 이야기가 지닌 경제적 가치를 뜻한다. 우리말로는 간단하게 ‘이야기 산업’이다. 약 10년 전 세상에 ‘스토리텔링’ 바람이 불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스틸 이미지

이야기 산업이 확장되고 소비 형태가 달라진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나온 새로운 용어들. 우리는 수천 년 간 이어져 온 이야기 자체에는 관심이 없지만 ‘유행’할 것이라며 만든 새로운 용어에는 바짝 긴장하고 만다. 스토리노믹스가 이야기 산업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를 활용하는 방식도 그저 웹툰을 웹 소설이나 영화화하는 방식에 그칠 수밖에 없다. 어떤 시대에는 희곡이 유행했고, 다음 시대에는 시와 소설이, 기술이 발전하면서 라디오, TV, 영화까지 담는 그릇은 바뀌었지만, 이야기는 언제나 매력적이었다. 그러니 스토리노믹스라는 외래어에 현혹되지 말고 이야기 산업으로 부르면 어떨까.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더욱 명확해진다.

 

※ 제주 설별 자치도 홈페이지 제주 설화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