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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2월 21일 15시 41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2월 21일 15시 41분 KST

'가버나움' - 칠흑 속에서도 끝내 별을 가리키는 영화

살아있는 비극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끝내 마음을 울린다.

흔히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고들 하지만 어느 세계의 누군가에게 인생이란 공평함의 여부를 가릴 겨를도 없이 매일 같이 쏟아지는 비극을 피해 생존하는 것 이외의 길을 만나본 적도 없는 재난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12살짜리 소년 자인(자인 알 라피아)의 삶이 그렇다. 그래서 자인은 법정에 선다. 부모를 고발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낳았지만 부모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어린 소년이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걸다니 마냥 당돌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소년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자식 하나 제대로 건사할 능력도 없는 주제에 아이를 여섯이나 낳고 방치하는 부모 아래에서 자란 소년 자인(자인 알 라피아)에게 삶이란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사막처럼 버겁다.

자인은 매일 같이 거리로 나가 갖은 부역을 한다. 또래보다 왜소한 몸으로, 제 몸 만한 가스통을 질질 끌어 옮기고, 양 손 가득 물건을 들고 계단을 오르며 배달 일을 한다. 그 와중에 자신이 아끼는 11살짜리 여동생 사하르(하이타 아이잠)를 매매혼으로 넘기려 하는 부모를 저지하려 하지만 끝내 실패한 자인은 집을 떠난다. 그리고 에티오피아 출신의 불법체류자이자 미혼모로서 어린 아들을 키우는 라힐(요르다노스 시프로우)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자인은 우연히 만난 불법체류자 신분의 여성으로부터 부모에게서는 받지 못한 보살핌을 받게 된다. 자인 역시 라힐의 어린 딸인 요나스(보루와티프 트레저 반콜)를 보살피며 유사 가족적인 일상을 영위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찾아온 일시적인 평온함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지난해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고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과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후보작으로 선정된 영화 <가버나움>은 레바논 베이루트의 빈민촌을 배경에 둔 작품이다. 불행을 병풍처럼 두른 채 묵묵히 살아가는 어느 한 소년을 주목함으로써 그 소년을 둘러싼 절망적인 일상을 전 세계 스크린으로 목격하게 만들었다. 레바논 출신의 배우이자 감독인 나딘 라바키는 <가버나움>이 레바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라고 말했다. 제 몸보다 세 배는 더 커 보이는 짐을 나르거나 구걸을 하는 아이들이 길바닥의 돌멩이처럼 널려 있는 현실, 나딘 라바키는 이런 현실에 대한 물음표를 스크린에 찍기로 했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현실을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자국의 사회상을 영화로 묻기로 결심한다.

<가버나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배우가 아니었다고 한다. 실제로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처지에 놓여있던 이들이다. 자인 역을 연기한 자인 알 라피아는 시리아 난민 출신의 소년이었다. 이름만 같은 것이 아니라 연기하는 캐릭터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을 살고 있었다. 나딘 라바키 감독은 캐스팅을 위한 별도의 팀을 꾸려 레바논 각지를 찾아가게 했고, 그곳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아이들을 인터뷰하며 <가버나움>에 걸맞은 인물들을 탐색하며 결국 자인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레바논 거리에 있는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서 인터뷰한 테이프를 보다가 자인과 그의 친구들이 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2분 만에 이 아이가 바로 내가 찾던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아이는 내게 기적이었다.”

<가버나움>의 자인처럼 자인을 연기한 자인 알 라피아는 거리에서 자랐다. 학교도 가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폭력적인 학대를 서슴지 않는 어른들의 길에서 어울리며 자인 알 라피아는 살아가고 있었다. “자인은 거친 세상과 부딪히며 어린 시절을 잃어버리고 어른이 돼 버린 아이처럼 보였다. 그런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지혜가 있음을 알았고, 영화에서도 그런 모습을 잘 표현해 내리라 믿었다.” 나딘 라비키의 말처럼 자인은 자인 알 라피아의 인생이 반영된, 비극적인 풍경 안에 호흡하는 생생한 현실적 존재로서 자리하고 있다. 자인뿐만 아닌 대부분의 인물들이 그랬다. 에티오피아 출신의 불법체류자 라힐 역을 맡은 요르다노스 시프로우는 경찰에 체포되는 장면을 촬영한 뒤 며칠 후 실제로 경찰에게 체포됐다. 그래서 <가버나움>에서 라힐이 사라진 상황에 직면한 자인과 요나스의 신에서는 실제로 경찰에 체포된 라힐이 없는 상황에서 촬영이 진행됐다. 이로써 <가버나움>은 가상의 삶을 연출하는 영화가 아니라 가상의 탈을 쓴 다큐멘터리적인 영화가 됐다. 실제적인 현실과 일상을 스크린에 생생하게 투영해낸 놀라운 체험으로 다가온다. 영화의 울림이 현실의 울림과 밀착된다.

“당신은 본인들의 삶과 동일한 투쟁을 하며 살아가는 아이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딘 라바키의 말처럼 <가버나움>은 우리가 살아가는 어느 세계의 비극을 전시하는 것을 넘어 그 실제적인 삶의 형태를 고스란히 짊어지고 살아온 이들의 인생과 관객을 중계하는 작품이다. 그럼으로써 ‘영화가 세상을 향해 어떻게 질문하고 어떤 답변을 제시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어떤 답처럼 마련된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레바논 베이루트 빈민촌에서 자신의 삶을 재현하는 비전문배우들의 생생한 표정과 일상을 지켜보던 관객들이 스크린 너머의 삶이 단지 영화적인 순간만이 아님을 알게 될 때, 가상의 비극을 병풍처럼 두르고 살아가는 이들에 관한 허구가 실존적인 삶으로서 이 세계의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동시에 깊은 고민에 빠져들 것이다.

<가버나움> 속 인물들을 둘러싼 고단하고 절망적인 풍경을 끝까지 바라봐야 하는 참담함의 한 복판에서도 일관되게 담담하기만 한 자인의 얼굴은 되레 마음을 절절하게 만든다. 웃음기가 증발해버린 듯한 소년의 푸석한 얼굴에 비로소 미소가 깃드는 결말을 보는 안도감은 그래서 상당한 울림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다행히도 자인의 미소는 영화가 연출한 희망사항이 아니라고 한다. 나딘 라바키는 <가버나움> 이후로 영화에 출연한 아이들을 비롯해 레바논의 어린아이들을 구제하는 ‘가버나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가버나움>의 자인을 연기한 자인 알 라피아는 영화상에서 자인이 꿈꿨던 것처럼 스웨덴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학교도 다니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길거리에 생을 맡기던 삶으로부터 벗어났다고 한다. 영화가 이 세계의 모든 절망을 구원할 수 없겠지만 어떤 영화는 가끔씩 살아갈 의미를 보탠다. 칠흑 같은 어둠 사이에서 반짝이는 작은 별을 가리킨다. <가버나움>은 그런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