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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29일 17시 00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5월 29일 22시 31분 KST

통마늘을 씹었다. 맛없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물기 없는 자리②]

huffpost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작가 채이든은 최근 매스컴에서 쏟아지듯 나오는 아동 학대 관련 기사에 가슴이 아팠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가해자가 되어 학대를 대물림하는 경우가 안타까워 글을 썼다고 한다.

다섯살

 

24

아빠가 출근한 후에 새엄마가 카세트를 틀었다. 노랫말이 고운 가요가 흘러나왔다. 꽃반지를 끼고 오솔길을 걷는다는 내용이었다. 청소를 마친 새엄마가 장바구니를 챙겨 들었다. 나는 새엄마를 따라나섰다. 시장에 도착해서는 새엄마 보다 앞장서서 걸었다.

“너는 시장길을 다 알고 있네? 전에 여기 와본 적 있어?”

새엄마가 물었다. 나는 엄마랑 큰엄마랑 매일 왔었다고 대답했다. 몇 달 만에 구경하는 시장인데도 나에게 눈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있었다. 단골 채소가게 아주머니는 나를 불러서 인사했다.

“이게 누구야? 아유, 얼마 만에 보는 거야. 친척 집에 있었다면서? 너희 큰엄마가 계속 혼자 다니길래 내가 궁금해서 물어봤었지. 고새 많이도 컸다!”

아주머니가 나를 껴안고 엉덩이를 두드렸다. 나는 웃으며 아주머니의 품을 빠져나왔다. 아주머니가 내 뒤에 서 있는 새엄마를 보고 물었다.

“오늘은 누구랑 같이 온 거야? 친척이야?”

“우리 엄마예요. 새엄마요.”

“에구머니나!”

아주머니가 입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뜸을 들다가 새엄마에게 물었다.

“뭐 찾는 거 있으세요?”

새엄마는 돌아서서 걸었다. 내가 따라잡기 힘든 빠른 속도다. 채소가게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왔을 때 새엄마가 입을 열었다.

“네 어미는 저 동네 살아!”

목소리가 언짢았다. 새엄마는 한 손가락으로 어느 동네를 가리켰다.

‘엄마가 사는 동네?’

나는 새엄마가 가리키는 동네를 바라보았다. 똑같은 모양의 빌라들이 조그만 놀이터를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었다. 새엄마가 다시 걸었다. 시장 끄트머리까지 걸어가서 콩나물을 샀다. 옥탑방에 도착할 때까지 새엄마는 말이 없었다.

옥탑방은 절반을 나눠서 방과 부엌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새엄마는 장바구니에서 꺼낸 콩나물을 소쿠리로 옮겨 담았다.

“이리 와서 좀 거들어줄래?”

나는 수도꼭지 앞에서 콩나물을 다듬었다. 새엄마가 가르쳐준 대로 머리 껍질을 벗겨내고 뿌리를 뜯어냈다. 새엄마가 나에게 물었다.

“너는 콩나물 머리가 좋으니, 줄기가 좋으니, 꼬리가 좋으니?”

나는 콩나물 머리를 씹어먹는 게 불편했다. 이빨 사이에서 콩들이 도망 다녔다. 뿌리는 양이 적어서 먹을 게 없어 보다. 그래서 줄기가 좋다고 대답했다.

“바보야! 콩나물은 머리에 양분이 많은 거야! 다듬기 싫으니까 줄기가 좋다고 말하는 것 봐!”

새엄마가 콩나물을 뺏어 들고 일어났다. 나는 부엌에 남아있었다. 저녁밥을 짓는 새엄마를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다. 엄마와 큰엄마들은 나를 부엌에 못 들어오게 했다. 아궁이는 불을 피우고 가마솥은 물을 끓여서 부엌에 드나들면 위험하다고 했다. 새엄마는 석유풍로와 양은냄비를 사용하고 있었다. 살림 도구들이 작고 귀여웠다.

“방에 들어가 있어. 무슨 구경이 났다고 야단법석이야?”

새엄마가 말했다. 곁에서 구경만 했는데 방해를 받은 것 같았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열어놓고 조금씩 얼굴을 내었다.

“뭘 보냐고!”

새엄마가 물어봐서 나는 구경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 그럼 이쪽에 앉아서 구경해!”

새엄마는 내가 볼 수 있도록 현관문 바닥에 자리를 정해줬다. 자세도 정해줬는데 무릎을 꿇고 앉아서 손을 들어야 했다. 새엄마가 방에서 사전을 꺼내왔다. 그리고 서너 권의 사전을 내 손바닥에 올려줬다.

“얘! 이거 떨어뜨리지 마라! 비싼 거니까.”

Mitesh Kumar Savita / EyeEm via Getty Images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힘을 모아 사전을 들었다. 아빠가 쓰는 사전이었다. 아빠는 쉬는 날마다 사전을 펼쳐놓고 공부했다. 내가 아빠의 소중한 물건을 지켜내는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된 것 같았다. 손가락에 닿는 겉표지 가죽과 얇은 속지의 촉감도 나쁘지 않았다. 부엌에 구수한 콩나물국 냄새가 퍼졌다. 새엄마는 마늘을 꺼내서 도마에 찧었고 끓는 냄비에 쓸어담았다. 그리고 돌아서서 내 입에 통마늘을 넣어주었다. 나는 입술로 마늘을 물고 새엄마를 바라보았다.

“먹어! 마늘은 건강에 좋은 거야!”

마늘을 씹었다. 콩나물 머리를 씹는 것보다 어려웠다. 매운맛이 입안을 얼얼하게 만들었다.

“맛이 어때?”

새엄마가 물었다. 건강을 생각해서 준 건데 맛없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맛있어요.”

“그래? 무슨 맛이 나는데?”

나는 맛있는 음식들을 떠올렸다.

“과자 맛도 나고, 캐러멜 맛도 나고, 소시지 맛도 나고 그래요…….”

“그래? 잘됐구나! 마늘이 과자처럼 맛있다니 많이 먹어야겠다!”

새엄마는 도마에 꺼내놓은 통마늘을 나에게 전부 먹여주었다.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웃었다. 나는 새엄마를 따라 웃었다. 아빠가 집에 오기 전까지 손에 들고 있던 사전도 떨어뜨리지 않았다.

25

옥탑방 계단은 궁둥이를 붙이면 의자가 됐다. 나는 계단 의자가 마음에 들었다. 앉아서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골목을 내다볼 수 있었다. 대문을 열고 나가지 않아도 바깥 구경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2층 높이라서 오가는 사람들의 정수리도 보였다.

아침에 골목을 구경하는데 새엄마가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손에 신문지를 구겨서 들고 있었다. 화장실에 갈 건가 보다. 주인집과 함께 사용하는 화장실은 대문가에 있었다. 나는 계단에서 일어났다. 새엄마는 비껴가면서 내 귀를 쭉 잡아당겼다. 나는 반사적으로 새엄마를 쳐다보았다. 새엄마는 웃고 있었다. 나도 새엄마를 따라 웃었지만, 귓바퀴가 따끔거렸다. 귀를 문지르고 계단에 도로 앉았다. 화장실에서 나온 새엄마가 계단으로 올라왔다. 다시 귀를 잡아당기고 방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지? 무슨 뜻이지?’

나는 귀를 잡고 가만히 서 있었다. 여태껏 내 귀를 잡아당긴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어른도, 아이도 없었다. 잡아당긴 사람이 없으니 무슨 뜻인지 가르쳐준 사람도 없었다. 나는 머리를 털어내고 흔들었다. 밖으로 나와서 아이들과 어울렸다.

한두 시간에 한 번씩 새엄마는 옥상 난간에 몸을 기대고 큰 소리로 나를 불러들다.

“얘! 이리 와! 집에 들어와! 얼른 와. 얼른!”

나는 골목이나 앞집에서 놀다가 계단을 뛰어 올라와서 새엄마 앞에 섰다. 새엄마는 웃음을 터뜨리고 내 귀를 잡아당기고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중간중간 손톱으로 귓불도 찍었다. 오후에는 귓불에서 진물이 배어 나왔다. 나는 귀가 없어질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내 손바닥이 귀를 보호해주겠다고 나섰다. 저절로 올라와서 귀를 덮어버렸다. 귀를 가린 채로 아이들과 놀 수 없었다. 나는 계단에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왜 귀가 아프지? 새엄마가 웃는데 나는 왜 웃음이 안 나오지? 아빠한테 물어볼까? 아빠는 언제 오지?’

하염없이 골목을 내려다보면서 아빠를 기다렸다. 저녁에 아빠가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계단 중턱에서 아빠를 불다.

“아빠!”

“잘 있었어? 왜 나와 있어? 방으로 들어가자.”

“아빠, 나 귀가 아픈데?”

“귀가 아프다고? 갑자기 귀가 왜 아파?”

“몰라. 그냥 아파.”

“어디 좀 보자.”

손바닥을 내렸더니 머리카락이 귀를 덮었다. 아빠가 다가와서 내 머리카락을 넘기려고 했다. 그때 새엄마가 현관문을 열고 허겁지겁 달려 나왔다. 그리고 계단 위에서 아빠에게 외쳤다.

“그거 나 때문에 그래요!”

“응? 무슨 말이야?”

아빠가 고개를 돌리고 새엄마에게 물었다.

“내가 귓불을 문질러서 그래요! 앞집 여자애도 다섯 살인데 벌써 귀를 뚫었더라고요. 귀걸이를 하고 다니던데 깜찍하고 세련돼 보이잖아요. 나도 얘한테 귀걸이 달아주고 싶어서 손으로 귀를 뚫어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애가 자꾸 도망 다니잖아요! 귀가 당겨지는 바람에 조금 아플 거예요.”

새엄마가 손을 비비고 아빠를 향해 웃어 보다. 아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점잖게 말했다.

“그래. 알았어. 그래도 애가 싫다고 하면 하지 말아 줘.”

26

귀를 잡아당긴 다음 날, 새엄마는 나를 방에 꿇어 앉혔다. 그리고 귀 뚫는 방법을 설명했다.

“손으로 귓불을 문질러서 감각이 무뎌지면 바늘로 찌르는 거야. 귓불에 구멍을 뚫어야 귀걸이를 할 수 있지. 아프니?”

새엄마가 내 귓불을 잡아당기고 손톱으로 찍었다. 나는 아프다고 말했다. 새엄마가 말했다.

“이상하네? 아픔을 느끼면 감각이 남아있다는 건데? 감각이 없어질 때까지 문질러야 하는데. 뚫지 말아야 하나? 너는 어때? 귀걸이를 선물로 받고 싶니? 참을 수 있겠어?”

“네…….”

선물로 귀걸이를 주겠다니 참을 수 있었다. 나는 앞집 아이 귀에 걸린 귀걸이를 보았다. 별 모양의 금귀걸이다. 햇빛을 받으면 눈부시게 번쩍였다.

“그래. 귀는 천천히 뚫기로 하자. 그나저나 너 어제 아빠에게 일러바쳤지? 우리끼리 있었던 일을 아빠에게 일러바치는 게 얼마나 나쁜 짓인지 알고 있니?”

나쁜 짓이라고 느껴져서 고개를 숙다. 새엄마가 말했다.

“두고 봐. 나도 네가 말을 안 들으면 기억해뒀다가 일러바칠 테니까. 누구에게 일러줄까……. 그래! 너희 넷째 큰아버지한테 이르면 딱 맞겠다!”

나는 새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요……. 넷째 큰아빠가 누구예요?”

“야! 너 넷째 큰아빠가 누군지 몰라?”

“네.”

“뭐야. 얘 바보잖아!”

새엄마가 웃었다. 아빠는 6남매 중에 막내다. 나는 큰아빠가 네 명이었다. 고모와 고모부가 있었고 큰엄마들도 있었다. 친척들은 명절에 만날 수 있었고 호칭 앞에 지역 이름을 붙여 불다. 서울에 살면 서울 큰아빠, 안양에 살면 안양 큰아빠, 용인군에 살면 용인 큰아빠다. 큰아빠들이 순서를 가르쳐줘도 나는 명절이 지나면 잊었다. 용인 큰아빠가 제일 큰아빠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너희 옆집에 살았던 큰아빠 말이야! 거기가 넷째 큰집이잖아!”

머릿속이 하얘졌다. 왜 하필이면 넷째 큰아빠일까? 다른 큰아빠라면 무섭지 않았다. 하지만 넷째 큰아빠는 무서웠다. 나는 넷째 큰아빠가 아빠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올린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빠가 벽으로 리고 옷깃을 바로잡으며 비틀대던 모습을 떠올리면 소름 끼쳤다. 새 엄마가 말했다.

“겁이 나긴 하나 보네? 괜찮아. 내 말을 잘 들으면 넷째 큰아빠에게 일러줄 것도 없으니까. 앞으로 내 말 잘 들을 거지?”

“네.”

나는 새엄마가 넷째 큰아빠와 친한 사이라고 믿었다. 내가 아빠에게 모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새엄마도 넷째 큰아빠에게 모든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새엄마가 말했다.

“그럼 오늘부터 일찍 자. 넌 쪼그만 게 잠도 없더라? 아빠가 집에 들어오기 전에 일찍 자도록 해.”

KenCanning via Getty Images

초저녁에 일찌감치 밥을 챙겨 먹고 이부자리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보는데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나는 손으로 눈을 가렸다가 떼어내기를 반복했다. 이불이 부스럭대는 소리를 듣고 새엄마가 말했다.

“아침에 내가 한 말 잊었어? 일찍 자라고 했을 텐데?”

“잠이 안 오는데요.”

“그래? 불 켜놔서 그런가 보다. 불 꺼줄 테니까 얼른 자. 얘! 벽 보고 돌아누워 자. 잠들기 전에 아빠가 와도 일어나지 말고!”

새엄마는 텔레비전만 켜둔 채 방안의 전등을 꺼버렸다. 나는 벽을 보고 돌아누웠다. 방안은 어두워졌지만,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새엄마는 퀴즈 프로그램을 재밌게 보고 있었다. 사회자가 질문하면 혼잣말로 대답하고, 정답이면 손뼉 치고 큰 소리로 웃었다. 나도 텔레비전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몰래 돌아봤는데 새엄마의 등이 보다. 화면은 파마머리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있는데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 나 왔어. 어이쿠! 방이 왜 이렇게 어두워. 이든이는 어디에 있어?”

아빠가 방에 들어와서 나를 찾았다. 새엄마가 말했다.

“저쪽에 누워있잖아요. 자고 있어요.”

“벌써 잔다고?”

“네! 조용히 말해요. 자는 애 깨겠어요.”

잠들지 않았지만, 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 소설 ‘물기 없는 자리’에 수록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