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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4월 21일 15시 30분 KST

숨만 쉬면 잡는다? 공기 중 DNA로 범인 잡을 길 열릴까 (연구 결과)

범인은 물론 멸종 위기종이나 희귀종을 추적하는 것에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분석.

픽사베이
공기 속에서 동물 DNA를 채집해 분석하는 개념증명 실험이 성공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자신이 지나간 자리에 흔적을 남긴다. 지나간 자국이나 배설물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DNA를 두고 하는 말이다. 생물의 분비액이나 배설물, 피부 각질, 남은 음식 등을 통해 몸 밖으로 배출돼 나온 디엔에이를 환경디엔에이(eDNA)라고 부른다.

환경 속으로 흘러나온 디엔에이는 땅이나 물, 공기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토양이나 물 속에서 디엔에이를 채취하는 방법은 이미 나와 있다. 그러나 공기 중에서 디엔에이를 잡아내는 방법은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 물론 식물의 경우엔 공기를 통해 퍼지는 꽃가루, 포자 등에서 디엔에이를 채취할 수 있지만 동물에서는 이마저도 불가능하다.

런던퀸메리대 연구진 동영상 갈무리
공기중 DNA 채집 장면.

 

짧은 디엔에이 조각만으로도 분석 가능

영국 런던퀸메리대 연구진이 이번에 개념증명 실험을 통해 공기 중에서 동물 디엔에이를 채집할 수 있음을 시연해 보였다.

연구진이 최근 국제학술지 ‘피어제이’(PeerJ)에 발표한 연구논문에 따르면 공기 중에서 디엔에이를 채집한 방법은 이렇다. 연구진은 우선 벌거숭이두더지쥐 225마리의 우리와 인공굴이 있는 실험실에 공기펌프를 설치하고, 여기에 필터를 부착했다. 그런 다음 펌프로 방안 공기를 빨아들여 필터에 통과시켰다. 공기 흡입 시간은 5분, 10분, 20분으로 나눠 실험했으며, 각각의 경우에 두 가지 형태의 필터(구멍 크기 22µm, 45µm)를 사용했다.

연구진은 실험 결과 가장 짧은 시간(5분)과 구멍이 더 큰 필터를 적용한 경우에도 디엔에이를 추출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PCR(중합효소 연쇄반응)을 이용해 염기서열 분석에 충분한 디엔에이를 얻을 때까지 디엔에이를 증폭했다.

PCR은 효소를 이용해 짧은 디엔에이 조각의 여러 복제본을 만드는 걸 말한다. 이렇게 해서 얻은 디엔에이는 포유류의 디엔에이로 1차 확인됐다. 연구진은 추가 분석을 통해 이 디엔에이가 벌거숭이두더지쥐와 사람의 것임을 밝혀냈다. 실험실에 갇혀 있던 두더지쥐뿐 아니라 실험실을 들락날락한 연구원과 관리자의 디엔에이도 검출된 것이다.

물론 이번 실험에서 디엔에이를 성공적으로 수집할 수 있었던 데는 두더지쥐들이 폐쇄된 공간에 있었던 것도 한몫을 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공기가 환경에서 유기체를 식별하는 데 사용할 수 있음을 입증한 개념 증명 연구 단계일 뿐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눈밭에 찍힌 캐나다 스라소니의 발자국. 환경디엔에이 연구자들은 이 눈 속에서 동물의 유전정보를 검출한다.


멸종 위기종 확인 등 응용 범위 넓어

그럼에도 연구진은 주된 표적물이 아닌 인간 디엔에이까지 채집할 수 있을 정도로 성과가 괜찮았다는 점에서 앞으로 공기중 디엔에이 채집 기술이 일정 단계를 넘어서면 응용 범위가 매우 다양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예컨대 기술을 더욱 개발하면 범인이 범죄 현장에 머리카락이나 혈흔 같은 유형의 흔적을 남기지 않은 경우에도 공기중에 남아 있는 범인의 디엔에이를 수집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잠재적 응용 분야는 공기 중 병원체를 추적하는 것이다. 공기 중 병원체 디엔에이 양을 측정할 수 있다면 거리두기 같은 방역 지침을 더 정확하게 수립할 수 있고, 바이러스 양이 얼마나 돼야 감염이 되는지도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공기중에서 디엔에이를 수집하는 기술은 직접 접촉하지 않고도 물체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연구진은 인터넷 미디어 ‘라이브사이언스’ 인터뷰에서 “동물을 직접 추적할 필요 없이 튜브를 둥지나 동굴 같은 곳에 넣어 공기를 빨아들이는 방식으로 확인하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멸종 위기종이나 희귀종을 추적하는 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한겨레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