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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4월 11일 14시 37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4월 11일 14시 37분 KST

'성적 불쾌감'이란 건 대체 언제 유발될까?

huffpost

그놈의 ‘성적 불쾌감’이란 건 대체 언제 유발될까? 애매하다 추상적이다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심플하고 명쾌하게 다음의 두 가지 경우다.

1. 이성 관계가 아닌 상대가 나를 ‘이성‘으로 대할 때.
2. ‘성’이라는 소재에 관련한 나의 정보를 상대가 궁금해할 때.

첫째는 이성관계가 아닌 상대가 나를 ‘이성’으로 대할 때다.

세상에 이성관계란, ‘연인 관계‘와 ‘연인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관계’ 이 두 가지 밖에 없다. 이성인 친구, 동료 사이는 이성관계가 아니라 그냥 친구, 동료 사이이고, 이성인 선후배 사이는 이성관계가 아니라 그냥 선후배 관계다.

고로 연애할 때 말고 인간 관계에서 굳이 도구로 쓰일 일이 없고, 또 없어야 하는 것이 성별이다. 그래서 연인도 아니면서 상대를 ‘이성’으로 대하면 상대는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 설사 당신에게는 상대가 이성으로 느껴지더라도, 그 감정은 표현이 허락된 감정이 아니다.

중년 남성으로부터 예쁘세요 아름다우세요 칭찬을 들으면, 너한테는 차라리 욕을 듣는 게 낫겠다 싶은 기분이 드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당신이 나를 ‘이성’으로 인지한다는 사실, 감히 그 감정을 겉으로 드러낸다는 사실에 불쾌감이 느껴진다. (싱글 남녀라고 할 지라도 일체의 정서적 교감이 오간 일도 없이 좋아하는 마음을 일방적으로 열렬히 공표하는 것은 가히 정상적이지 않다. 하물며 기혼인 상대가 애정을 표현하면 보통의 미혼자들은 살의에 가까운 역한 혐오감을 느낌.)

한 마디로 상대가 ”나에게도 고추라는 것이 달렸다!”는 것을 암시하는 류의 발언을 하면 나는 불쾌감을 느낀다. 이성 사이에나 오갈 애정표현, 나의 외모나 여성성에 대한 칭찬, 성애를 포함한 당신의 연애담, 당신이 술집에 가서 만난 여자 이야기, 마누라와 섹스 안 한다는 이야기 따위가 불쾌하게 느껴지는 건 바로 그래서이다. (결국 너도 남자라는 이야기니까.)

타인에게 이 종류의 불쾌감을 일으키지 않기 위한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말을 하기 전에, 그 발언이 상대 여성(남성)과 같은 조건을 가진 남성(여성)에게도 할 수 있는 발언인지 생각해보면 된다. 예를 들어 여자 대리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으면 잠시 머리 속으로 같은 말을 남자 대리한테 하는 상상을 해보자.

ex. 오늘 상당히 섹시한데?

자, 이 말을 왜 하면 안 되는지 이제 알겠지? 네가 박 대리 놈한테는 결코 안 할 말이기 때문이다. ”예쁘세요”는 탈락이고 ”인상이 좋으세요”는 괜찮은 이유도 이제는 알았으리라 생각한다.

아줌마는 제 3의 성이라는 우스개가 있는데, 일견 맞는 말이다. 결혼한 여성은 남편 앞에서 말고는 굳이 ‘여성’일 필요가 없는 존재이니, 사회가 그를 여성이 아닌 제 3의 성, 이를테면 중성 비슷한 것으로 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기분 나쁠 일이 아니다. 아저씨란 존재도 마찬가지여서, 사회에서 만난 여자 앞의 당신은 남성이 아닌 중성이다.

사회생활에서 당신과 당신의 고추를 분리하는 것을 습관화 해야 한다. 나 역시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는 성별에 관한 말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하고, 특히 남자 상사에게는 ‘여자 상사였어도 똑같이 할 수 있는 말’만을 한다. 이게 습관이 되면 오히려 성별이 결부된 발언을 하는 것이 스스로 불편해진다.

HbrH via Getty Images

둘째는 ‘성’이라는 소재에 관한 나의 정보를 궁금해할 때다.

인간과 짐승의 차이점은? 짐승은 남이 보는 데서 섹스를 하고 인간은 숨어서 한다는 것이다. 성적인 행위에 관한 모든 것을 기본적으로 숨기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애인 유무, 애인이 있다면 스킨십은 했는지/하는지/할 것인지 여부, 성정체성, 성적 취향에 대한 질문 등이 불쾌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는 그 정보를 당신과 공유하고 싶지 않다.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다. 고로 상대가 이성이 아닌 동성일 때도, 이에 관한 질문을 들으면 불쾌감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한데, 성적 불쾌감을 주는 발언은 비단 이성 사이에만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성희롱이 상대에게 이성적 관심이 표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건 위에 언급한 첫 번째 유형에만 해당)

타인에게 이 종류의 불쾌감을 일으키지 않기 위한 방법 역시 아주 간단하다. 성에 관한 것은 그 무엇이 됐든 타인에게 묻지 말고 스스로도 말하지 않으면 된다. 궁금해하는 것은 자유지만, 당신의 호기심을 밖으로 내보이지 말라. 굳이 알리고 싶지 않고 내보이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들 앞에서 성에 관한 이야기를 묻거나 털어놓는 건, 사파리의 짐승과도 크게 다를 것이 없는 행동이다. 농담이었다는 말은 꺼내지도 말자. 당신의 농담은 한 순간도 우리를 웃긴 적이 없다.

너무 추상적이다, 기준이 애매하다? 사회화가 적절히 이루어진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추상적이지도 애매하지도 않다. 어떤 류의 발언이 타인에게 불쾌감을 불러일으킬지 알지 못 한다는 것은, 대개 눈치도 배려도 공감 능력도 부족한 본인의 탓이다. ”타인에게 성적 불쾌감을 주는 것”이라는 성희롱의 정의가 너무 애매하고 추상적이라고 구시렁거리지 말자. 이런 건 굳이 이론적으로 알지 못 해도 감각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이다. 아주 보통의 사람들은 따로 배우지 않아도 아는 내용이다.

타인에게 성적 불쾌감을 주는 발언은 여전히 주로 남성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중년 여성으로 인해 불쾌감에 신음하는 젊은 남성들의 사례도 적잖이 보고 들었다. 성별을 떠나 우리 모두 타인에게 불쾌감을 안기지 않기 위해 더 예민해질 필요가 있는 시기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 정자는 사람이 될 수 있지만 사람은 정자가 될 수 없습니다. 수정 안 된 정자처럼 굴지들 맙시다 좀.

*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