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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의사] 코로나 블루 대신 '코로나 우울'

글 읽는 속도를 높여주는 한글 의사 시리즈 7편

  • 황혜원
  • 입력 2020.08.18 18:35
  • 수정 2020.08.19 14:10

<허프포스트>가 사단법인 국어문화원연합회의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의 지원을 받아 ‘한글 의사’ 시리즈를 진행합니다. 한글 의사는 영어로 써진 어려운 용어 등을 쉬운 우리말로 바꿔주는 이로서 ‘글 읽는 속도를 높여주겠다’라는 포부를 가진 인물입니다. 어려운 용어 때문에 정보에 소외되는 국민 없이 모두가 함께 소통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크러쉬가 눈물을 흘렸다. JTBC 예능 프로그램인 ‘비긴어게인 코리아’ 전주 편에서다. 본래 해외 버스킹이 콘셉트였던 ‘비긴어게인‘은 최근 코로나19로 촬영이 불가함에 따라 거리 두기 버스킹을 하는 방식으로 우리나라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서울, 대구, 속초, 강릉, 포항까지 전국을 돌면서 약 2개월 동안 진행되었고, 이날은 전주 경기전에서의 공연이 방송됐다. 약 9명의 아티스트가 함께 모여 이적의 ‘같이 걸을까’, 마이클 잭슨의 ‘더 웨이 유 메이크 미 필(The Way You Make me Feel)’, 프라이머리의 ‘자니’ 등 10여 곡을 불렀고, 마지막 곡은 헨리가 선택한 지오디(god)의 ‘길’이었다.

god의 '길'을 부르는 헨리(위),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크러쉬(아래)
god의 '길'을 부르는 헨리(위),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크러쉬(아래) ⓒJTBC [비긴어게인] 공식 유튜브 채널 '길' | 눈물바다가 된 비긴코 버스킹 현장' 편 캡처

18살, 가수가 되겠다는 꿈 하나로 연고지 하나 없는 한국에 홀로 떨어졌던 그에게 힘이 됐던 곡이었다고 한다. 노래 시작 전부터 긴장하던 헨리는 가사를 까먹었고, 20년 차 베테랑 하림도 긴장감을 고백했을 정도로 싱숭생숭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다행히 노래는 잘 끝이 났는데, 악동뮤지션의 멤버인 수현이 크러쉬에게 ”오빠 왜 노래를 안 불렀어요”하고 물었다. 같이 불러야 할 타이밍에서 그가 멍하니 노래만 듣고 있었던 거다. 그는 마치 그녀의 질문에 현실 세계로 돌아온 듯한 표정이 되었고, 감정에 복받쳐 대답을 잇지 못했다.

갑자기 어린아이처럼 ‘엉엉’하고 울어버리는 그를 보며 당황하는 멤버들과 달리 관객들은 함께 눈물지었다. 그리고 일요일 밤 12시, 소파에 앉아 나도 훌쩍거리고 말았다. 그를 따라 울었던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이것이 음악의 힘’이라고 거창하게 말할 순 없겠지만 분명했던 건 그가 느꼈던 감정이 화면 밖으로 전달됐다는 거다. 이를 두고 하림은 ”감정의 전이”라며, ”음악이 가진 신비로운 힘”이라고 했다. 

ⓒRUNSTUDIO via Getty Images

전 세계가 위기 상황에 빠지면서 생활이 단순화되고 생각의 결도 비슷해졌다. ‘나도 요즘 그래‘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것도 공감대 형성이 잘 된다는 말이다. 요즘 ‘생각할 시간’이 는 것도 이 감정 전이에 큰 몫을 차지했다. 몸을 움직여서 생각을 쫓아버릴 수도, 사람을 만나 왁자지껄한 웃음 속에 고민을 날려버릴 수가 없는 지금 현 상황. 코로나19는 단순히 우리의 일상을 앗아간 정도가 아니라 사회 구조를 바꾸고 있다. 이런 때에는 본질적인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사회란 무엇이고‘, ‘나는 누구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와 같은 아주 근원적인 질문들.

크러쉬는 “8년 동안 앞만 보고 계속 달렸었던 것 같다”며, ”내가 지금 걸어가고 있는 길이 맞는 길인가. 그런 질문을 처음, 스스로 질문을 했다”고 덤덤하게 눈물의 의미를 곱씹었다. 아마 행사나 활동이 줄어든 그에게도 생각할 시간이 주어졌을 테다.

크러쉬가 갑자기 눈물이 났던 이유를 설명하는 모습
크러쉬가 갑자기 눈물이 났던 이유를 설명하는 모습 ⓒJTBC [비긴어게인] 공식 유튜브 채널 '길' | 눈물바다가 된 비긴코 버스킹 현장' 편 캡처

최근 코로나19로 우울감이나 무기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우리말로는 ‘코로나 우울‘이다. 영어 블루(blue)의 2번째 의미가 ‘우울’이기 때문이다. 블루라는 말로 돌려 표현하지 않고, 나 요즘 코로나 우울이라고 말해도 괜찮다.

Night time view of home exterior - figure on laptop in the window
Night time view of home exterior - figure on laptop in the window ⓒJustin Paget via Getty Images

유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계속되는 스트레스를 언제까지나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없다”며, ”나라는 컵 안에 슬픔과 불안 같은 감정이 가득 차면 넘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소향이 크러쉬와 함께 울면서 ”그가 오히려 이 노래를 통해서 감정이 터져버렸던 것이 다행”이라고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흘러넘치면 넘치는 대로 놔두는 게 나을 때도 있다. 혹시 코로나 우울로 인해 컵이 찰랑거리고 있다면 ”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해보는 방법을 전문의는 조언했다. 그리고 가끔 우는 것도 정말 나쁘지 않다.

 

※ 국립정신건강센터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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