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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4월 30일 14시 23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4월 30일 14시 26분 KST

아이 넷 낳아도 돈 걱정 없는 나라

huffpost
박철현 제공
일본 도쿄에서 아이 넷을 낳아 키우는 박철현씨는 일본 자치단체의 탄탄한 지원 덕분에 보육에 큰 어려움이 없다고 말한다. 박철현씨의 자녀들이 집 근처 음식점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한국도 그렇겠지만 4월이 되면 일본도 바쁘다. 회계연도가 3월로 끝나기 때문에 소득확정신고를 해야 한다. 또 그 시기에 맞춰 각종 세금 고지서와 신청서가 날아온다. 나처럼 단독주택에 살면서 네 아이를 부양하는 세대주에겐 날아오는 우편물도 많다. 우편함에 가득 쌓인 각종 고지서·신청서를 보면, 유유한 독신 귀족들이 솔직히 부럽다.

이 서류들을 한장 한장 체크하다보면 당연히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하게 된다. 각종 고지서는 내가 지출하는 것이므로 기분이 급강하한다. 금액이 꽤 클 땐 속된 말로 후덜덜해진다. 대표적인 것이 국민연금과 국민건강보험료다. 연금지출액은 나와 일본인 아내를 합쳐 연간 40만엔(약 400만원), 건강보험료도 아이들이 워낙 많아 40만엔은 내야 하니 도합 80만엔이 넘는다. 내 1년 수입이 400만엔쯤 되니까 80만엔이면 큰돈이다. 고정자산세·주민세·차량보유세·차검비용까지 내면 각종 세금이 150만엔까지 올라간다. 연봉의 40% 수준이다. 당연히 기분이 처질 수밖에 없다.

6인 가족 한 달 생활비 170만원

그렇지만 신청서 용지를 펴는 순간 바닥을 찍었던 기분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잘 내셨으면 이제 돌려받으세요’라는 개념이다. 아동수당 갱신 신청서, 취학원조금 신청서, 유치원 학자 보조금 등을 기입해 내기만 하면 전부 지원받을 수 있다. 내 경우 지난해 아동수당 60만엔, 취학원조금 약 10만엔, 유치원 학자보조금으로 매달 1만4천엔씩 8개월을 받았다. 그러니까 이것저것 계산해보면 결국 실제 세금으로 내는 돈은 70만엔 정도다. 전체 수입에서 세금의 비율이 약 18%면 타당한 수준이라 생각된다. 한국에서도 소규모 자영업자나 직장인들은 그 정도 낼 것 같다.

난 일본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일본에선 아이 키우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데다 낙태를 거의 하지 않는 문화 덕분에(?) 어쩌다보니 네 명이나 낳게 됐다. 큰아이가 올해 중학교에 입학했고, 그 밑으로 두 살 터울인 초등학교 5학년, 3학년에 다니는 둘째와 셋째가 있으며, 막내는 네 살 터울이라 아직 유치원에 다닌다. 위로부터 장녀, 차녀, 장남, 차남이다. 줄줄이사탕인데 이 얘기를 하면 거의 모든 한국 사람들은 내가 아주 돈을 많이 벌거나, 집안이 빵빵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수입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연봉 400만엔, 즉 4000만원이다. 여기서 이것저것 떼면(부양가족이 많아 소득원천징수액은 아주 적다) 3800만원쯤 되지 싶다. 여기에 매달 주택론을 140만원씩 은행에 내니까 전체 수입에서 약 1700만원이 빠진다. 그럼 남는 가처분소득은 2100만원이다. 즉, 6인 가족이 2100만원, 한달에 170만원으로 1년을 산다는 이야기다. 써놓고 보니 나도 신기한데 저게 가능하다.

일단, 우리 집은 저축을 하지 않는다. 주택론 변제하는 걸 저축이라 생각하며 산다. 공교롭게도 막내가 만 18살이 되는 해에 변제가 끝난다. 막내를 마지막으로 독립시키고 집을 팔 예정이다. 그러면 이것저것 떼더라도 6억원 정도는 손에 떨어지니 그 돈으로 유유하게 글이나 쓰면서 여생을 보내면 된다. 물론 아내도 이 생각에 동의했다. 그래서 저축을 아예 안 한다. 저축의 강박에서 벗어나니까 마음이 편하다. 물론 그때까지 도쿄 수직형 대지진 같은 천재지변이 일어나질 않아야 하지만.

둘째, 경조사비 지출이나 부모님 용돈 같은 외부 지출이 거의 없다. 일본의 참 좋은 풍습 중 하나인데 결혼식을 호화롭게 안 한다. 정말 친한 사람들만 초청한다. 그래서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다. 부모도 자식에게 손을 안 벌린다. 자식도 마찬가지다. 서로 독립해서 살아가는 인격체라는 인식이 전반적으로 강하다. 물론 연금제도가 아내의 부모 세대까지는 잘 운영되었던 이유도 있겠다. 하지만 연금제도가 급격히 변한다 해도 아내도 나도 나중에 아이들에게 용돈 탈 생각은 안 한다. 아이들도 주지 않을 테니 이것 역시 대를 이어 전수될 것이다. 사람은 만 18살이 되면 원래 각자도생하는 거라고, 지금도 틈날 때마다 아이들을 ‘세뇌’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앞서 말한 각종 혜택이다. 쉽게 말하면 아이 키우는 데 돈이 거의 안 든다. 아동수당으로 매달 5만엔이 지급되고, 민주당 정권 시절 고교교육 무상화 정책이 완전히 정착되어 고교교육까지 수업료가 없다. 물론 특수학교, 이를테면 사립고등학교나 인터내셔널스쿨(국제학교), 한국학교, 조선학교 등을 다닌다면 모르지만, 일반 학교를 다니면 전부 공짜다. 오로지 급식비만 내면 된다. 중학생은 1인당 월 5450엔, 초등학생은 학년에 따라 다르지만 4369~5066엔이다. 학교 다니는 아이가 셋이니 약 1만5천엔이다. 태권도를 배우는 셋째가 8천엔, 최근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큰딸이 6천엔 월사금을 낸다. (둘째는 노는 시간 뺏긴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매우 바람직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 돈을 다 합해도 3만엔이 안 된다. 매달 5만엔을 받으니까 차 떼고 포 떼도 남는다. 유치원은 국립대학 부속이라 싸기도 할뿐더러(매월 1만엔 정도) 나중에 수업료를 냈다는 송금증 혹은 영수증을 내가 사는 도쿄의 고가네이 시청에 가지고 가면 전액 보전해준다. 즉, 공짜다. 의료도 마찬가지다. 의료보험료를 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지만(안 내면 독촉장에 이어 차압통지서가 날아온다). 각 지자체에서 미취학 아동에겐 ‘유아용 의료보험증’, 취학아동에겐 ‘어린이용 의료보험증’을 준다. 의료보험증 겉면 동그라미 안에 어릴 ‘유’와 어린이 ‘자’가 적혀 있다고 해서 일반적으로는 마루뉴(○乳), 마루코(○子)라 한다.

이 보험증의 능력은 진심 대단하다. 일단 ‘마루뉴’는 거의 모든 것이 공짜다. 통원치료는 100%이고 입원을 해도 진료비·입원실 비용 등은 전부 무료고 식사비만 낸다. 큰아이가 아직 미취학일 때, 자고 일어났더니 목이 안 돌아가는 병에 걸려 일주일간 무사시노적십자병원에 입원해 물리치료를 받았다. 이때 식비 8천엔만 냈다. 아이는 완치되었다.

보험증 마루뉴·마루코의 마법

‘마루코’는 초등학교에 진학한 아이들이 15살, 즉 중학교 졸업 때까지 받는 보험증이다. 이 보험증은 마루뉴와 비슷한데 딱 하나 차이가 진료받을 때 200엔을 낸다는 것이다. 진찰받고 약만 받아도 200엔이고, 의사의 판단에 따라 CT(컴퓨터단층촬영)나 MRI(자기공명영상) 같은 것을 찍어도 200엔이다. 미용이나 실생활에 지장이 없는 교정 목적의 치료는 보험 혜택을 못 받지만, 대부분의 질환은 갈 때마다 200엔만 들고 가면 된다. 그래서 이제는 어느 정도 큰 애들이 혼자 병원 갈 때 자기들이 알아서 “엄마, 200엔 줘”라고 말한다. 200엔인 것을 알고 있으니까 계산하고 말 것도 없다.

이 보험증은 교통사고로 큰 수술을 받을 때도 쓸 수 있다. 물론 해당 병원은 나중에 교통사고를 낸 가해자나 보험회사에 구상권을 청구하겠지만 그건 나중 문제고, 일단 치료하고 본다. 그리고 치료를 받은 이는 200엔만 내면 된다. 만성질환이면 지자체마다 다른데 도쿄는 ‘소아만성특정질병의료비조성’이라는 조례를 만들어 18살 미만 아동과 청소년이 만성간질환, 만성호흡기질환, 당뇨병, 만성심부전, 내분비질환, 신경근육질환, 만성소화기질환 등 18개의 병을 앓고 있다고 담당 주치의가 판단하면, 연간 5천엔을 초과하는 의료비를 전액 지원한다. 5천엔까지 자기 부담이고, 초과분은 광역지자체인 도쿄도가 내는 것이다.

자치단체의 당연한 의무

도쿄도뿐만 아니라 다른 지자체에도 이런 제도가 완비돼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될 만큼 일본 지방자치의 역사는 깊다. 1946년 제정된 일본 헌법에도 명시돼 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메이지 시대 중기부터 근대화 정책의 하나로 실시됐다는 게 정설이다. 헌법에 따라 만들어진 법률인 ‘지방자치법’을 보면 집행기관, 주민, 의회가 지방자치의 근간이라 적고 있다. 우리 동네에서 매월 시시때때로 열리는 각 분야 공청회에 주민은 당연히 참여할 수 있다. 아내도 교육이나 의료 관련 공청회에 몇 번 참여했다. 나는 3년 전 그 공청회에서 강연도 했다. ‘외국인 아빠가 일본에서 네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것들’이라는 가벼운 주제였지만 신선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교육, 의료 등 우리 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는 정책은 이런 공청회에서 수집된 의견을 이 자리에 참여한 기초의원(의회)과 시청 청소년교육복지과(집행기관) 직원들이 참고하고 논의해 집행예산을 결정한다. 중단 없는 대화와 숙의가 일상적으로 이뤄지니 데모나 집회 그런 게 별로 없다. 아니,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도쿄도 고가네이시에 10년이나 살았는데도 말이다.

사실 아이를 키우는 데 가장 걱정되는 것이 교육과 의료다. 그런데 (이런 표현은 쓰기 싫지만) 내가 네 명이나 낳아서 키워보니까 일본은 확실히 애 키우는 데 돈이 안 든다. 출산하면 국민건강보험 가입자에 한해 ‘출산육아일시금’이라는 명목으로 42만엔을 준다. 이 돈을 보통 ‘출산축하금’이라고 한다. 큰애가 태어날 땐 38만엔을 받았는데 4년 전 막내 땐 40만엔으로 올랐고, 지금은 42만엔이다. 출산비용이 보통 40만엔 선이기 때문에 아이 낳는 데도 돈이 안 드는 셈이다. 태어날 때도 돈이 안 들고, 키울 때도 돈이 안 든다.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게 무척 부담스러웠지만 실제 해보니 돈이 안 들어가니 별것 아니었다.

그런데 이건 꼭 제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육아복지 제도야 한국도 어느 수준에 올라왔고, 돈 많은 지자체는 그 수준을 더 끌어올렸다고 듣고 있다. 추세가 그러하니 앞으로 나아지지 후퇴하진 않을 것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사람들의 마인드다. 나는 일본에서 아이 키우는 방식을 한국에서 똑같이 적용할 자신이 없다. 아마 한국에 있었다면 나도 좋은 대학에 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스파르타식 교육을 했을지도 모른다. 공부만이 아니다. 학급 친구가 아이폰을 가지고 있다면 그걸 사줬을 것이다. 노스페이스나 몽클레어 점퍼도 사주려고 오만 고생을 다 했을 것이다.

일본에서의 육아가 정말 편했던 건 이런 허세가 없기 때문이다. 성적이 좋아야 하고, 그래서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학원을 가야 하고, 과외를 해야 하고, 외국어가 필수라니 뭐니 하는 것들이 없다. 아이들은 방과 후 가방을 던져놓고 집 앞 공원으로 달려나가 동네 친구들과 줄넘기나 공던지기를 하며 논다. 3개월에 한 번꼴로 있는 지역축제 프로그램을 짜고, 미코시(축제 때 사용하는 가마)를 든다. 방학이 되면 아무도 시키지 않은 자원봉사활동(일본에선 ‘볼란티어활동’이라 한다. 당연히 가산점 같은 것도 없다)으로 하루 종일 신체장애인을 돌보거나, 꽃집에서 손님을 접객한다. 그런데 불안하지 않다. 왜냐면 다른 집 아이들도 다 똑같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명문사립대 부속중학교(마침 집 주위에 와세다대학 직속인 와세다실업중고등학교가 있긴 하다)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렇다고 “그 친구들처럼 너도 들어가!” 이렇게 강요하지 않는다.

현실을 바꾸려면 부모가 나서야

나는 이게 정상이라 생각한다. 네 아이를 키워봤고, 지금도 키우는 아빠 처지에선 아무리 생각해도 일본이 낫다. 한국의 현실을 고치고 싶다면 결국 젊은 부모들이 나설 수밖에 없다. 시스템 정비와 생각의 변화가 동시에 이뤄지지 않는 한 한국은 그냥 그대로일 것이다. 아마도.

* 한겨레21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