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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21일 17시 04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2월 21일 17시 04분 KST

고양이는 (개와 다르게) 처음 본 사람에게도 치유효과를 발휘한다

[이상한 논문]

 
NiseriN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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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이완 효과

고양이.

“이승에서 어떻게 고양이를 대하느냐가 천국에서의 신분을 결정한다.” (로버트 A. 하인라인)

“고양이의 사랑보다 위대한 선물이 있을까?” (찰스 디킨스)

“고양이는 절대적인 정직함을 지니고 있다.” (헤밍웨이)

동서고금의 고양이 찬양을 전부 소개하려면 책 한 권을 써도 모자랄 것이다. 무함마드부터 나쓰메 소세키까지, 고양이를 사랑한 위인은 수없이 많다.

고양이는 이 지구의 히에라르키*의 정점에 군림한다. 인간이 ‘집사를 자처하도록 만드는’ 존재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달리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딘가 이런 마조히스트적인 측면이 있다.

(*히에라르키 : 조직 ·집단질서, 개인에 있어서의 권력적 ·신분적 ·기능적 상하, 서열관계가 정돈된 피라미드형의 체계를 뜻하는 말. 위계(位階) ·계통(階統) 등으로 번역된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데, 지극히 이성적이고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때 우리 집 냥이가 지금까지 본 어떤 고양이보다도 귀엽다. 아니, 우주에서 제일 귀여울 것이다. 사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다들 이렇게 말한다.

“무슨 소리야? 개는 집이라도 지켜주지만 고양이는 아무 짝에도 도움이 안 되잖아? 그러니까 개가 더 낫다고!”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됨에도 키우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드는 마성이야말로 고양이의 위대함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소개할 논문은 그런 고양이의 치유 효과를 연구한 것이다. 사실은 고양이도 사람에게 도움이 되며 사람을 치유해줌을 증명하려 한 연구다.

다만 이것은 내 추측인데, 아마도 저자인 이마노 선생과 오가타 선생 또한 그저 고양이가 좋아서 이 논문을 쓴 것이 아닐까 싶다. 안 그러면 이런 논문을 왜 쓰겠는가?

꼼지락

‘고양이 카페’의 실태

제목에도 나오듯이, 이 논문은 대학 축제에서 ‘고양이 카페’를 열고 그 카페에 온 손님을 대상으로 설문을 함으로써 고양이 카페에서의 체험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조사한 연구다. 카페를 찾아온 손님은 남성이 30명, 여성이 84명으로 모두 114명이고 평균 연령은 21세였다. 이 데이터만을 보면 “여성 을 만나고 싶은가? 그렇다면 고양이 카페에 가라!”라고 말하고 싶어질 정도다. 고양이와 여성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최고의 장소다.

그런데 독자 여러분은 ‘고양이 카페’라는 곳에 가본 적이 있는가? “아직 가 본 적 없는데”라는 독자를 위해 이 대학 축제에서 연 ‘고양이 카페’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논문을 인용해 소개하겠다.

“입구에서 슬리퍼로 갈아 신고 들어간 곳에 돗자리를 깔고 방석을 준비한 공간, 소파와 의자를 준비한 공간을 각각 마련해 편히 쉬면서 고양이와 접촉할 수 있게 했다.

고양이용 침대와 캣타워, 고양이용 장난감을 방 안에 뒀다. 옆방에서 구입한 음료수나 음식을 가지고 고양이가 있는 방에 가서 자유롭게 고양이와 접촉하거나 놀 수 있게, 또 고양이 DVD를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어떤가? 이 극진한 서비스가. 고양이 DVD까지 준비되 어 있고, 겨냥도를 잘 살펴보면 벽에는 고양이 사진까지 걸려 있다. 그야말로 고양이로 시작해 고양이로 끝나는 공간인 것이다! 다만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는 지옥 그 자체와도 같은 공간일 것이다. ‘고양이만 없으면 최고일 텐데……’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독자 여러분은 ‘고양이’=‘예쁜 여자 아이가 있는 장소’ 혹은 ‘꽃미남이 있는 장소’로 바꿔서 생각하기 바란다. 요컨대 호스티스 클럽이나 호스트 클럽 같은 곳이다. 벽에는 아이돌 같은 예쁜 여자아이(혹은 꽃미남)의 사진이 장식되어 있고, 텔레비전에서는 예쁜 여자아이(혹은 꽃미남)를 전방위에서 감상할 수 있는 영상이 흘러나오고, 마치 내 집 같은 공간에서 그들(그녀들)과 식사를 함께 할 수 있다.

어떤가? 최고가 아닌가? 고양이가 싫은 사람은 이런 식으로 ‘고양이’를 ‘여성’ 혹은 ‘남성’으로 치환해 읽기 바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조사 자료를 읽어보면 이 고양이 클럽, 아니 고양이 카페에는 모두 네 마리의 고양이가 있었던 모양이다. ‘고양이 카페’의 고양이 일람이라는 표에 사진과 함께 정리되어 있다. 네 마리의 이름은 각각 ‘피아노’와 ‘지 코’ ‘비비아’ ‘고콧토’이고, 나이는 1세부터 19세까지다. 꼬맹 이부터 원숙한 중고령까지, “미묘美猫 네 마리 상시 대기 중!”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만 같다. 그리고 일람표(126쪽 표)를 잘 보면 ‘획득 기능’이라는 항 목이 있다. 뭐지, 이 무미건조한 표현은!?

조심조심 읽어보니…….

•장난감 등을 이용해 함께 놀 수 있음.

•무릎 위에 안김.

•사람이 쓰다듬어도 가만히 있음.

이게 전부 기능이었단 말인가? 배워서 터득하는 것이었단 말인가!! 부처님 손바닥, 아니 고양이 발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인간들…….

아니, 이런 것에 상처를 받아서는 안 된다. 그렇다. 이 카페의 고양이들은 어디까지나 ‘숙련된 전문가’ 고양이들이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고양이와는 다른 고양이들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고양이들과 일시적인 향락 또는 환상을 즐기러 가는 곳. 그곳이 바로 고양이 카페인 것이다.

꼼지락
 

고양이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을 알아본다

그러면 조사 결과는 어떠했을까? 첫 번째 질문은 ‘고양이와 어떻게 접촉했는가?’(복수 답변 가능)였다. 왠지 결과가 궁금해 가슴이 두근거린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고양이를 싫어하는 독자 여러분은 고양이를 ‘미녀’나 ‘꽃미남’으로 바꿔서 읽기 바란다.

•제1위 “만졌다.” 75.5퍼센트

→ 이른바 ‘쓰다듬기’다. 대부분의 고양이가 쓰다듬기를 허락했다니, 참으로 양심적인 카페다.

•제2위 “봤다.” 68.2퍼센트 →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하다”는 말이다. 손을 댈 수도 없을 만큼 좋아하는 그 기분,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제3위 “함께 놀았다.” 20.0퍼센트 → 요컨대 ‘동반 출근’*이라고나 할까? 여기까지 성공했다면 상당한 수완가다.

•제4위 “끌어안았다.” 7.3퍼센트 → 꺅~! 저질~! 그 귀여운 아이를 처음 만난 날 껴안다니!!

역시 여기까지 가능한 사람은 열에 한 명도 안 된다.

……그런데 이거 전부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 아닌가?

참고로, 끌어안는 데 성공한 사람 중에는 사실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있는 경험자가 많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고양이는 인간의 미묘한 몸동작이나 냄새에 민감하며 이를 통해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경향이 있음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고양이가 먼저 가까이 다가온 것도 끌어안기까지 진도를 나갈 수 있었던 큰 이유 중 하나로 분석된다. 고양이도 사람을 보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결과

다음은 고양이 카페를 찾아온 사람들의 ‘감상’이다.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논문에 실린 결과를 순위 형식으로 발표하겠다.

•제5위 “부드러웠다.” 46.4퍼센트

•제4위 “말랑말랑했다.” 52.7퍼센트

•제3위 “마음이 온화해졌다.” 62.7퍼센트

•제2위 “마음이 치유되었다.” 65.5퍼센트

그리고 대망의 1위는……. 73.8퍼센트가 대답한 “귀여웠 다”입니다! 축하합니다!!

그랬구나! 역시 고양이는 귀여웠어!! ……가 아니라, 아니 그걸 모르는 사람도 있나? 역시 이 논문을 쓴 이유는 단지 고양이가 귀엽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였던 거 아냐?

그러나 여기에서 ‘고양이는 귀여운가, 아닌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고양이와 접촉하고 받은 구체적인 감상이다. 그리고 감상의 대부분은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긍정적인 것이었다. 뭐, 그야 그렇겠지. 애초에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고양이 카페에 안 올 테니까.

논문에는 손님들의 감상에 관한 논평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고양이 카페라는 일시적인 만남의 장소에서도 ‘고양이’의 존재에 눈을 뜨게 하고 고양이에 대한 흥미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일시적인 만남이라니……. 이게 무슨 원 나이트 스탠드냐!! 어쨌든, 이 또한 숙련된 전문가 고양이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동물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지금부터는 조금 진지한 이야기를 하겠다.

동물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에 관해서는 외국에서도 적극적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가령 개에 관한 연구에서는 기르는 개와 처음 보는 개는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의 정도가 다르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이 논문의 경우, 고양이 카페에서는 처음 보는 고양이도 모두의 마음을 치유해준다는 사실을 실증했다. 기르는 고양이에게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르지만 처음 만난 고양이에게서도 효과를 얻을 수 있고, 나아가 고양이를 키운 적이 없는 사람도 고양이에게 마음의 위안을 얻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이 논문을 이와 같이 동물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을 조사한 연구 속에 위치시키면 큰 의미를 지니게 된다.

또 털로 뒤덮인 동물을 만지면 심장 수술을 받은 환자의 회복이 촉진됨이 확인되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동물을 만지는 것이 사람의 심장 혈관 계통에 직접 영향을 준다고 한다. 즉, 마음뿐만 아니라 몸에도 즉각 효과를 발휘함이 밝혀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연구 결과에 입각해 외국에서는 교육 현장에서 고양이나 개를 만지게 하는 시도도 진행되고 있다. 그렇게 하면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아동의 수가 감소하고 성장기 특유의 짜증 등도 크게 줄어든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학교에 동물을 데리고 가서 학생들에게 만져보게 함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치유한 활동이 보도된 바 있다. 사실은 이 논문의 취지도 ‘동물 매개 교육’, 즉 동물을 교육 현장에 활용하자는 메시지였던 것이다.

장대한 끝맺음

다시 논문 이야기로 돌아가자.

진기한 논문을 연구하면서 주목하는 부분 중 하나는 논문의 말미에 있는 ‘과제와 전망’이다. ‘고양이 카페’ 논문에는 다음과 같은 ‘반성문’이 실려 있었다. “기능을 획득한 고양이였지만, ‘고양이 카페’ 당일에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못한 고양이도 있었다”라는 고양이에 대한 지적이다. 숙련된 전문가임에도 낯을 가리는 고양이가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한편으로 ‘고양이 카페’를 방문한 뒤에 동물을 키우고 싶어진 사람이 증가했다는 결과도 얻었다. 반려 동물 산업의 규 모는 2조 엔에 이른다고 하는데, 이는 끊임없이 고민을 안고 사는 현대인의 대부분이 반려 동물에 의지하고 있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다만 반려 동물을 키우는 데는 그 나름의 책임도 따름을 명심했으면 한다.

그리고 이 논문의 마지막에는 장대한 맺음말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탈리아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작은 고양이는 자연이 만든 최고 걸작’이라고 말했는데, 대학 축제에서 임시로 기획한 ‘고양이 카페’에서도 이 말이 사실임이 증명된 것이 아닐까?”

에이,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이 자리를 빌려 다빈치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최고 걸작이라는 칭호는 우리 집 고양이에게만 허락된 것”이라고!

‘이상한 논문 -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지적 수집품’(꼼지락)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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