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을 상대로 압도적 군사력을 과시하려 시작한 미국-이란 전쟁이 오히려 세계 각지의 미군 전력이 크게 위축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중동의 주요 미군기지가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 공격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데 이어, 영국에 배치된 전략폭격기까지 공격 위협을 피해 미국 본토로 철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로이터=연합뉴스
뉴욕타임스는 7일(현지시각) 분석기사를 통해 미군의 전력 투사능력을 뒷받침해 온 해외 군사기지의 취약성이 드러났다고 전했다.
이란 드론 위협에 영국서 B-1 폭격기 12대 철수
미군은 지난 주말 영국 공군 페어포드 기지에 배치했던 B-1 전략폭격기 12대를 미국 본토로 긴급하게 철수시켰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세력이 기지 인근에서 드론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데 따른 조치다.
로이터는 6일 미국 당국자들을 인용해 이란의 드론공격 모의에 대한 우려가 철수 결정의 배경이라고 전했다. 영국 경찰도 관련 테러 의혹을 수사하고 있지만 이란은 연루 사실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전략폭격기 철수의 의미를 축소했고,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미국 국방부가 필요한 곳으로 군사 자산을 재배치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영국 페어포드 기지는 미국이 유럽을 거쳐 중동에 장거리 폭격 전력을 투입하는 주요 거점이다. 이곳을 더 이상 활용할 수 없다면 전략폭격기는 미국 본토에서 출격해야 하고 늘어난 작전 시간으로 공중급유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더욱 주목할 대목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미국 스스로 드론이라는 비대칭 전력의 군사적 효과를 인정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영토 깊숙이 드론을 투입해 러시아 군용기를 공격했다. 이번 미군의 전략폭격기 철수도 미군기지 인근에서 드론 공격이 우려됐다는 점에서 장거리 미사일의 사정권 밖에 있는 기지도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국 항공모함에 NH-60R 시호크 헬리콥터가 착륙하고 있다. ⓒ 미국 중부사령부=연합뉴스
중동 걸프만 미군기지 잇따라 타격 : 미국의 전력 투사능력 약화
미군 전력의 후퇴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월 28일 미국이 이란을 전면 공습하면서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이란은 중동 전역의 미군기지를 향해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통해 보복에 나섰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2024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전 세계 51개국에서 최소 128개의 군사기지와 시설을 운용하거나 이용하고 있다. 독립 연구기관들이 소규모 시설까지 포함해 추산한 해외 미군기지는 80여 개 국가와 지역에 약 750개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한 해외 군사기지망은 미국의 세계 패권을 뒷받침하는 핵심 수단이었다. 미국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도 병력과 항공기, 군함을 신속하게 투입하고 군수물자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해왔다. 적대국에는 군사적 억제력을 행사하고 동맹국에는 안보 공약의 신뢰성을 보여주는 역할도 맡았다.
그러나 이란과의 전쟁으로 이러한 군사기지망의 취약성이 드러났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중동에서 미군이 사용하는 주요 군사기지 13곳 가운데 상당수가 이란의 공격으로 파괴돼 정상적인 주둔이 어려워졌다.
뉴욕타임스가 올해 3월 위성사진 등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최소 7개 미군 시설의 통신·레이더 관련 구조물에서 피해가 확인됐다.
여기에 쿠웨이트의 슈아이바 항구에서는 미군 육군 작전센터가 파괴돼 장병 6명이 사망했다. 카타르 알우데이드 공군기지의 조기경보 레이더와 바레인 미 제5함대 본부의 통신 장비도 공격받았다.
미군은 바레인과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카타르의 군사 시설의 피해로 인해 병력과 항공기를 다른 지역으로 옮겨야 했다. 미국이 수십 년간 구축해 온 중동 군사거점망이 이란과 전쟁과정에서 크게 훼손된 것이다.
미국 항공모함 전단의 작전도 이번 전쟁을 계기로 복잡해졌다. 페르시아만 접근이 제한되면서 아라비아해에서 작전하는 함정들은 멀리 떨어진 인도양 디에고 가르시아 기지에서 군수품을 조달하는 비중이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국방부 중동정책을 담당했던 다나 스트라울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 연구원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미국의 급작스러운 폭격기 철수가 작전 계획과 군의 사기에 혼란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스트라울 연구원은 이어 "더욱 우려되는 것은 전략적 차원에서 이란이 중동에서 멀리 떨어진 미군기지까지 위협해 트럼프 행정부를 굴복시킬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해외 미군기지 방어 전략 재검토 필요 : 평택기지는 안전한가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의 해군과 공군이 사실상 무력화됐고 해상 봉쇄로 경제도 붕괴 직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란의 재래식 군사력이 약화됐다는 사실과 해외 미군기지에 대한 위협이 사라졌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보인다.
미국 국방부는 이스라엘과 요르단에 새로운 기지를 건설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의회의 예산 승인과 수년의 건설 기간이 필요해 단기간에 기존 거점을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에도 시사점을 던진다. 경기도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는 주한미군사령부와 미8군 등이 주둔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해외 미군기지다.
한국의 안보 환경은 중동과 다르지만, 고정된 대규모 군사기지에 전력을 집중하는 방식이 드론과 미사일 위협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는 평택기지도 피할 수 없다.
미국이 이란과 전쟁에서 마주한 문제는 단순히 기지 몇 곳을 잃었다는 것을 넘어 전쟁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해외 군사 거점을 안전하게 유지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미국은 세계적 군사력 운용 방식 자체를 다시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