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헌법적이고 불법적인 국정농단"
국가공동체는 거대한 항공모함과 비슷하다. 권력을 차지한다고 해서 혁명적으로 노선을 바꾸기 어렵다. 최소한의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고, 주변의 불만을 다독여야 하고, 궁극적으로 '파이'를 나눠야 한다. 불행한 일이었지만, 이들이 쟁취한 한국 상황은 별로 좋지 않았다. 일단 경제적파이가 너무 적었고 작은 것에서 일정 부분을 강제로 취하는 과정에서 무리수가 따랐다. 주변 강대국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입장도 고려하지 못했다. 주요 정책을 수정하는데 필요한 '교통정리'도 제대로 못했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부당한 방법으로 자동차를 탈취한 뒤에, 지난 10년 동안 도로가 바뀌었다는 것도 모른 채, 과거에 해 왔던 방식으로 무모하게 돌진한 것과 흡사했다.
기업 하는 사람이 경제를 안다는 것은 결국 말이 안 되는 얘기다. 이명박이 경제를 안다? 지나고 보니 우스꽝스러운 얘기였다. 기업을 아는 것이지 경제를 아는 것이 아니다. 기업과 경제를 동일시하는 것은 지극히 초보적인 생각이다. 기업가 출신들은 친기업 정책을 쓰지 친국민 정책을 쓰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정책을 전환하면 거기에 맞는 사람을 써야 한다. 안 맞는 사람에게 그렇게 해보라고 하면 결코 그렇게 되지 않는다. 이것이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이 실패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이다.
박형준 정무수석은 "형, 더 이상 청와대를 공격할 필요도 없어요, 박영준을 정리하기로 했어요. 그러니까 더 이상 국정농단에 대한 문제제기 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알았다. 그렇게 한다면 내가 더 뭘 하겠냐"라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박영준은 지경부차관으로 영전을 했다. 박형준 수석이 내게 허언을 했을 리는 없다.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런 일이 벌어졌다. 당시 대한민국에는 낮의 대통령과 밤의 대통령이 따로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퍼져있을 때였다. 전당대회 기간 중에 국정농단 사건이 터졌다. 민주당은 박영준, 이영호 등 선진연대 핵심 인물들이 호텔에서 비밀 리에 상시 모임을 갖고 국정을 농단했다고 주장했다.
헌법 84조는 내란죄라면 재직 중에도 대통령을 형사 소추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형법에 내란의 죄라는 것이 규정되어 있다.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키면 내란죄가 된다(87조). "국헌문란"은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91조 1호) 또는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91조 2호). 최순실과 그 일당이 저지른 일들이 형법 91조 1호와 2호에 해당한다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나는 '좋은 정부'를 만들겠다는 꿈에 부풀어 정말 신들린 듯 일했다. 그리고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내 꿈은 거기서 끝났다. 처음부터 모든 게 엉망으로 돌아갔다. 권력 주변은 정권을 잡은 게 아니라 이권을 잡은 사람들 위주로 돌아갔다. '임금님은 벌거벗었다'라고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모든 일은 결과로 얘기해야 한다.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가 성공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본인 이외에는. 구질구질하게 얘기할 것 없이 한 마디로 실패 한 것이다. 그럼 나도 실패한 것이다. '온갖 불이익을 감수하고 끝까지 비판의 입장을 고수했다'고 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그걸로 내 책임이 면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역시 정권의 실패에 참회해야 할 사람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