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거 어떡하냐"
2002년 마지막 폭발 때는 250명의 사상자와 12만 명의 이재민을 낸 바 있다.
해안 온천이 있어 관광객들도 자주 찾는 곳이다.
쓰나미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가운데 '해저 산사태'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아이 캔 스피크'는 가능한 한 위안부 문제라는 무거운 소재를 짊어지는 시간을 미뤄둠으로써 그 주제 의식에 확실하게 공감하고 이입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한다. 그리고 민족적 채무처럼 끌어안고 있었던 위안부 문제라는 역사적 엄중함을 산뜻한 이야기에 담아 간편하게 떠먹인다. 무엇보다 위안부 문제라는 엄중함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에 공감하라고 강요하지도 않고, 응당 그래야 하는 것이라고 단정짓지도 않는다.
박정희가 없었더라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 또한 노무현이 없었더라면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박근혜는 다행스럽게 박정희 신화를 산산조각냈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을 넘어설 수 있을까?
"결합상품 같은 관계는 없어." 김소쿨이 내게 전한 명언 중 하나이다. 한 사람이 가진 감정적, 육체적 요구 전부를 해소할 수 있는 완벽한 관계는 세상에 없다. 모두 다른 장단점을 가졌으니 다양한 사람과 교제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연애관이라며 김소쿨은 농담했지만 내게는 매우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그러니까 김소쿨에게 우정도 그러한 것이구나.
다를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모여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면 다투는 것은 당연한데, 인생의 대부분을 연애하지 않고 살아온 나를 보고 누군가는 "연애 안 하니까 속 썩을 일은 없겠다"라고 해맑게 웃었다. 그럴 땐 손을 들어보게 하라! 무엇을? 백년전쟁에 버금가는 나의 우정과 전쟁 10년사(史)를. C를 만난 것은 대학 OT에서였다. 우리는 (겉으로 보기에는) 금방 친해졌고 곧 단짝이 된 듯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거대한 착각인지 알아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영국이 신자유주의 선봉장 역할을 자임한 지 40년, 전통적 보수의 가장 큰 미덕인 수용과 포용, 곧 선한 부분은 점차 사라지고 악한 요소는 갈수록 극악해졌다. 무릇 강자는 차이를 명백히 한 후라야 약자에게 친밀감을 보인다. 그러나 그것도 서로 섞여 있을 때 얘기다. 계급들이 지역/문화적으로 아예 격리되면 친밀성마저 불필요하다. 불평등은 더 노골화되고, 피해자(이주민, 복지수급자, 하층계급)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비난전가의 정치' 혹은 '희생양의 정치'가 득세한다. 이것이 영국의 신흥(新興)보수가, '노동계급의 악마화'(Chav) 담론이 범람하는 가운데도, 잉글랜드북부 노동자들의 환호를 이끌어내며 브렉시트 소동을 도발했던 맥락이다.
아름다움은 확실히 취향을 탄다. 여기에는 누구나 공감한다. 그러나 못생김도 취향을 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단언컨대, 못생김에도 취향이 있다. 오랫동안 연애하지 않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누군가는 "눈이 너무 높은 것 아니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 말에 내포된 메시지는, 뭐, 그런 거였다. "니 주제에 얼굴 따지냐." 한때는 "저는 얼굴 안 봐요" 하고 손사래를 치며 나의 결백함, '개념'을 인증하려고 했다. 지금은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허무한 시도인지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