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간 활동했는데...
환경부 ‘폐기물부담금·EPR분담금’ 자료 지난해 5700만장 음반에 1억7천만원 내
되기는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어떻게 가짜를 찾을 수 있을까?
다회용컵은 ‘권고 재사용 횟수’가 20여회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려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 논란이 일고 있는 문제의 제품.
국내에서는 일반쓰레기와 다름없이 처리된다.
CSU는 극우정당의 선거 프레임에 끌려들어갔다. 결과는? 완벽한 실패였다.
“독일에서는 포기한 미친 짓을 한국은 왜 계속하는가?”
일론 머스크는 푸에르토리코의 대정전 소식을 접하자 그것을 자신의 태양광 발전 사업의 홍보 기회로 삼았다. 푸에르토리코 전역에 솔라시티(Solar City) 발전기를 설치하여 전력 공급 문제를 해결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온갖 '위험'에는 실체가 없다. 반면 실체가 없는 위험을 떠벌이는 '세력'에는 실체가 있다. 당신들은 원전의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지키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원전의 위험을 떠벌이는 당신들의 세력을 지키고 싶은 것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을 생각하는 환경주의이다. 특히 가난한 이들을 위한 환경주의 말이다. '까짓 전기요금 좀 오르면 어떠냐'고 으스대거나 '에어컨 안 틀어도 한산모시를 입으면 시원하다'고 말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 가진 자의 여유일 뿐이다. 그 몇 푼의 전기요금도 내지 못해 여름에는 헐떡이고 겨울에는 덜덜 떠는 그런 이들을 생각하는 환경주의와 에너지 정책이,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더욱 절실하다. 스스로를 진보라고 생각하건 보수라고 생각하건, 더 많은 이들이 사람을 생각하는 환경주의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원자로'를 줄이겠다고, 없애겠다고, 짓던 것도 안 만들겠다고 '탈핵 선언'을 한 대통령이, 어떻게 동시에 '원자로'를 바닷속에 풀어놓겠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일까. 한반도에서 발생한 적도 없는 진도 7.0의 강진이 정확히 원자력 발전소를 강타할 가능성을 운운하는 환경주의자들은, 왜 문재인 대통령이 도입하겠다는 원자력 잠수함이 북한의 어뢰나 기뢰에 맞아 폭파될 가능성은 두려워하지 않는 걸까. 과연 우리는 최소한의 상식적 기준을 가진 상태로 '탈핵' 논의를 하고 있긴 한 걸까. 북한이 핵탄두를 개발했다는 이유로 원자력 잠수함을 건조하겠다는 논리는 더더욱 이상하다.
실제로 많은 환경주의자들이 현재 원자력 발전을 더 개발하고, 그 이용을 확대하고, 미래를 향한 징검다리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사례부터 꼽아보도록 하자. '가이아 이론'.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정규 교육 교과서에 나오는 개념이니 말이다. 지구를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 간주하고 그 생명체가 스스로 균형을 유지하고자 한다는 발상으로,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이 1972년 주창한 것이다. 그리고 그 제임스 러브록은 2004년, 영국의 신문 〈인디펜던트〉(Independent)에 한 편의 기념비적 칼럼을 기고했다. 제목은 다음과 같다. '원자력 에너지는 유일한 친환경 해법이다(Nuclear power is the only green solution)'
결국 좁은 면적에서 많은 전기를 생산하면서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 해법은 원자력뿐이라는 것이 빌 게이츠의 해답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난 2011년 이후에도 빌 게이츠는 그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부호이자 자선사업가이기 이전에 엔지니어이고, 위험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법은 기술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라는 진리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의 원자력 발전소. 그리고 대한민국의 탈핵 정책. 두 가지를 놓고 비교해보자. 양쪽 모두 '미래 세대'를 걱정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빌 게이츠는 구체적으로 미래 세대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현재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탈핵 논의는 '하지 말자'고 주저앉는 소리가 주를 이루고 있다.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에너지를 덜 쓰는 것이 과연 '진보'인가? '적극적인 에너지 수요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이 탈원전론자들의 기본 논지 중 하나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경제 성장을 포기하고, 지금까지 한국 수출 기업들의 경쟁력 중 하나였던 값싼 전기를 포기하더라도, 탈핵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그런데 현재 오가는 탈핵 탈원전 논의의 근간과, 이 퇴행적 전근대주의와의 거리가 과연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에너지의 사용 그 자체를 죄악시하는 현재의 환경 담론은 과연 현실에서 어느 정도의 선한 결과를 보장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