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서울과 수도권을 위한 희생양이 아니다.” - 박남춘 인천시장
미세먼지 관련한 여러 대책에 대해 언급했다
세계 최고의 R&D 재원 투입에도 불구하고 왜 성장률은 하락하고 있는 것일까? 갑질은 사회만이 아니라 기업문화에 그대로 축적되어 있다. 층층시하의 권위주의적 기업문화 속에서는 논박, 즉 잘못되었거나 변하는 시대에 부응 못할 것들에 대한 체계적 폐기를 감행하기 어렵고 그에 따라 산파술, 즉 창의적 아이디어의 산출과 시행이 곳곳의 암초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문재인정부의 일자리정책은 굉장한 강점을 지니고 있지만 몇 가지 한계도 갖고 있다. 첫째, 연금까지를 감안한 현 공무원(2016년 기준 954,113명이고, 교원이 1/3을 넘음)의 임금체계가 국가재정에 큰 압박을 줄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데, 그 체계적 개선을 시행하지 않는 상태에서 향후 5년간 17만 개를 늘릴 경우 국민의 세금 부담을 몹시 가중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 공사 등 공공부분의 평균임금이 민간분야의 시장에 비해 과도한 상태를 해결할 해법을 함께 모색하지 않은 채 추진하는 공공부문의 대규모 일자리 창출은 그 부담을 최종적으로 국민에게 짊어지게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것은 기본소득의 주요 주창자들이 보수주의 정치 사상가들이라는 사실이다. 예컨대 19세기 자유주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과 20세기 자유지상주의자 밀턴 프리드먼을 꼽을 수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리드먼은 국가가 보편적 사회복지를 구현하고자 세금을 많이 징수하거나, 최저임금제를 도입하거나 또는 정년을 정하여 기업에 권고하는 등의 정책이 모두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왜일까? 간단하다. 진정한 자유주의자라면 누구라도 자유를 구가하는 삶을 허용할 터인데, 기본소득은 자유를 위한 최소의 물질적 조건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민주사회의 정당은 정책으로 국민의 표를 받도록 공정한 경쟁을 펼쳐야 한다. 이때 박근혜 정부처럼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된 뒤 정당한 사유 없이 나 몰라라 하는 표리부동의 정치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 정당은 변화에 부응하는 정책적 일관성으로 국민의 신뢰를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정당은 토해내는 일련의 정책에 기본적 숨결을 불어넣는 정치적 가치, 즉 정치철학을 나름의 고유한 것으로 구축해야 한다.
다수 국민이 잘난 자들의 간교한 이성적 농간에 희생을 당하면서 공적인 삶에서 배제되고 급기야 제 한 몸과 자기 식구 건사하는 데 안간힘을 쓰도록 내몰리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 최순실 사태는 화산 폭발로 작용하고야 말았다. 국민의 반응은 단지 한 마디, "도대체 이게 나라냐?"는 반문에서 잘 드러난다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을 보위할 사정 라인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탄핵 선창에 뒤이어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탈당, 그리고 현직 법무부장관 및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의 표명이 잇따르고 있다. 누구라도 촛불을 든 국민의 민심을 헤아린다면, 불통인 박대통령을 지원하는 대열에 서있다는 것이 도도한 역사의 흐름에 거역하는 반역임을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정상적 시각으로 예측할 경우, 최고위 공직사회 기강의 이완과 몰락이 도미노 효과를 초래하여 박대통령도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라고 본다. 다만 몰이성적 고집과 일부 측근들의 술수로 끝까지 해보자는 최악의 사태로 흘러가지 않기를 희망한다.
친박 중에서도 핵심인 정치인과 청와대 수석들, 장관들은 제 정신을 갖춘 사람들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1선에 진을 친 주요 인사들이 권력과 금력 그 자체에 눈이 멀어서 최소한의 합리성과 공의조차 외면하고 있었다면, 2선에서는 좀 더 그럴 것이고, 그 너머의 국민은 드리워진 안개로 인해 판단에 혼선을 빚었을 것이다.
트럼프 후보는 기후변화, 지구온난화를 부인한다. 트럼프는 '기후변화는 날조된 것(hoax)이다'고 말했다. '파리협정도 탈퇴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석탄산업을 청정석탄(Clean Coal)이라면 적극 옹호하면서 '오바마-클린턴의 석탄과의 전쟁을 분명히 반대한다'고 공언했다. 또한 태양 바람에너지의 이용은 '매우 비싸며 재생에너지에 대한 인센티브(보조금)를 없앨 것'을 공약했다. '캘리포니아에 가보면 풍력 발전이 많은 독수리를 죽이고 있다'며 오히려 재생에너지가 생태계파괴를 야기한다고 말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자유시장에 AI를 진입시켜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다는 데 고무될 것이고, 경제적 공리주의 역시 시장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서 이를 반기는 낙관론의 입장에 서게 될 것이다. 결국 AI 통제권을 갖는 자본에게는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창조적 영역에서 비켜선 노동자 대다수는 불리한 위치에 놓일 것이 뻔하다. 이런 지형에서는 사회주의적 접근이 보다 유효할 것으로 판단된다. 일자리를 빼앗긴 노동자들에게도 그 필요에 따른 충족을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기본소득을 포함한 보편적 복지정책을 펼치는 데 유리할 수 있다.
사람들 마음을 들뜨게 하는 추석이 다가왔지만, 이를 마냥 기쁘게 받아들일 수 없는 분들도 있다. 민족의 명절인 추석을 맞으면, 한쪽에서는 떠들썩하게 신명나는 일이 벌어지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일하느라 분주하다. 바쁘게 일하는 쪽은 대부분 여성이다. 일이 많고 고될수록 여성들의 피로도는 가중된다. 많은 남성들은 1년에 두어 번 찾아오는 명절인 만큼 다소 힘들더라도 그냥 참고 지내라는 태도를 갖고 있다. 전형적인 가부장제 자세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하겠다는 청년 복지정책은 아직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일자리를 구하는 과정에 놓인 가난한 청년들에게 삶의 희망과 기회를 열어주는 시도를 한번 해보겠다는 것이다. 복지부가 복지정책을 관장하고 주도해야 할 바의 정부 부서일진데, 서울시의 정책에 딴죽을 건다면 이것은 못난 자의 옹졸함이요 무책임의 극치일 뿐이다.
지진으로 걱정이 들어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는 고리원전 주민들의 이야기는 남의 얘기로만 치부될 일이 아니다. 옛 소련의 체르노빌 사태를 남의 일로만 여기던 일본 시민들이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자신들의 현안으로 직면한 것처럼, 원전 강국인 우리도 언제 치명적 재앙을 맞이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 5일에 울산 반경 52㎞ 떨어진 동해 해역서 진도 5.0의 지진이 발생했다. 현재 고리는 8기가 가동되고 있고 2기가 공사 중이어서 조만간 10개가 밀집되는 세계 최고의 고밀도 원전지구가 된다. 바로 위 경북 월성 6기의 원전까지 감안하면 조밀도가 놀라울 지경이다.
일본에서는 1986년에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발생하자 불안감이 감돌았고 이에 언론인 히로세 다카시가 1989년에 위험 지역을 여럿 거론하는 가운데 후쿠시마 원전을 콕 집어서 지진해일에 따른 위험 지역으로 분류하는 책을 출간하여 경고를 보냈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원전 당국과 정부는 이를 외면하다가 2011년에 초유의 재앙을 맞이한 바 있다. 한국의 정부당국과 관련 기관도 이와 다르다고 할 것인가? 그 위험한 원전시설의 부품을 짝퉁으로 납품받고 안전검사서마저 위조하여 사용하고 있었으니 어찌 다르다고 할 것인가?
국민의당 부상은 반가운 일이다. 적대적 공생정치에 안주하던 기득권 양당체제를 일거에 깨뜨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직히 평가할 때 그 안에 희망과 좌절이 함께 버무려져 있음을 보게 된다. 제3의 정치적 돌파구를 연 것은 희망이지만, 새정치의 비전은 여전히 공허하고, 무엇보다도 청산되어야 할 호남의 기득권 세력을 한껏 끌어안고 있는 형세다. 호남의 개혁정치만 포용하는 가운데 제3의 정치적 이념을 찾아 실현코자 한다면 새로운 사회 건설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제 새로운 국회에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환경정책을 수립하길 바란다. 우선 반드시 국민적인 검증을 받아야 하는 것은 이명박 정권 중점사업 중 하나였던 4대강 사업 비리에 대한 철저한 규명과 관련자 처벌이다. 대통령의 역점사업이면 대한민국의 자연을 파괴해도 된다는 말인가. 이런 점에서 국민들의 분노는 멈추지 않고 있으며, 이번 총선에서도 그러한 민의가 반영되었다고 본다.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도 마찬가지이다.
MB정권에서 20조원 이상의 막대한 혈세를 탕진하며, 환경생태계를 파괴했던 4대강 토건사업에 대해 막상 심판을 해야 할 야당의 정강에는 환경정의는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야당이 반대했던 4대강 사업에 가담하여 적극 찬성한 동조자들을 야당에서 영입하는 웃기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민주화라는 이름 아래 마르크스주의 사고에 우호적인 사람들과 호남이라는 이름 아래 보수적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사람들이 한 지붕에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DJ에서 노무현정부로 이어지면서 좌우와 중도가 마구 뒤섞이는, 비유컨대 온탕과 냉탕을 오고가는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인해 국민에게 좌절을 안겨주기 일쑤였고, 최근에는 완장 차는 자리라도 보존해보자는 호남기득권 세력과 권력을 확실히 잡아보자는 친노패권주의가 충돌하기에 이르렀다.
여권 내에서 공천과 관련해서 벌어지는 최근의 행태는 퇴행의 극치를 보여준다. 박근혜대통령의 충복을 자처한 윤상현의원이 당의 대표를 겨냥하여 공천서 "그런 XX부터 솎아내라"고 발언하는 데 따른 오만함은 유신정권 말기 차지철 경호실장의 그것을 연상시킬 정도다. 민주주의 시대에 아직 독재의 망령이 떠돌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