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는 추념사였다.
현직 대통령이 참석한 4·3 추념식에 참석한 건 12년 만이다.
과장이 아니다.
아마도 해방 이후에 출간된 한국문학(일본어로 쓴 한국문학을 포함한)의 가장 중요한 업적 중 하나로 꼽힐 만한 걸작인 〈화산도〉는 한국의 유수하다는 문학출판사에서 출판되지도 못했다. 그리고 작품의 완역본이 몇 년 전 출간된 뒤에도 내가 알기로 주요문예지 어디에서도 제대로 된 평문으로 거의 다루지 않았다. 작가의 성취에 걸맞은 국내의 명망 있는 문학상을 수여하지도 않았다. 아마도 짐작컨대, 일본어로 쓴 김석범 문학은 '한국'문학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그런 점에서 김석범 문학은 역설적으로 한국문학의 경계와 의미를 묻는 역할도 한다)
세월호 참사도, 국정농단도, 헌정훼손도, 사태의 본질에 대한 이성적 논증과는 거리가 먼 '종북'이니 '빨갱이'니 하는 이념적 프레임의 전쟁터로 만들려는 시도가 계속 발생한다.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거기서 시민적 양식과 "이성"은 설 자리가 없다. 그래서 아이를 잃고 단식 농성 중인 부모들 앞에서 '폭식투쟁'을 하는 짓이 벌어진다. 나라를 팔아먹는다고 해도 특정인과 세력을 맹목적으로 '묻지마 지지'하는 일이 벌어진다. '묻지마 지지'와 '묻지마 비판'은 민주주의의 덕목과는 거리가 멀다. 매사에 '너는 누구의 편인가'를 따지고, 그를 통해 이념공세를 펼치고 자기편을 규합하려는, 자기편이 아니라면 '밥줄'도 끊어야 한다는 식의 '빨갱이' 사냥이 벌어진다.
나에게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러브 스토리 중 하나는 잉그리드 버그만과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이야기다. 잉그리드 버그만은 1940년대 할리우드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여자였다. 로베르토 로셀리니는 '무방비 도시'라는 영화로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 사조를 일으킨 남자였다. 문제가 하나 있었다. 잉그리드 버그만은 남편과 딸을 가진 유부녀였다. 로셀리니는 부인과 별거 중인 유부남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이었던 당대의 할리우드는 잉그리드 버그만을 용서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