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는 이 판결에 대해 선고 당일 즉시 항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 유통의 혁신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저는 한글 역시 혁신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20세기 들어 식민지 운영의 경험 없이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는 우리밖에 없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한글이 중요한 기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글은 분리된 자음과 모음을 합쳐서 소리를 만듭니다. "ㄱ + ㅏ = 가"가 되듯이, 수학 방정식 같습니다. 발음할 때 입술 모양, 혀의 형태, 성대 모습까지 실증 분석해서 자음의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한글은 곧 과학입니다. 천지인(天地人) 사상을 투영해서 하늘, 땅, 그 사이에 선 사람의 모습으로 모음을 형상화했습니다. 우주 원리와 인문학까지 투영했습니다.
나의 누추한 방이 달빛에 잠겨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는 것보담도 오히려 슬픈 선창(船艙)이 되는 것이다. 창살이 이마로부터 콧마루, 입술 이렇게 하여 가슴에 여민 손등에까지 어른거려 나의 마음을 간지르는 것이다. 옆에 누운 분의 숨소리에 방은 무시무시해진다. 아이처럼 황황해지는 가슴에 눈을 치떠서 밖을 내다보니 가을 하늘은 역시 맑고 우거진 송림은 한 폭의 묵화다. 달빛은 솔가지에 솔가지에 쏟아져 바람인 양 솨―소리가 날 듯하다. 들리는 것은 시계소리와 숨소리와 귀또리 울음뿐 벅적거리던 기숙사도 절간보다 더 한층 고요한 것이 아니냐? (윤동주 <달을 쏘다>)
다른 세대도 젊었을 때 그랬단 말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상황이 다르니까. 삼포세대, 헬조선. 더 노력하고 열심히 살라는 말은 못하겠습니다. 이미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요. 다만 한 가지, 이런 말 속에 서린 비관은 바람에 날려버렸으면 합니다.
법적으로 난민(refugees)과 이주민(migrants)은 구분해야 합니다. 이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절박함', 그리고 '선택의 여지가 있었는지' 여부입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난민은 여권과 비자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 인류 보편의 국제법 영역이고, 이주민은 여권과 비자를 챙겨야 하는 국내법의 문제입니다. 지금 시리아를 떠나 유럽으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이 기준을 대입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들은 절박할 뿐더러,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이주를 선택한 집단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국경에서 그들을 상대로 여권과 비자 검사를 하겠다고 하기가 어색해 보입니다.
최근에 주변에서 제게 많이 물어봤던 사안이 있습니다. 자연 풍경 사진에 관한 것인데요, 동일하거나 유사해 보이는 두 장의 사진이 있는데, 후작이 전작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 아니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자연 풍경, 사건, 사실은 그 상태대로 '존재'하는 것이지, 창작이 아닙니다. 그래서 자연 풍광은 모두의 것, 즉 공공재(public domain)이고 특정인의 소유가 될 수 없습니다. 누군가 풍경을 담은 멋진 사진을 보고, 그 사진과 비슷한 시간에 같은 지점에 가서 유사한 구도로 같은 장면을 찍었다고 해도 나중에 찍은 사진이 그 전에 찍은 사진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은 아닙니다.
저작권은 저작자가 자신의 사상이나 생각을 세상에 알릴 때에 그 노고를 보상해 주는 제도입니다. 베낀 작품은 세상에 공헌한 것이 없습니다. 베낀 대상은 이미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공헌한다는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거창한 것은 아닙니다. 창작의 정도는 아주 낮아도 됩니다. 베끼지만 않았다면 말이죠. 다만 '베낀다', '표절한다'는 의미가 완전히 똑같이 베낀 것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개개 사건마다 판단이 필요하고, 그 기준과 관련해서 어려운 이론과 논쟁들이 있습니다.
과거를 시인하고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 사실 쉽지 않다. 진정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 이면에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잘못을 감추고 싶어하는 심리가 작용한다. 처음부터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사람은 드물다. 증거를 들이대고 설득에 설득을 거듭해야 잘못을 시인하는 경우가 더 많다. 갈수록 사건이 복잡해지면서 법정에서도 피고인의 자발적인 반성을 기대하기가 예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그래도 설명하고 설득하면 대부분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렇게 설득까지 해가면서 얻어낸 반성에 의미를 둘 수 있을까?
혹부리 영감은 도깨비들에 둘러 싸여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자신의 혹을 노래주머니라고 거짓말해서 혹을 떼어 주는 대신 도깨비 방망이를 받아 부자가 되었습니다. 혹부리 영감이 도깨비를 속여 도깨비 방망이를 가지게 된 것은 죄가 될까요? 나중에 도깨비들이 몰려와 재물을 돌려달라고 하면 돌려줘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