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소록도병원 입원 환자들의 미술 작품이었다.
이탈리아 출신인 강칼라 수녀는 1968년 한국에 파견됐다.
김현아는 사과를 하면서도 한센인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한국당을 제외한 정치권이 반발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물론 외국에서 자원봉사하러 온 사람이 국가 정책에 쓴소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지금 와서 그 이유를 캐묻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진 않다. 그러나 그들이 있었던 현장은 거대한 역사적 인권 유린의 현장이었고, 단종·낙태는 그들의 종교적 신념에도 위배되는 것이었다. 뒤집어 말하면, 그들은 40여 년간 단종·낙태를 비롯한 끔찍한 인권유린에 침묵했다. 그 모순 속에서 그들은 어떻게 수십 년을 살았을까. 그들의 개인적 선함과 국가 차원에서 그들에게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을 추진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1916년 조선총독부가 전라도 고흥의 끝자락에 위치한 소록도에 소록도자혜의원(현 국립소록도병원)을 설립한 이래 소록도는 오랫동안 국가가 한센병을 관리하는 상징적 공간이 되었다. 소록도병원의 입장에서 지난 백년을 회고하자면 한국은 이미 1992년에 '한센병 퇴치'가 선언된, 한센병 관리정책의 모범이 되는 국가이다. 일부에서는 소록도병원이 공공의료의 모범이자 미래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한센병이 아닌 한센병 환자의 입장에서 그 백년은 피와 눈물로 얼룩진 고통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