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검찰은 지배 권력에 기생하며 살아왔다."
해당 내용을 보도한 언론사도 포함됐다.
글과 사진을 전시했던 벽면을 모두 뜯어냈다.
때가 되면 해당 시인의 실명을 밝힐 의사가 있다고도 말했다.
한 현장예술가는 "내가 하고픈 말을 검열받지 않고 마음껏 떠들고, 관객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배제하지 않는 게 진정한 문화예술인 복지"라며 "예술가를 구휼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예술 지원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엘리트를 자처하는 문체부 관료를 비롯해 문체부 산하기관의 매개 인력들은 '혼이 비정상'인 한 사람 위정자의 심기 경호를 위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조직적으로 '부역'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물론 개인의 양심 문제로만 환원할 수 없는 전면적 관료화의 문제가 있을 것이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가 "권력은 규칙과 절차의 얼굴을 하고, 당연한 듯이 복종을 요구한다"라고 한 말은 '형식이 내용을 압도하는' 전면적 관료화 시대의 문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아무리 대외적으로는 진보와 민주와 평화를 논의하고 표방한들, 자신이 직접 동원하고 광고하고 형성한, 그래서 직접 자기 자신과 관계된 권력과 자본에 대해서는 아무런 진실성과 성실성을 보일 수 없다면, 그 집단의 지식과 문학성이 도대체 무슨 소용인가? 대표 지식인 그룹이라 자처하는 집단이 자신과 관계된 공적인 문제에서 비판적 거리를 확보하지 못한 채, 대외적으로만 진보적인 의제를 주장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문제가 많은 부패한 지식-권력의 복합체일 것이다. 나쁜 권력과 폭력을 휘두르는 자가 꼭 보수를 표방하는 사람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아무리 진보적인 주제를 내세우거나 지지하는 사람이나 조직이더라도, 실제로는 얼마든지 폭력적이거나 기만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백낙청이 정점에 있는 창비 시스템이 바로 그 행태를 보인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실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