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공동체는 거대한 항공모함과 비슷하다. 권력을 차지한다고 해서 혁명적으로 노선을 바꾸기 어렵다. 최소한의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고, 주변의 불만을 다독여야 하고, 궁극적으로 '파이'를 나눠야 한다. 불행한 일이었지만, 이들이 쟁취한 한국 상황은 별로 좋지 않았다. 일단 경제적파이가 너무 적었고 작은 것에서 일정 부분을 강제로 취하는 과정에서 무리수가 따랐다. 주변 강대국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입장도 고려하지 못했다. 주요 정책을 수정하는데 필요한 '교통정리'도 제대로 못했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부당한 방법으로 자동차를 탈취한 뒤에, 지난 10년 동안 도로가 바뀌었다는 것도 모른 채, 과거에 해 왔던 방식으로 무모하게 돌진한 것과 흡사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대 폐지론'을 들고 나와 다시 한 번 논쟁이 붙고 있다. 사회의 문제가 말 몇 마디로 해결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서울대 폐지와 대학의 평준화라는 주장은 가벼운 발언이다. 서울대학교를 없앤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문제는 서울대학교의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왜곡된 욕망구조에 있다.
이 글을 통해 고백하는데, 나는 새누리당 국회의원이면서도 대선 투표에서 박근혜를 찍지 않았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나는 박근혜 후보의 검증 책임까지 맡고 있었기에 그 누구보다도 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집권을 하면 나라가 어찌될까 심각하게 걱정을 했다. 오죽하면 그 당시 '박근혜와 최태민과의 관계가 드러나면 온 국민이 경악할 것이고, 박근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며칠 동안 밥도 못 먹을 것'이라고 얘기했겠는가. 불행히도 이 정권은 내 예상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흘러왔다. 그러나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동안 정부와 사회가 학벌 타파를 통한 능력(실력)중심사회 구현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학벌사회적 특성이 강해질뿐만 아니라 동시에 세습사회적 특성마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신세습사회의 예로는 먼저 몇몇의 명문대 졸업생이 법조계를 장악하는 현상을 막기 위한 목적도 포함되어 있던 법학전문대학원제도 도입 결과로 초래된 법조인 세습 경향 강화를 들 수 있다. 그동안 철저하게 학생 개인의 실력에 의해 좌우되었던 대학 입학제도마저도 대학 입시에서의 한 줄 세우기가 학벌사회를 조장한다는 명분하에 개선을 시도함으로써 부모의 직접적 영향력이 점점 더 크게 작용하는 쪽으로 변화되고 있다.
한국 여성의 삶을 바꾸는 하나의 계기로 나는 배낭여행을 꼽는다. 유학보다 경제적 비용도 적고, 시간 손실도 적다. 무엇보다 유학보다 훨씬 더 즐거운 추억을 안겨준다. 다른 나라에 가서 그 나라 언어로 학업으로, 취업으로, 업무로, 현지인들과 경쟁을 하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여행은 누구와 경쟁할 필요 없이 스스로와의 싸움이다. 즐길 수 있는가, 없는가. MBA보다 싸다. 학위가 없어 취업은 MBA보다 못하지 않겠냐고 생각하겠지만, 요즘 MBA도 취업이 예전만 못하다.
사실 제가 이런 실천을 한다고 해서 견고한 학력주의, 학벌주의가 깨지는 것은 아닙니다. 저보고 '낭만적이다'는 비판이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전쟁터 같은 선거판에서 쓸데없이 고집을 피운다는 얘기도 나올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이런 선택을 한 것은, 그동안 학벌사회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 온 분들의 운동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