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영화들 중 상당수는 핑계만 생기면 조선 땅을 뜨거나 뜨려고 발버둥치고 주인공들은 대부분 탈주를 꿈꾸고 그러는 게 가능한 사람들이다. 상하이, 만주, 도쿄, 블라디보스톡, 하와이. 목적지는 어디라도 상관없다. 이러니 이 영화들이 내민 진지한 주제보다 '아가씨'의 숙희가 속으로 내뱉는 독백이 가장 솔직해보이고 또 마음을 울리는 것이다. "한 밑천 잡아서 조선 땅 뜬다. 조금만 참자. 이 시골뜨기 종년들." 하긴 어찌 공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결국 <아가씨>에서 겉으로 보기에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성적 묘사 부분이 될 것이다. 이 영화에 남녀간의 섹스 장면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가씨와 숙희 사이의 굵직한 섹스 시퀀스가 몇 차례 있고, 이 과정의 성적 묘사는 대단히 과감하고 생각보다 조금씩 더 길다. 그러나 그렇게 긴 묘사를 통틀어 딱히 성적 흥분을 일으키게 할 만한 구석은 거의 없다. 이 영화에서 포르노그래피를 향한 욕구를 챙기고자 했던 관객이라면 다른 걸 찾는 게 좋겠다(그녀들이 탈주하는 세계가 정작 남성-포르노그래피화된 야설의 세계다). 대신 그간 한국영화에서 본 적이 있나 싶었던 자세나 표정들이 나와서 좋다(표정이 특히 마음에 든다. 이 영화에는 섹스 장면에 언제나 등장하는 재채기하기 직전의 표정 같은 건 없다).
박찬욱의 '아가씨'를 칸영화제에서 먼저 본 비평가들이 가장 많이 던지는 표현은 '메일 게이즈'(male gaze·남성의 시선)다. 이 영화의 동성애 베드신이 남성 시선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는 알 것 같다. 처음부터 박찬욱이 '캐롤'의 섹스신처럼 온화한 것을 찍을 거라고는 생각도 한 적이 없다. 그랬다면 오히려 놀랐을 것이다. 당연히 이 영화의 섹스신은 선정적이고 적나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