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 소년은 학폭으로 극단적인 선택까지 시도했다.
오디션이 시작됐다.
워너브라더스와의 소송 결과가 관건이 될 듯하다
007의 제작자 바바라 브로콜리.
여성이 세상을 구하거나 대단한 일을 해내려면 보통 이상의 능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남성들은 그렇지 않았다. 원작 '고스트버스터즈'만 해도 네 명의 남자들은 그리 잘난 게 없었다. 리메이크의 여성들과 똑같은 보통의 인간들이다. 별 거 아닌 보통의 남자들은 그동안 세상을 구하고, 엄청난 일을 하면서 영화와 소설에 등장했다. 여성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고스트버스터즈'는 별 것 아닌 역할교대로도 대단한 일을 한 것이다. 이제 보통의 여성들도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여기저기에서 보여주고 있으니, 남자들은 더욱 멋있어질 필요가 있다.
무엇이 대단하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기억을 되돌려 그간의 블록버스터 영화들에서 흑인과 여성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떠올려 보자. 항상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것은 백인 남성이었고 여성은 그저 몸매를 부각시키거나 백인 남성 주인공의 도움을 받거나 구출받는 역할이었으며 흑인은 그저 개그 캐릭터 혹은 영화에서 제일 먼저 죽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스타워즈 에피소드 7은 그런 캐릭터 구도를 완전히 반전시켜서 흑인과 여성을 전면에 내세워 이들로 하여금 이야기를 끌어나가게 했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암살>, <미션 임파서블: 로그 네이션>의 공통점은 일단 여성 액션의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여자 배우의 액션 장면 비중 이상의 공통점이 영화를 묶고 있다. 우선 이들 영화에서 액션을 펼치는 여자 주인공들은 공식적인 주인공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매드 맥스> 시리즈와 <미션 임파서블> 영화판은 모두 1인 남성 주인공 중심의 프랜차이즈이고 이 시리즈에서는 이전까지 여성 비중이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었다. <암살>의 경우 홍보에서 앙상블 위주의 영화임을 내세웠다. 다들 영화를 보고 나서야 홍보했던 것보다 여성 비중이 훨씬 높았음을 알 수 있는 영화들이다.
패션 무지렁이 남성 한 명이 특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여성의 옷차림은 어떤 것인지, 사례 수집 차원에서 들어보고 싶다면 개인적인 견해를 이야기할 수는 있겠다. 일단 떠오르는 건 에이드리언 라인이 연출한 영화 속의 장면들이다. 조지 밀러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로 젊은 감독들에게 액션에 대해 한 수 가르쳐준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언제고 이분이 다시 복귀해서 섹시함의 본때를 보여주길 기다리고 있다.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의 페미니즘 논쟁에 참여한 사람들 상당수가 페미니즘 영화를 일대일 상징으로만 이루어진 지루한 영역으로 여기는 것처럼 보여 심히 걱정스럽다는 말은 해야겠다. 적어도 내가 전에 체크했을 때 이 세계는 훨씬 역동적이고 다양한 곳이었다. 쉽게 분류될 수 없는 입체적이고 불완전한 여성들이 쉽게 분류될 수 없는 입체적이고 불완전한 행위를 한다는 것 자체는 이 영화의 페미니즘 자격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시사회장에서 주인공 샤를리즈 테론은 많은 질문을 받았다. 그 중 주목할 만한 질문은 "어떻게 그런 분노 연기가 가능했느냐?"는 것이었다. 생략 됐지만 이 질문 앞에는 "여성의 몸으로"라는 뉘앙스가 있었다. 샤를리즈 테론은 "놀랐지. 여성들도 분노를 가지고 있다"고 재치있게 받아쳤다. 여성 연기자들도 '당연히' 남성과 같은 분노 연기를 펼칠 수 있다는 뉘앙스가 깔려 있다. 이제 '여성의 몸으로 그런 것도 가능한가'라는 질문 자체를 폐기할 때가 왔다. 나아가 '여전사'라는 말도 사라져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