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속칭 '폴리페서'들이 유독 한국에서 판을 치는가? 한국 학계에서 국가권력은 견제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너무나 친근한 유착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미 사회 귀족이 된 소위 '명문대'의 전임교수들은 정치·행정 엘리트들과의 네트워킹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안철수처럼 주변에서 다 뜯어말리고 아직 시기가 아니라면서 혀를 차는 와중에도 정말 무리하게 서둘러서 전면에 나섰던 정치인이 역사적으로 하나 떠오른다. 오늘 불쌍하게 끌려나온(쿨럭;) 역사적 인물은 무려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즉 러시아 볼셰비키당의 지도자이자 소련 건국자 되겠다. 1913년 무렵 망명지 스위스에서의 레닌의 상황은 안습 그 자체였다.
외교와 협상이 나라를 지켜준다? 허황한 이야기다. 먼 과거로 갈 것도 없다. 동구의 공산블록이 무너지고 시장경제가 세계의 곳곳의 일반적인 현상이 된 세계화 시대, 모든 것이 계약과 협상에 의해 결정될 것으로 보이는 21세기에 땅 따먹기 전쟁이 일어났다. 영토할양이란 먼 과거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시대의 일인 줄만 알던 시대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간단한 전투가 있고 영토가 빼앗기는 100여 년 전에나 있음직한 일이 벌어졌다.
올해 7월 8일의 사드 배치 결정도 의혹투성이입니다. 당시에는 한미 양국 국방부의 사드 배치에 대한 검토가 마무리되지도 않은 시점이었는데 청와대에서 7월 7일에 NSC 상임위가 개최된 직후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검토가 완료되는 걸 기다릴 것도 없이 단 하루 만에 배치를 결정해버린 것입니다. 일체의 논의나 설명도 없이 얼마나 급하게 결정하였으면 새누리당 영남권 의원 20여명이 이의를 제기하는 성명을 발표했겠습니까? 게다가 국방부의 주요 의사결정 회의라고 할 수 있는 군무회의, 합동참모회의, 간부회의에서 사드 배치를 논의하거나 청와대에 건의하기로 한 적이 없습니다.
시민 자신들 또한 대숙청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일반인들의 '자발적인 협조' 없이는 이 정도의 대규모 숙청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개인 간의 원한 관계를 비밀경찰에게 밀고해 해결하기도 하였음은 물론이거니와, 사실상 전 국민의 '정보원화'가 이루어진 상황이었다. 국민 누구라도 아무런 이유 없이 숙청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당시 평범한 사람들의 심리 상태는 이러했을 것이다. "내가, 혹은 내 가족이 먼저 당하느니 내가 먼저 밀고하겠다." 따라서 대숙청 시기의 사회는 "속삭이는 사회"로 정의된다.
오바마 정부가 아직 개발이 완성되지 않은 사드 요격미사일 구매 예산을 대폭 삭감하여 1개 포대 분량인 48기에도 못 미치는 44기만 주문했기 때문입니다. MD 예산의 대폭 증액을 기대했던 록히드 입장에선 입맛만 다실뿐입니다. 그나마 지금까지 록히드마틴이 납품한 실적은 7기에 불과합니다. 미사일 성능에 치명적 결함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이 놈의 사드라는 무기체계는 그 성능이 어느 정도인지 아무도 모르고, 그래서 대량생산도 못하는 것입니다.
야당과 여당을 넘나들며 대통령까지 지내며 영욕의 세월을 보냈던 김영삼씨가 생전에 누렸던 영향력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가지려 하고, 또한 그 자리에 끼지 못하면 그런 돼지 여물통(pork barrel)을 나눠 먹지 못한다는 절박감 탓이 아니었나 싶은 느낌적 느낌도 드는 것이다. 특히나 '정계를 은퇴'하여 전남 강진에서 '칩거' 중이라는 손학규씨까지 며칠이나 상가를 지켰다고 하니 애잔한 생각마저 들었다. 지하의 트로츠키가 엉뚱하게도 자신이 극동 모국(某國)의 정치인들에게 중요한 장례식에 빠진 정치인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된 줄 안다면 쓴웃음을 지을지도 모르겠다.
끝내 그들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 중 프랑스 출신의 대표격이었던(그리고 우리나라에도 널리 소개되었던) 알튀세르는 1980년 어느 날 아내의 목을 졸라서 살해-_-하였음을 고백하고 정신병원에 갇히기까지 한다(프랑스 좌파 중에서도 그의 부인 살해를 쉴드친 이들이 있었을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현실과 유리된 고담준론이나 내세우고 최소한의 윤리조차 지키지 못했던 주제에 변혁을 감히 입에 올렸던 어느 이념이 완벽하게 파산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