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에 찾아온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확대하는 것은 물론, 근로(자)는 노동(자)으로, 양성평등은 성평등으로, 신체장애자는 장애인, 여자는 여성으로 정명해야 한다. 이런 당연지사를 위해서도 수많은 촛불을 필요로 하는 그만큼 우리의 정치구도는 왜곡된 민의 위에 세워져 있다.
트럼프는 양립할 수 없는 종교들이 말하는 각자의 진실들을 하나로 화합시킬 수 있는 능력 한 가지를 우연히 가지고 있다. 그가 진실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모순에 개의치 않는다. 그에게 있어 팩트는 팩트가 아니다.
세계는 왜 지금 탈진실의 시대에 들어서고 있습니까. 첫째, 세계화와 급격한 기술의 변화는 어느 때보다 높은 불확실성을 야기하고 있고, 경제적 불평등 및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어느 때보다 극심한 삶의 불안감을 낳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확실성과 불안감이 큰 사회에서는 걱정과 염려, 후회, 인지 부조화를 경험할 가능성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끼리만 모여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플랫폼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보수와 진보의 스펙트럼에 걸쳐서 다양한 언론이 공존하고, SNS상에서 1인 미디어 시대가 열렸지만, 내가 원하는 정보만 선별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실과 진실의 권위가 무너진 폐허에서 선동가들의 거짓말이 번져가고 있다. 그들의 거짓말이 위험한 진짜 이유는 그들이 거짓을 사실로 믿게 하기 때문이 아니라, 명백한 '사실'을 하나의 '의견'으로 강등시키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사실의 신뢰성을 잠식하고 공론장을 왜곡하여, 결국 민주주의의 토대를 허문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 사이의 논쟁에 근거하고, 의견의 타당성은 사실에 기초하기 때문에, 사실이 무너지면 의견이 무너지고 결국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것이다.
2016년은 사이다의 시대다. 많은 매체들이 올해의 단어를 선정하면서 '사이다'를 빠뜨리는 일은 없을 게 틀림 없다. 뭔가 갑갑한 상황이 속 시원하게 풀렸을 때 사람들은 거두절미하고 '사이다'라고 말한다. 한국 정치에도 사이다가 하나 있다. 이재명이다. 그는 거두절미하고 사람들이 원하는 말을 해주는데 엄청난 장기가 있는 정치인이다. 이재명 역시 자신이 사이다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비상시국에는 고구마보다 사이다가 먼저"라고 말한 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