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남녀 5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당신도 '탈조선'을 꿈꾸는가?
한 고객의 농담에서 시작된 이벤트였다.
20년 전 한국 개발업계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고급 개발자 1명을 데려오는 대신, 초급 '인부' 20명을 쓰는 게 더 싸다며 고급 개발자를 내치곤 했다. 20년 뒤 스타트업을 권하는 요즘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백수탈출 빅데이터 무료교육' 입간판에서 보듯, 전문가 대신 인부 수요가 더 많은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유승준이 뭘 잘못했습니까? 약속을 어긴 거요? 발언을 철회하고 국적을 바꾼 것이 사회적 살인을 감행할 만한 일입니까? 천만에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형평성'을 운운하시는 분들이라면, 애초에 군 입대를 앞둔 징집 대상자에게 출국을 예외적으로 허가해준 병무청의 어긋난 형평성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겠죠. 유승준을 개인적으로 증오할 수 있습니다. 그건 개인의 기호-가치 판단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국가 시스템이 나서서 유승준이라는 인격의 혐오를 조장하는 일은 잘못된 겁니다. 그건 시민혁명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사회가 할 일이 아닙니다. 그런 시스템은 저열한 겁니다.
어떤 조직이 퇴보의 길을 걸을 때 조직원들은 이탈, 항의, 맹목적 충성의 세 가지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시민들은 탈출자들처럼 보였다. 헬조선을 말하던 이들이 탈조선을 말하기 시작했고, 젊은 이민자들이 늘어난다는 뉴스가 나왔다. 나라의 가장 예민한 고객들이 이탈을 시작하고 있었다. 반면 둔감한 고객들은 그저 눈을 감고 충성을 맹세하는 것처럼 보였다. 기성세대는 자신이 먹고사는 일 이외에는 소음처럼 여기는 이들 같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눈을 돌려 보니, 우리는 항의하는 시민들이 가득 찬 사회에 살고 있었다.
청년의 정치참여는 거창한 선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변화의 동력, 청년의 한 표가 세상을 바꾼다"는 그럴듯한 표현에는 희미한 가슴 떨림도 없다. 애초에 그건 청년이 한 말이 아니라 표를 호소하는 정치인들이 지어낸 말이기 때문이다. 청년 투표율이 높아야 한다는 열정적인 말을 들으면 이제는 속이 답답하다. 청년이 마주하는 현실이 우리의 투표율이 낮은 탓인가. '투표율'을 강조하는 사고방식은 손쉽게 '20대 개새끼론'이 된다.
이명박 정부 이래 수구·보수 세력이 87년 이후 민주화 성과를 파괴해온 상황을 생각해보라. 남북관계와 외교는 엉망이고, 국가기구에서 시민사회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영역에서 탈민주화가 진행되었다. 남아 있는 민주화 성과는 선거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상황을 요약하면, 기득권을 모두 챙긴 수구·보수 세력은 선거에만 이기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반면, 돈도 권력도 없는 다수 대중은 선거에 지면 모든 것을 잃는 형국이다.
최선을 다해왔고 이력서에 쓰고 넘칠 스펙을 갖추었는데도 단지 내일을 계획해 볼 수 있을 정도의 일자리를 찾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우리가 너무 과한 것을 바라는 것입니까?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닌 것을 알지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자기 탓'뿐입니다. 내 노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면, 지금의 상황이 잘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사회가 붕괴하였으면 좋겠다거나, 어차피 이번 생은 망했다거나, '탈조선'만이 답이라는 분노 섞인 자조감이 청년들 사이에 만연해있습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달라지기 어려운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