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중에 생방송으로 남북정상회담을 봤는데, 마음이 진짜 복잡했어요"
"체조계가 다 아는 성추행이 무혐의라는 게 말이 되나?"
이제 10년 전에나 가능했던 남한 주도의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포괄적 핵 타결에 대한 미망부터 제발 좀 버렸으면 좋겠다. 과거에 대한 미망은 북한과 중국에게 한미일간 공조의 틈만 노출시켜 북한에게는 더 대담한 도발해도 괜찮다는 심리적 공간과 중국에게는 현상유지가 가능하겠다는 등의 오판의 여지만 만들어 준다. 미국이 모든 옵션을 검토하고 나올 때 한국이 전쟁만은 막겠다고 나오면 북한은 오히려 한국을 믿고 맘 편하게 더 대담하게 도발을 하게 되고 중국은 모르쇠를 더 해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받는다. 평화를 지키고 한반도 전쟁을 막으려는 선의가 긴장유발의 도구로 악용되는 역설을 낳는다.
탈북자들은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나 미국 의회, 서구 언론을 불문하고 질문은 한결같다. "왜 북한을 떠났나? 그곳에서의 삶은 얼마나 끔찍했나?" 그들의 이야기가 끔찍하면 끔찍할수록 더 많은 관심을 받는다. 국제적인 행사에 초청받는 일이 늘어날수록 수입이 늘어난다.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이야기들의 경쟁, 이것이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한민족 그리고 조선족'이라는 TV의 대담프로그램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날 프로에 참여한 한 한국여성은 식당에서 일하는 중국동포 여성들은 말소리 톤이 높고 상냥하지 못하고 웃지 않는 얼굴들이라 인상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다. 중국에서 말소리가 높은 한족들과 어울려 살다 보니 톤이 높다는 것, 하루 12시간 일해야 하고 돈 때문에 한 달에 겨우 이틀 혹은 삼일밖에 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생활에 여유가 없고 웃음기도 없고 상냥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