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BTS(방탄소년단)의 멤버 정국의 생일이었다.
"보좌진분들의 노력과 헌신이 없이는 하나도 가능하지 않다."
산초는 자신의 신념을 쏟아 ‘산초 그 이상’이 되고, 산초는 그렇게 돈키호테가 된다.
프랑스 팬 560명과 만났다.
두 번째 국내 개인전을 열었다.
나는 한국인의 기본적인 도덕성이 바로 이러한 '약한 악'의 차원에 있다고 보는데, 정말 놀라운 점은 한국인들이 오랫동안 자신들의 '약함'을 '선함'과 일치시켜 왔다는 사실이다. 중국과 몽골, 일본과 미국 제국주의를 '강한 악'으로 설정하고, 자신들을 '약한 선'으로 치환한 것이야말로 한국인들의 가장 창조적인 업적이라고까지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한국인이 '약한 종족'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이 자동적으로 '선한 종족'임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의 역사는 '약함'이 빈번하게 '악함'과 결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민족주의야말로 근대 한국인이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자기 기만의 이데올로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대의민주주의의 딜레마 중 하나. 시민의 평균적인 양식과 지적 수준, 판단력에 훨씬 못 미치는 유아론자들이 국가의 지도자가 되고, 권력의 자리에 올라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또 다른 '아몰랑'이 출현할 것이다. 주권자인 시민들은 그들이 남기고 도망간 "쓰레기"를 치우느라 고통받을 것이다. 평균적인 수준의 시민적 양식과 지적 수준, 판단력을 뛰어넘는 탁월한 지도자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건 사치스러운 욕심이다.
천재들의 무리 중에서도 내가 처음 과학사를 읽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제일 좋아하는 무리는 19세기 말~20세기 초 원자를 해독하고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의 두 기둥으로 현대물리학을 구축했던 이들이다. 마침 노벨상이 1901년부터 수여되었기에 이들 다수가 수상자로 이름을 날린 점, 과학사가 가장 철저히 연구한 대상이 이들이라는 점, 이후에는 대개의 발견이 대규모 협동작업과 자본에서 나오는지라 개인이 이름 날릴 기회가 적다는 점 등등 이 선택이 당연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모른 척 넘어가겠다.
"정치는 책임감과 존재의 복잡성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들이 담당해야 한다. ... 정치는 더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면 정치는 계속 단순한 기술로 남을 수밖에 없다. 정치가 불명예스러운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정치를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당신이 폐쇄회로TV(CCTV)가 설치된 합신센터 1인실에 135일간 '보호조치' 된다고. 한 가지 질문만 가지고 일주일 내내 조사받는다고.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조사를 받은 뒤 저녁엔 '숙제'라고 불리는 진술서를 쓴다고. 홍씨가 볼펜으로 눌러쓴 숙제는 100여 건에 1250여 쪽이었다. 변호인인 박준영 변호사는 "밀폐된 공간에서 하루 종일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썼던 이야기를 계속 쓰게 하는 건 사실상 고문"이라고 지적한다.
어딘가 질병 같은 사내였다. 열이 끓어오르고 고통을 자아내는 질병이 아니라, 별다른 징후나 증상 없이 찾아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질병 같았다. <페드라>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새엄마를 두고 분투하는 알렉시스를 연기할 때도, <싸이코>에서 이미 죽고 없는 엄마에 빙의되어 자신에게 접근하는 여성들을 도살하는 노먼 베이츠일 때도, <심판>에서 인간이라는 자기 한계에 부딪혀 자폭할 수밖에 없는 케이를 연기할 때도, 앤서니 퍼킨스는 늘 창백하고 유약하지만 치명적인 공기로 관객을 집어삼켰다.
나의 누추한 방이 달빛에 잠겨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는 것보담도 오히려 슬픈 선창(船艙)이 되는 것이다. 창살이 이마로부터 콧마루, 입술 이렇게 하여 가슴에 여민 손등에까지 어른거려 나의 마음을 간지르는 것이다. 옆에 누운 분의 숨소리에 방은 무시무시해진다. 아이처럼 황황해지는 가슴에 눈을 치떠서 밖을 내다보니 가을 하늘은 역시 맑고 우거진 송림은 한 폭의 묵화다. 달빛은 솔가지에 솔가지에 쏟아져 바람인 양 솨―소리가 날 듯하다. 들리는 것은 시계소리와 숨소리와 귀또리 울음뿐 벅적거리던 기숙사도 절간보다 더 한층 고요한 것이 아니냐? (윤동주 <달을 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