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의 오랜 측근이었던 정두언 전 의원을 인터뷰했다.
MB 소환은 조금 늦춰질 수도 있다.
우리는 망가진 것을 손쉽게 조롱하고 비난하지만 정작 그 조롱과 비난에 어울리는 당사자들은 죄책감을 느낄 양심이 없고, 관심도 없다. 정작 그런 조롱과 비난에 직면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건 그럴 필요가 없는 이들이다. 어쩌면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어떤 질문과 맞닥뜨린다. '우리는 정말 언론이 필요한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언론을 지킬 수 있을까?' 그렇다. 어쩌면 우리는 타락한 언론사를 외면해버리면 그만이라고 믿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비난하고 손가락질해서 광장에서 밀어내버리면 끝나는 일이라고 단정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락한 공영방송사는 독버섯처럼 방치될 뿐이다.
이명박 정권에서 진행한 사찰의 목적은 지금까지 좌파세력을 발본색원하기 위해서라고 해명해 왔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했다. 물론 좌파를 발본색원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것도 넌센스다. 권력을 잡았으면 화합을 해서 다 끌고 가야지, 좌파를 발본색원 하겠다며 사찰을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냉전적 사고에 바탕을 둔 구태의연한 발상이다. 그러나 그것도 시늉에 불과했으며 사실은 다른 짓을 하기 위한 구실이었다. 자신들이 국정을 마음대로 농단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찰을 활용했던 것이다.
보통 일류는 공통적으로 자존심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자기 인사 문제로 여기저기 쫓아다니고 그러지 않는다. 반면 삼류는 자기가 삼류인지 알기 때문에 여기저기 쫓아다니면서 뇌물도 갖다 바치고, 아부도 하고 그런다. 그러다 보면 대개 인사에서 삼류가 등용되기 쉽다. 그러다 결국 조직 전체가 다 삼류로 바뀌어 버리는 것이다. MB의 정부 인사의 컨셉은 MB가 한 번이라도 겪었고, 또 MB 말을 잘 듣는 사람이라야 했다.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을 쓴 경우는 대개 주변 친인척이나 지기 등이 추천한 경우이다. 이런 식이다 보니 이도 저도 관계없는 전혀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훌륭해도 못 쓴다.
이재오와 이방호는 자신들의 앞날에 김무성이 매우 껄끄러운 존재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MB는 내게도 맹형규와 김무성은 날리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이방호는 그 당시 강창희 핑계를 대면서, 강창희와 서로 주고받기를 하다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해명을 했다. 여하튼 2008년 공천에서 재량권을 가장 많이 행사한 사람이 이방호였다. 다시 말해 그 당시 이방호가 부산 경남 지역에서 패권을 유지하는데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본 큰 축이 김무성과 권철현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라인에 있는 사람들은 다 날라갔다.
그 동안 전임 정부들이 만들어놓은 수많은 대북 라인 가운데는 살려야 할 라인, 죽여야 할 라인 등이 있었을 것이다. 장단점을 검토하고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시각에서 대처했어야 하는데 이런 과정도 없이 한순간에 대북라인이 무너졌다. 대북 라인에 종사했던 귀중한 자산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국가적인 손실이다. 통일 문제, 대북 문제, 남북 협력 문제 등을 도모할 수 있는 기초적인 인적 자산들이 사라졌다. 이로 인해 이후 MB 정부의 대북정책은 방향 감각을 상실했다. 쓸데없는 가정이지만 만약 MB 대통령의 취임식에 북측에서 온 특사가 참석했다면 MB 정부 5년의 남북관계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상득은 임태희를 후보 비서실장으로 앉힌 뒤 원로자문그룹이라는 '6인회'를 내세워 현안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사실 '6인회'는 실권이 있는 모임은 아니었다. 모양 갖추기에 불과했다. 이상득이 혼자 개입하기 뭐하니까 모양새를 갖춰서 슬쩍 물타기 하고 들어와서 관여를 하려고 만든 것이다. 김덕룡이나 박희태가 역할을 했다면 얼마나 했겠나. 이를테면 내가 선대위 안을 짤 때도 이상득, MB에게 승인을 받은 후 6인 회의를 소집해서 마치 거기서 결정한 것처럼 하는 식이었다.
실세 주변에 사람이 몰리게 마련이다. 그리고 견제 받지 않는 권력실세 주변에서 그를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이 매번 되풀이 되는 낙하산 인사와 국정농단의 주역들이 된다. 역대 대선마다 이런 문제가 되풀이 되면서 낙하산 인사로 이어지고, 각종 이권 청탁으로 이어졌다. 노태우-박철언, 김영삼-김현철, 김대중-세 아들, 노무현-노건평, 이명박-이상득으로 이어지는 역대 정권 권력실세의 계보와 그 운명이 이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
2007년 들어서면서 정국은 서서히 대선 정국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2~3월이 되었는데도 MB는 경선 캠프를 꾸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MB에게 "빨리 짜임새 있는 캠프를 꾸려야 한다. 본격적으로 진용을 갖춰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MB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며칠을 기다리다가 세 번째로 얘기 했을 때에야 "그러면 이상득 의원과 상의해서 해보세요. 이재오 의원은 절대 모르게 하세요"라고 말했다. MB는 왜 이재오 의원에게는 비밀로 하라고 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