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에 기분 나쁜 댓글을 달았다는 이유다.
한국 민주주의가 더 성숙한 민주주의로 도약할 전기
현재 문재인 정부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적폐 청산은 MB에 대한 정치 보복인가? 두 말할 것도 없이 정치 보복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은 개인적이지도 않고 과거지향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먼저 그것이 개인적이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특정인의 특정 행위를 표적으로 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논란에서 진짜 문제는 서민 교수가 아니었다. 인터넷의 망망대해에는 다양한 글이 있기 마련이고 서민 교수의 글은 그 중 다소 정제되지 않은 글의 하나로 넘기면 그만이었다. 정작 이번 논란을 키운 것은 서민 교수의 자극적인 표현을 퍼뜨리기에 바빴던 일부 기자들이었다.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 것은 그 질문이 합당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 질문이 중요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단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사색하고 있기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은 과업이기 때문이다.
분명 합리성은 인간의 모든 활동에서 중요한 덕목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하여 우리가 필요로 하는 합리성은 인지심리학 실험실에서 측정되는, 무심한 삼인칭적 관찰자의 합리성이 아니다. 지금까지 많은 정치이론가들이 이런 방관자의 합리성 개념을 은연중에 가정하며 벌컨이라는 헛된 환영을 쫓았다는 사실에 나는 탄식한다.
나는 성숙한 민주 시민을 일인칭적, 주관적, 행위자적 관점에서 흔들림 없는 열의, 관심, 애착으로 민주주의적 가치들 돌보고 보살피는 정치참여형 시민이라 정의한다. 그들은 훌리건임에 분명하지만, 그들이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것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정의이고, 그런 한에서 성숙한 민주 시민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는 것이 나의 확신이다.
실검 시위를 여론장악이니 여론조작이라고 비난하는 보수 야당이나 조선일보와 달리 나는 그것이 오프라인 집회에서 흔히 나타나는 문제들을 극복하는 한층 평화적이고 품위 있는 정치적 의사표현 방법이라고 본다.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는 이유로 실검 시위를 여론조작이라고 억지스럽게 매도하는 보수 야당이나 조선일보가 시대의 흐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뿐이 아닐 듯하다.
'다 그렇게 구명 쪼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이 질문을 언어철학적 관점에서 엄밀히 분석할 때, 중대본 방문시 박근혜가 조난당한 학생들이 선체에 갇혔다는 것에 대해서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탄핵심판 국회측 대리인단의 학설이 가장 합당하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이는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장시간 동안 대통령이 제대로 된 상황보고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TV 뉴스도 보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얼마 전 댓글 공작에 대한 검찰 조사를 비판하며 그것이 대선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고 5년이 지난 지금 그것에 대해 수사하는 것은 정치보복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다. 홍준표 대표가 어떤 근거에서 댓글 공작이 대선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생각하는지 알 길이 없지만 그것을 그리 쉽게 단정할 문제는 아닐 듯싶다.
문빠들은 문재인 정부가 오점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는 것을, 모든 정책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성공적으로 추진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실수나 오류를 용인할 준비가 되어 있고, 그에 대하여 정당하게 제기될 수 있을 법한 비판도 곧잘 무시한다. 나아가 그들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이 많은 부분 자기 자신들의 몫이라 인식하며 문재인 정부를 야당과 주류 언론의 비판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여론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분명 이것은 문재인에 대한 "비판적 지지"라 보기 힘들다. 이렇게 문빠들은 한국 시민 사회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오던 비판적 지지의 전통과 결별하였다.
박 교수는 북한의 대남심리전에 대한 대응책으로 댓글 공작은 정당한 국정원의 활동이 될 수 있다고 넌지시 말했다. 만약 북한이 대남심리전을 획책하고 인터넷을 통해서 여론 조작을 감행한다면, 국민들에게 그런 사실을 널리 알리며 주의를 당부하고 또 필요하다면 국내 포털 싸이트의 아이디 등록을 엄격하게 하고 사이버 감시를 강화하는 등의 기술적인 조치를 취하면 될 일이다. 북한의 대남심리전에 대한 대응이 어떻게 국가기관이 세금으로 국민을 기만하는 댓글 공작의 합당한 이유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댓글 알바가 알바비로 받은 돈은 표현의 자유를 포기하고 국정원의 지침에 따라 게시물을 작성하는 것에 대한 대가이다. 이처럼 국정원과 댓글 알바는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거래했고, 그 결과 댓글 알바는 표현적 자유라는 기본권을 향유하는 민주적 시민이기를 포기했다. 시쳇말로 댓글 알바는 영혼과 양심을 판 것이다. 그렇게 국정원은 국민들의 세금을 이용하여 영혼과 양심이 없는 "좀비 시민"을 양산했던 셈이다. 좀비 시민의 양산이 댓글 공작의 첫 번째 단계라면, 그것의 두 번째 단계는 인터넷 토론 공중에 대한 집단 기만이다.
대통령은 국민들이 더 이상 선거 때 한 표를 행사하는 식의 '간접민주주의'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지난해 촛불 집회가 여실히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국민의 '집단 지성'과 함께"하는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국민 참여의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야당 일각에서 그리고 조선·동아와 같은 보수 미디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곧장 터져 나왔다. 야당에서는 대통령의 발언이 의회를 무시하고 의회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반발하는 한편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대통령이 언급한 직접민주주의가 대의제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고 성토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직접민주주의론에 대한 이런 비판은 민주주의와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 근본적인 무지와 몰이해의 소치이다.
요즘 정국의 핫이슈로 떠오르는 국정원 댓글 공작 사건이 '고마워요 문재인' 이벤트와 묘한 대비를 이룬다. (자유한국당이나 국민의당에겐 미안하지만) 상식인이라면 누구나 국정원 댓글 공작은 여론 조작인 반면 '고마워요 문재인' 이벤트는 여론 조작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왜 그런지 설명해 보라고 하면 말문이 막힌다. 분명 그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정확히 무엇 때문에 하나는 여론 조작이고 다른 하나는 건전한 여론의 발현인지 명확히 설명하기가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댓글 공작 사건은 MB정권의 대표적인 비리로 흔히 언급되는 사대강 사업이나 자원 외교와는 차원이 다른 범죄이다. 그것은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를 뿌리째 위협하기 때문이다. 민주적 숙의가 이루어져야 할 공론장을 국가기관이 국민의 세금으로 댓글 알바를 고용하여 훼손했던 것이다. 이는 철저한 정보통제로 국민들을 세뇌시키는 북한 정권의 여론 조작 행태와 방법만 다를 뿐 그 동기와 목적은 사실상 동일하다. 이처럼 국가기관이 앞장 서서 조직적으로, 그것도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공론장을 훼손했다는 점에서 댓글 공작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였고, 그런 점에서 그것은 국헌문란 행위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분명 박근혜는 보수주의를 표방하고 우파의 지원을 받아 민주적 절차에 따라 집권했다. 그리고 대통령 박근혜 역시 한 명의 정치인으로서 보수주의적 신념을 가질 수도 있고 또 그것을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입헌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설사 다수의 지지를 받아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헌법의 지배를 벗어날 순 없다. 박근혜가 대통령으로서 좌파에 대한 지원 축소와 우파에 대한 지원 확대라는 자신의 보수주의적 소신을 펼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헌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헌정주의의 요구이다.
탁 행정관을 비난하는 이들은 그가 과거 책에서 여성혐오 발언을 했고, 여성을 비하했으며,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했다 말한다. 그런데 일각에선 탁 행정관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조금씩 들린다. 탁 행정관의 과거 발언이 다소 문제가 될 소지가 없지 않지만 그게 행정관에서 경질할 만한 잘못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소셜 미디어나 각종 게시판에서 불꽃 튀는 논쟁이 벌어지는 것을 종종 목격하는데, 그런 논쟁은 건설적인 논의로 이어지기 보단 상대방을 모욕 주고 비방하는 이전투구로 끝나는 것이 다반사이다. 이번 탁 행정관 이슈를 매개로 그간 한국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일반인의 선입견, 불신, 오해 등이 한꺼번에 분출되면서 합리적인 공론의 장이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비판 9. 문자행동은 정치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 아닌가?답변 9. 물론 정치인이 자신의 휴대폰을 사생활의 영역이라고 고집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시민들은 생업을 위해 그런 사생활을 포기하며 살아간다. 간판이나 전단지에 개인의 휴대폰 번호가 자발적으로 공개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들에게 사생활이 중요하지 않아서 휴대폰 번호를 공개하는 것이 아니다. 국회의원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정확히 어떻게 구분될지 분명친 않지만 국민을 대의하여 정치권력을 행사하겠다 하면 일정 정도 프라이버시를 포기하는 것은 감내해야 하지 않을까? 국회의원 재산공개도 엄밀히 말해 프라이버시의 포기이다. 사생활을 조금도 포기할 생각이 없다면 국회의원 하지 않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