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를 사용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별한 사람들을 만났다.
80만명이 참가한 워싱턴 ‘우리 생명을 위한 행진’ 현장을 찾아가봤다.
12년 전 지피(GP)에서 김 일병의 총기사건이 났을 때도 요즘 외동으로 유약하게 자란 왕자님들이 집단생활을 견디지 못해서라는 해석과 게임문화의 영향이라는 해석이 군필 기자들에 의해 유력하게 설파되었다. 2014년 윤 일병 사건이 났을 때도 한 진보적인 군사평론가는 요즘의 왕따문화 때문에 자신이 군대생활 할 때는 없었던 집단왕따 현상이 일어났다고 개탄하기도 했다. 군 인권 문제 발생의 원인을 군 생활에 부적합하게 길러진 요즘 청년들의 특성에서 찾으려는 선배 경험자들의 시도는 늘 활발하다.
전문화를 통한 정예 강군으로 거듭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군대의 사병은 독립된 지위와 인격을 인정받지 못하는 인간 부품의 상태를 면치 못한다. 사병 복무로 얻은 지식과 경험은 제대 후의 사회 활동에서 자산이 되지 못한다. '군에서 썩는다'라는 냉소적 표현이 국민적 공감을 얻는 이유가 있다. 군복무 중에 쌓은 경력은 전역 후에도 자산이 되도록 하려면 모병제로 전환해야 한다.
모든 국민이 총기를 소유하면 모든 개인이 자신을 지킬 수 있으니까 총기에 의한 사망이 줄어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이 당황스러운 이야기가 미국총기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가 총기사건이 터질 때마다 하는 이야기이자, 실제로 많은 사람이 총기 소유를 옹호하게 만드는 중요한 믿음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굳이 미국총기협회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위기의 순간에 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총기사고로 죽는다'는 가설은 사실상 연구자가 엄밀하게 검토하기 어려운 주제입니다. 연구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지금까지도 너무나 선명하고 뚜렷이 기억나는 규칙들. 일병 때까지 혼자 담배를 피울 수 없었고, 상병 때까진 거울을 봐서도 안됐다. 스스로 부대 밖을 걸어나가려면 병장이 되어야만 했다. 한도 끝도 없는 규칙들은 매일 같이 구타를 양산했고, 동시에 군생활의 유일한 낙을 제공했다. 권리를 하나 하나 성취해 나가는 군생활. 온갖 고난으로 각자가 쟁취해 낸 권리는 예외를 용납할 수 없었다. 우리는 귀신을 잡지 않았다. 시스템을 지켜 짬밥과 권리를 얻었고, 점점 커져 나가는 권력의 달콤함은 군대 밖 사회라고 다를 게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