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청년들에게 더 많은 사다리를 놓을 수 있는 새로운 계기가 되길 바란다" - 장경태 민주당 의원
11월 11일 주권자대회는 '촛불은 계속 타오른다'는 선언이다. 주권자들이 한 자리에 다시 모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특정 인물이나 단체 주도가 아닌, 각자 꿈꾸는 더 나은 세상을 디자인하기 위해 모인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국가에 한 발 더 다가가는 느낌이다.
노량진, 대학가 등 청년들이 많은 곳의 점심시간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친구들끼리 모여 수다를 떨며 식사하는 모습? 동기들끼리 자장면 내기 한 판? 이런 모습들도 분명 있다. 그러나 최근엔 점심시간이면 편의점을 가득 매운 청년들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컵라면과 삼각김밥으로 점심을 때우는 대학생,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취준생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는 그 글에서 우리 세대 중 일부지만,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에게 겸손한 책임의식을 느껴야 함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를 포함해 우리 세대에서 약간의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그 노력도 무시할 순 없지만, 사회경제적 환경에 기인한 '운'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 시대는 고도성장기인데다 대학진학률이 20%도 안 되었다. 지금은 저성장시대인데다 대학진학률은 80%가 넘는다. 그러니 대학을 나온 사람을 기회란 측면에서 비교할 때 과거와 지금은 비교하기 힘들다. 사실 내가 지금 대학을 나왔다면 언감생시 대학교수 꿈을 꿀 수 있겠는가
한국에서 청년문제는 곧 실업의 문제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지난 시기 10여 차례 발표된 정부의 청년실업 대책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결과론적으로는 사실이다. 청년실업 대책이 수차례 반복되는 동안에도 청년실업 문제는 꾸준히 악화돼, 지금의 관점으로 10년 전을 돌아보면 '다들 취업이 잘됐네'라는 말이 절로 나오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정당과 정치인, 기업들이 발표한 일자리 창출 공약의 숫자를 다 더하면 대한민국 인구수보다 많다.
성평등을 여성주의 없이 해나갈 수 있다거나, 진보정치에 여성주의가 부차적이라는 식의 20년 전에나 통했을 시대착오를 왜 2016년에 반복해야 하는가? 이제부터 유효한 질문은 어떤 여성주의인가이지 여성주의냐 아니냐가 아니다. 정의당이 현재의 '다수 당원'들을 따라 '7% 정당'으로서의 위치를 지키는 데만 골몰하는 게 아니라면, 정의당의 당면과제는 남초정당이라는 현재의 냉소적인 평가를 불식시키고 어떻게 20-30대 여성이라는 아직까지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않은 잠재적 지지자들을 선점하고 당으로 끌어들일지를 모색하는 것이다.
"나는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정부, 정치권에서 청년들에게 창업하라고 하는 모습에 아주 화가 난다. 창업, 진짜 장난이 아니다. 잘못하면 한 청년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트릴 수도 있다. 도전정신을 갖고 창업하라, 도전하라고 함부로 이야기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일자리를 만들어야지 왜 창업을 하라고 하나."
청년이슈를 앞세우는 정당은 보이지 않았다. 이번 선거에서 사회정책에 관한 관심은 알파고와 인공지능에 완전히 밀려나 버렸다. 전국구 비례대표 후보명단의 앞자리를 청년이나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이른바 과학기술 전문가들이 차지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에는 청년정책이라는 것이 없다. 전통적 위계질서가 강조되는 한국사회에서는 청년을 성인으로 가는 과정으로만 보고 따라서 어른이 되기까지의 고생을 오히려 약으로 생각하는 시대에 뒤진 가부장적 관념이 아직도 지배적이다.
우리나라에는 총 20개 대학, 31개 학과의 'H대학 ㅊ학과'가 존재한다. '비판을 하려면 기본적 사실을 왜곡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재명 시장의 말대로, 기본적 사실을 점검했다. 조사 방법은 간단했다. 3월 22~24일, 총 3일에 걸쳐 해당 학과 재학생에게 직접 사실 확인을 요청하거나, 학교 행정실 또는 학생지원팀에 문의했다. 단과대학 사무실이나 해당 학과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도 했으며, 해당 학과의 조교나 교수에게 직접 문의한 경우도 있다 결과는 어땠을까?
공천관리위원장 '빽'이 후광효과를 발휘했을지 모른다는 얘기, 심지어 심사담당자가 과외교사가 됐다는 얘기는 흙수저 물고 태어난 절대 다수의 청년 가슴에 비수를 꽂아버립니다. '청년의 꿈과 어려움을 대변할 사람'을 뽑는 과정이 청년에게 염장 지르는 과정이 돼 버립니다. 이런 정당이 무슨 낯으로 청년을 상대로 투표 참여를 독려하고 한 표 달라고 호소한단 말입니까?
청년의 정치참여는 거창한 선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변화의 동력, 청년의 한 표가 세상을 바꾼다"는 그럴듯한 표현에는 희미한 가슴 떨림도 없다. 애초에 그건 청년이 한 말이 아니라 표를 호소하는 정치인들이 지어낸 말이기 때문이다. 청년 투표율이 높아야 한다는 열정적인 말을 들으면 이제는 속이 답답하다. 청년이 마주하는 현실이 우리의 투표율이 낮은 탓인가. '투표율'을 강조하는 사고방식은 손쉽게 '20대 개새끼론'이 된다.
청년수당 같은 정책은 사실 중앙정부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할 수준의 것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정부와 정당이, 청년들의 가처분소득을 높이고 실질적인 소득기반을 마련해줄 수 있는 정책을 두고 확대 시행하겠다고 하지는 못할망정 포퓰리즘이라며 정책이 시행되기도 전에 제동을 거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다. 노동시장 이행기에 있는 청년들의 평균 구직기간이 11개월로 나타나는 상황에서 사실상 실업상태에 놓인 청년들이 기댈 수 있는 안전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청년들에게 지원받을 수 있는 정책이 생긴다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