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리셋' 챕터 3]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그 지지가 임기 끝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두 정권이 집권하는 동안 그는 실정이 있을 때마다 기뻐했다. 파병, FTA, 노동유연화 정책 같은 것에 반발이 일어날 때면 "그것 봐! 내가 그럴 거라고 했지! 지지했던 놈들 다 반성이나 하나?!" 하며 조금씩 신나했다. 먼저 알아본 자신의 선구안과 근본까지 꿰뚫어보는 심미안(?)을 은근히 과시하면서. 몇 차례 그런 장면을 보다가 나는 그에게 물었다. "당신이 원하는 게 세상이 좋아지는 건가요, 당신의 적이 실패하는 건가요? 당신은 세상의 변화를 위해 신념을 내걸고 운동하는 사람인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면서 세상이 나빠진 일에 왜 기뻐하나요?"
87년과 다른 점은 적지 않은 시민들이 이 점에 대해서 동의하고 있다는 것이고 다만 전혀 경험이 없었던 일이라 혼란스러워 하기는 해도 우리가 지난 4년간 잃어버린 것들이 너무 큰 것들이라는 마음으로 시대적 과업을 다할 것을 다짐이라도 하는 듯 하다.
영국의 EU 탈퇴 소식은 나를 우려하게 한다. 정치 공학적 분석이전에 철학적으로 보자면, 영국의 EU 탈퇴는 '타자에 대한 환대와 타자들과의 공존' 이라는 이 현대세계의 긴급한 과제를 역행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영국과 같은 위치에 있는 나라들이 특히 난민 문제나 이민자문제 등에 어떠한 실천적 개입을 하는가가 이 국제사회에서 시사하는 바는 매우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이제 '유럽공동체'가 아니라, 다른 나라/사람들과는 다른 '영국공동체'를 더 우선적 정체성으로 내세우겠다는 것은, 타자들에 대한 노골적인 배타성을, '영국성'을 지켜내기 위한 것으로 정당화될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슬람, 여성, 성소수자등과 같은 '타자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노골화하는 미국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의 '차별의 정치'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이 미국 안에서도 더욱 힘을 받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게 된다.
우리는 정보들을 축적, 가공, 공유, 공개하면서 권력과 자본을 감시할 수 있다. 그 효과는 위키리크스의 사례에서 보듯이 인터넷을 통해 극대화될 수 있다. 영리서비스라고 해서 그 효과가 훼손되는 것도 아니며 도리어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때 자본주의 내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발생시킬 수 있다. 강력한 개인정보보호법은 항상 필요하다. 하지만 프라이버시 법익이 남아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정보들에 대해서 개인정보보호법이 적용되어 그 축적이나 공개가 어렵게 되면 민주주의가 위축된다.
'인디고'는 지난 2010년부터 나오기 시작한 '국제'인문학 잡지다. 국제적인 잡지답게 영미 권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에도 수출되는데 더욱 놀랍게도 우리가 저서로만 만나는 세계적인 석학들과 대담을 하고 그들의 글을 받아서 잡지를 만든다. 하워드 진, 놈 촘스키, 슬라보예 지젝과 같은 당대를 이끌어가는 사상적 원류인 석학들은 모두 인디고와 대담을 했다.
2022년 프랑스 대선에서 이슬람 정당의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가상적 상황을 그린 미셸 우엘벡의 『복종』은 마침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빠리에서 『샤를리 에브도』 지(紙)를 공격한 1월 7일에 출간되어 관심의 초점이 된 바 있다. 해가 바뀌기도 전에 빠리에서 다시금 경악스러운 테러사건이 벌어진 상황에서 이 소설은 존재 자체로서 스캔들이 되기에 충분한 듯 보인다.
"맥락을 고려하자는 사람들은 말한다. 샤를리 에브도를 공격한 형제들은 미국이 이라크에 주둔한 것이 너무 끔찍해서 놀랐다고 한다.(맞다. 하지만 그 형제들은 프랑스 풍자 잡지 대신 미군의 군사시설을 공격할 수 있었다. 왜 그렇게 하지 않았나?) 이슬람인은 사실상 서구에서 가장 착취당하고 대접받지 못한 소수라고 한다.(맞다. 그러나 아프리카계 흑인은 훨씬 더 심하다. 그러나 그들은 살인을 하거나 폭탄을 던지지 않는다.)" 방금 본 것처럼 지제크는 맥락을 고려하자는 사람들, 곧 쿠아시 형제에게 온정적인 좌파 지식인들에 대한 공박을 모두 괄호 처리했다. 괄호는 종종 '이런 것까지 가르쳐 줘야 해?'라는 가외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형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