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지 않다는 걸 강제로 밝히게 됐다.
현행 형법 심신장애 감경 규정을 배제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민주주의의 당연한 요구다.
20대 남성 4명이 50대 부부를 폭행한 사건으로, 딸이 청와대에 관련 청원을 게시하며 알려졌다.
짧고 굵게 한 마디만 남겼다.
소설 '리셋' 챕터 1
전투기는 폭탄을 싣고 대기하고 있었다
14살 소녀의 피 흘린 사진 없이도 소녀가 얼마나 아팠을지, 그런 사진 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고 아파할 수 있는 사회가 훨씬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눈으로 봐야만 아픈 건, 아직 덜 아픈 거다. "가해자들의 인권을 왜 두둔해?" "가해자들에게도 인권이 있어?" 곧 논쟁은 인권단체에 이런 질문을 던질 것이다. 아주 익숙한 레파토리이기 때문에 기시감마저 든다. 그럴 때 죽어도 외칠 수밖에. 인권은 모든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돌을 우리가 맞겠지. 소년법을 폐지하자는 청원에 몇 만이 순식간에 서명을 했다. 복수심과 분노가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들에게서 인권을 빼앗자며 얼굴을 노출시켰다. 역시 보복일 테다.
사건 그 자체보다 이를 둘러싼 세상의 반응을 보면서 이것은 결코 한 정신병자의 난동으로 축소할 문제가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이 문제로 '남자친구'나 '남편'과 다투었다는 연락이 어제부터 끊이질 않는다. 참담하다. 한 생명의 죽음과, 성별이 곧 과녁인 생활을 살아가는 '사랑하는' 이들 앞에서마저 "잠재적 범죄자로 몰리는 내 억울함"이 우선인 언어들을 보며 나는 솔직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몰라도 되는 권력은 너무나 의연하고 뻔뻔스러워서, 백 번 눈높이를 맞춰서 설명하고 이야기해도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만 눈을 돌리고 귀를 열고 공부해보면 알 수 있는 건에 대해서 끊임없이 상대에게 팔짱을 끼고 "내 생각은 이런데 날 설득시켜봐"라는 태도를 취한다.
내가 언론인, 사립학교 교원 등 일부 민간인을 처벌 대상에 포함한 것이 잘못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정치의 실패'라는 점이다. 입법은 일기 쓰기가 아니라 씨나리오 쓰기에 가깝다. 텍스트에 그치면 안된다. 예상되는 처벌 대상, 필요한 수사인력, 우려되는 부작용 및 그에 대한 보완책, 법시행에서 예상되는 저항과 그것의 극복법 등 '결과 만들어내기'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