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 한 번으로 더 나은 민주주의가 달성될 리도 없고, 테러방지법을 막을 수도 없다. 당신도 그걸 알고 필리버스터를 지지했으리라 믿는다. 모르고 지지했다 해도 이제는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하지 말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두드러지는 것은 냉소와 혐오다. 냉소와 혐오는 편리하다. 그리고 편리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쉽게 유려해질 수 있다.
어떤 아이유 팬들은 '여초사이트에서 좌표를 찍어가며 아이유를 공격하고 있고, 진정한 아이유 팬들만이 아이유를 보호하고 있다'라는 주장을 한다. 역시 손쉬운 집단화고, 우스운 일이다. 전자는 명확한 근거가 없고, 후자의 경우 이 논쟁에서 아이유에게 호의적인 입장을 표한 허지웅이나 진중권이 딱히 아이유를 엄청나게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시에 어떤 사람들은 '아이유에 대한 공격은 아이유가 소녀를 벗어났기 때문에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우스운 이야기다.
그는 술과 사람을 너무 좋아했고, 술과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충분히 친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 이야기하곤 했다. 그의 커밍아웃 경험담 중 제일 웃긴 이야기는 이러하다. 그 친구가 굉장히 보수적인 자신의 친구-그는 자신이 게이인 걸 알면 친구가 자신을 혐오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에게 몇 주일간 고민하다가 결국 커밍아웃을 했다. 그 보수적인 친구는 커밍아웃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야 너 그거 전에 술 마시다가 이야기했어. 기억 안 나냐?'
갑자기 그가 물었다. 너는 왜 이걸 하고 있냐. 술집을 하는 게 나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 대학 나와서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왜? 항상 하던 이야기를 했다. 딱히 취직에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딱히 취직할 직장도 없었고, 공부를 더 하자니 상황이 좀 나빴고, 대학원 졸업할 때 학자금 대출도 몇 천 있는 지경이라 빚 몇 천 더 내봐야 이래 망하나 저래 망하나 이왕 망할 거라면 젊어서 망해보려고. 그냥 그런 시시한 이야기들. 잠깐만. 그러고 보니 나는 네 과거를 모른다. 너는 왜 배를 탔냐. 배 타기 전에는 뭐 하고 살았냐?
나는 맥락도 없이 '열심히 해라. 그러면 모든 게 잘 될 것이다.'라고 먼저 질러대는 사람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그 말은 대체로 틀린 말이고, 몇 가지 중요한 정치적인 지점을 은폐하며, 개인적으로 딱히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내가 몇 년간 뭘 잘 해보려고 하는데 뭔가가 잘 안 풀리는 상황에서 업계의 전설이 된 노인에게 '잘 해보고 싶은데, 상황이 어렵습니다. 어쩌면 좋죠? 뭐부터 할까요?'라고 물어보았을 때, 그가 '열심히 해. 모든 디테일을 챙겨. 스스로를 단련하고 계속 고민해'라고 답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호기심과 충동이란 상당히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이를테면 당신은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편의점에서 파는 막걸리를 증류하면 소주가 될까? 마트에서 파는 맥주를 증류하면 위스키가 될까?'하는 호기심에 사로잡히게 될 수도 있다. 한국 전통주 연구소 병설 서로서로 공방에서 7년 동안 개량한복을 입고 술을 빚어온 최우택 씨(32세, 연구원)는 어느 날 갑자기 '맥주를 증류하면 무슨 맛이 날까? 막걸리를 증류하면 무슨 맛이 날까?' 하는 호기심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마침 그에게는 연구실이라는 공간도 있었고 증류기도 있었기에 일을 저질러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