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여성지는 가정과 가사를 크게 다루었다. 금기시되는 성생활 지식을 흡수하는 창구도 여성지였고, 아이들 옷을 지어 입히거나 새로 나온 취사도구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는 곳도 여성지였다. 국내 자본이 성장하면서 텔레비전과 냉장고 등 대량생산 상품이 여성지를 통해 광고를 쏟아부었다. 요즘 여성지에 명품 광고를 집중적으로 집행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었다. 부엌은 여성지의 황금시대와 겹치면서 대혁명을 맞았다.
이혼은 중대한 삶의 변화이자 결정이지만, 무작정 애도의 표현을 받아야만 하는 일은 아니다. 이혼했다고 해서 이전의 결혼 생활이 모조리 실패나 불행이라는 표식을 달아야 할 이유도 없다. 남편이 개자식이어서, 아내가 쌍년이어서 맞이하는 파경은 생각보다 드물다. 우리의 경우, 살다 보니 함께 하는 생활이 더 이상 즐겁지 않아졌고 그것을 넘어서 커다란 고통이 되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오히려 이혼을 함께 받아들이게 되자, 차라리 해방감을 느꼈다. 이혼은 어쩌면, 고통에의 출구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