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 결과와 상관없이 정의당을 탈당하고..."-류호정
대만의 후앙 유시앙을 꺾었다.
시범종목으로 처음 채택됐다.
곰곰이 되돌아보니, 희망의 단서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4월 국회의 새누리당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의 대표연설과 6월 정의당 조성주 후보의 당 대표 출마선언문, 9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교수들이 펴낸 <축적의 시간>이 그것들이다. 두 연설이 각기 건전한 보수와 새로운 진보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나침판이라면, <축적의 시간>은 중진국 함정에 빠져 있는 우리 사회가 그 늪에서 빠져나와 선진국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지도라고 할 수 있다.
"귀족노조라는 용어는 있지만 귀족사장이라는 단어는 없다"며 '귀족노조'라는 단어에는 각종 대기업 회장의 배임 횡령 사건보다 노동자들이 노동자 가치를 요구하는 것이 더 부당하다는 인식이 있다고 지적한다. 조 소장 역시 "강성노조보다 귀족노조라는 말이 더 악질"이라며 "연봉이 1억 원이든 6~7천만 원이든 노동 삼권을 행사하는 것은 헌법에 근거한 활동"이라고 전했다.
박근혜정부가 청년층에 대해서 특별한 대책을 내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청년이라는 사회적 약자 집단을 이용해서 노동 내부의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임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갈등유발 전략에 조직노동과 미조직노동, 청년들이 총단결하여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큰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분명한 현실이다. 이는 다수의 청년들이 한국의 조직노동과 진보진영을 자신의 삶을 대변하는 집단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박근혜정부 역시 이런 상황을 정확하게 예측했을 것이다. 결국 진보진영이 내세웠던 청년 비정규직 문제의 상징인 '장그래'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OECD 2위인 한국의 노동시간을 OECD 평균치로 낮추면 신규 일자리가 170만개 창출됩니다. 주당 12시간 이상의 초과노동만 막아도 신규 일자리가 69만개 창출됩니다. 저는 손학규 전 대표가 201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저녁 있는 삶'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것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2012년 당 경선에서 제기된 가장 공감가는 의제였습니다. 당시 '저녁 있는 삶'은 주로 삶의 질을 높이는 맥락에서 거론되었습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었을 뿐, '저녁 있는 삶'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증대와도 직결됩니다.
우리는 정치혐오가 나쁘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정치인들에겐 매우 좋은 것이다. 정치혐오 덕분에 유력한 경쟁자의 수가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사회 각 분야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들에게 "정치는 절대 하지 마!"라는 말이 애정 어린 덕담으로 건네지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 정치혐오는 정치인들의 기득권을 보호해주는 철벽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늘 명백한 의도를 갖고 그러는 건 아닐망정 정치혐오를 증폭시키기 위해 애를 쓴다. 과거 과자가 귀하던 시절 어린애들이 과자에 침을 퉤퉤 뱉어놓음으로써 자기 소유권임을 분명히 해놓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지금 우리가 '청년정치'라는 말을 통해 일컫는 '청년'은 같은 나이의 직장인이나 주부를 칭하는 것은 아닌 듯 보인다. 오히려 '청년'은 2008년도 이후 경제위기 속에서 취업난을 겪으며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3포세대'를 가리키는 명사가 되었다. 이에 따라 청년정치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정체화(正體化)하고 존재를 인정받기 위한 정체성 정치이자 인정투쟁의 성격을 띠게 된다. 이 점이 바로 조성주 후보의 기반이 된 청년유니온의 노동운동이 기존의 노조 기반 노동운동과 다른 점이다. 청년유니온은 한국 최초의 세대노조로서 구직자들의 노동, 특히 아르바이트라는 이름의, 권리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을 하는 노동자로서의 청년을 정체화·가시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