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깽판’ 전통은 12년이나 이어졌다.
해외여행 대신 국내여행을 길게 가는 추세다.
시대의 상식으로 확인되었다.
"연사들과 주최 측에 대한 혐오 발언과 백래시는 인권주간의 취지에서 엇나갔다"
'역지사지'는 굳이 진보가 아니더라도 공동체에서 보편적으로 강조하는 개념이다. 내가 당하지 않았더라도 타인의 고통을 내 일처럼 느끼는 감수성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필수덕목이라고 강조한다. 이재명 시장의 일갈에 시민들이 환호한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한 편으로는 당해봐야만 안다는 정 반대의 주장 또한 대중의 환호를 받는다. 어떤 부류의 인간들은 애초부터 역지사지의 공감력이 작동하지 않으므로, 고통의 당사자와 똑같은 고통을 겪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나는 '역지사지'와 '너도 당해봐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생각한다.
그가 그만둔다고 해서, 탁씨를 통해 드러난 한국의 남성 문화가 변하지는 않는다. 여성들이 바라는 것은 탁씨가 그만두는 것이라기보다는 남성 문화가 바뀌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논란이 계속되면, 탁씨가 피해자라는 논리까지 등장할 판이다. 한국 남성 문화가 강간 문화임을 인정하고 개선하면 된다. 누구나 놀라는 '그런 사람이 거기까지 올라간' 구조를 바꿔야 한다. 가장 비논리적인 방어는 '젊은 날의 실수'라는 것이다. 과거가 없는 사람도 있나. 과거는 선택적인 개념이다. 어떤 사람의 과거는 사회적 매장감, 감옥행이다. 이번 사건처럼 대통령의 최측근, 유력 국회의원, 유명인사가 앞장서서 남의 과거를 해석해주는 경우는 흔치 않다. 모두가 '탁류'(卓類)요, 탁류(濁流)다.
문성근씨가 탁씨를 응원했다. 실망이다. 벌써부터 남성연대가 문재인 정부를 망칠 조짐이 보인다.
"콘돔의 사용은 섹스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기 충분하다"(195쪽). 이 구절은 5장 '하고 싶다, 이 여자' 편에 나오는데, 알려진 사실과 '달리' 저자는 피임과 성병 예방을 위해 콘돔만큼 효율적인 것은 없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의 요지는 콘돔 사용이 "한 차원 높은 정서적 교감"을 방해하니, "안전한 콘돔과 열정적인 분위기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서 임신을 "사고(?)"라고 표현하고 있다(물음표는 저자 본인의 표시). 일단, 그는 이 책에서 공중 보건과 관련하여, 중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있다. 젊은 시절에만(?) 26명의 여성과 연애했다는 저자의 경험을 고려하면, 무지로 인한 자신감이 지나치다.
누군가는 '나는 이 사회에 그런 정도의 차별과 혐오가 존재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지금까지 누려온 자신의 '평화'로운 일상을 유지하고자 한다. 강남역에 모여 살해당한 여성을 추모하고 서로의 고통에 공명하는 여성들 앞에서 "남성혐오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남성도 군대 가서 죽고 일하다 죽는 사회적 약자"라고, "남자 여자 싸우지 말고 화해하자"고 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들이 그렇다.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나중에"를 외친 대선후보와 그를 함께 연호한 이들이 그렇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지저분하다고? 아니, 세상 떠나가라 큰 소리로 얘기하는 매너 없는 중년들은 어떻고? 예의 없는 부모들의 숫자가 예의 없는 '다른 어떤 부류'의 숫자보다 압도적으로 많다고 장담할 수 있나? 〈ㅇㅇㅇ 출입 금지〉라는 말에 장애인, 흑인, 여성, 이런 단어를 넣는다고 생각해 보자. 말도 안 되지 않나? 그런데 왜 '아이'라는 말을 넣는 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글들을 뒤져 보니 노키즈존이 확산되게 된 배경에 대한 '무개념 부모들'의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식당 주인이 음식을 파는 건 권리이지 의무가 아니라는 게 노키즈존 찬성론자들의 논리였다.
군가산점 위헌 판결 때부터 메갈리아 논란에 이르기까지 한국 남성들이 진짜 적이 아니라 엉뚱하게 여성을 적대시하는 경향이 크다. 설령 메갈리아가 문제 있는 집단이라 하더라도, 후원 티셔츠 구매 인증에 대해 벌어진 공격은 부당하다.
정부는 여성을 보호하지 못하고/않고, 진보정당은 비판 논평을 철회시킴으로써 메갈리아 티셔츠를 구입한 여성 성우를 교체한 기업에 동의했다. 내가 이번 '티셔츠 사태'에 절망한 이유는 지난 25여년 동안 경험한 바지만, 국가-우파-좌파 사이의 이념(이 있기는 한가?)과 계급을 초월한 성의 단결, 즉 남성연대 때문이다. 진보정당은 기업이나 무능·부패한 정부가 아니라 여성과 싸우고 있다. 왜? 그들이 좋아하는 '정치경제학' 논리로 보자면, '진보' 이전에 '남자'일 때 더 얻을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일베의 폭력, 자신감, 신념, 막말은 마치 무정부 상태의 거칠 것 없는 주인공처럼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사회는 메갈리아에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 거듭 묻는다. 누가 일베에 맞섰는가?
모르고 죄 지을 확률은 남성, 성인, 이성애자, 비장애인, 중산층 이상과 같이 사회 주류에 가까울수록 높아진다. 한 사회의 주류로 산다는 것은 무신경하다는 것과 같은 말이니까. 소외되고 배제당할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들에게 세상은 살 만한 곳이기 마련. 자신보다 불리한 처지에 놓인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잘 헤아리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