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남아 있는 나날'. 작가는 점증하는 자기기만의 아이러니를 화자의 어조에 섬세하게 새겨 넣고 있는데, 회고의 리듬을 여로를 따라 하루 단위로 설계하고 엿새로 나누어 배치한 것도 대체로 성공적인 서사전략이 아니었나 싶다. 엿새는 두번의 아침과 두번의 오후, 세번의 저녁으로 나뉘면서 모두 일곱개의 챕터로 구성된다. 마치 세상의 일주일처럼.
80년대 초반 광주의 진실을 두고 전두환 독재정권과의 전면적 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때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목소리 중의 하나가 작가 황석영의 그것이었던 것도 그러고 보면 이상한 일은 아니었을 테다. 전태일이 점화한 70년대 노동운동과 민주화투쟁의 새로운 국면에서 황석영이 「객지」 「한씨 연대기」 「삼포 가는 길」 「돼지꿈」 등 일련의 작품으로 그려내고 포착한 민중 현실의 생생한 모습과 포괄적 인간 진실의 힘은 문학의 울타리를 넘어 저항과 변혁의 은밀한 심지가 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80년대 초 그 급박한 시절에 그는 어디에 있었는가. 황석영의 자전 『수인』은 내게는 꼭 그 질문에 대한 응답처럼도 보인다.
인터넷과 SNS가 정보와 지식의 매체로서만이 아니라 생활의 조건이자 인간관계의 양식(樣式)이 되어가고 있는 시대에 문예지가 그에 걸맞은 소통의 형식과 언어를 개발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겠다. 이제 성정치를 누락하거나 외면하고 한국문학의 인간탐구를 이어나갈 수도 없다. 그 누구보다 먼저 작가, 시인들이 이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문예지의 출현이나 문예지의 혁신은 그런 면에서 불가피하다.
홍상수 감독의 신작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민정의 대사, "혹시 저 아세요?"는 처음에는 웃음을 나중에는 섬뜩함을 남기는 방식으로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방황하던 주인공 영수는 결국 민정을 처음 만나는 사이로 수긍하며 민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자리에서 다시 사랑을 시작하려고 한다. 사실, 익숙한 틀이나 패턴으로 타인을 규정한 뒤 그것을 우리의 앎으로 뒤바꾸는 일은 너무 흔하다. 대개는 그러고 살지 싶다.
어떻든 우리 시대가 비유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 실제에서 음유시인을 갖고 있었고, 그로부터 깊은 위로를 얻어왔다는 노벨위원회의 소식은 놀랍고도 반갑다. 모든 상이 그러하듯 문학상도 축제와 자기 격려의 한 방식이다. 노벨문학상이 발견한 축제의 음률은 적어도 최근 "세상에서 생각된" 최선의 것인 듯하다. 밥 딜런은 웅얼거리고 속삭인다. 생각해보면, 웅얼거림과 속삭임은 문학에 대한 오래된 정의 중 하나이다.
증언되고 재현되지 못한 역사의 시간이 있는 한 그 연속의 계기는 끝없이 상상되고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허니 바케쓰'(honey bucket, 수용소에서 똥통을 부르던 말)에 수시로 사람들의 잘린 팔, 다리, 머리가 담겨 버려진 역사의 시간이 남아 있는 한, 거제도 포로수용소 생존자의 다음과 같은 질문 역시 계속될 필요가 있다. "지금도 나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우리가 전혀 선택의 여지가 없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과연 우리는 그 행동을 책임져야 하는가."
한강의 영예는 무엇보다 작가 개인의 영예여야 마땅하다. 작가에 따르면 연작소설 『채식주의자』는 1997년에 발표한 단편 「내 여자의 열매」로부터 자라나왔다고 한다. "한 여자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식물이 되고, 함께 살던 남자는 그녀를 화분에 심는 이야기였다. 언젠가 그 변주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 했다."('작가의 말') 이야기와 상상력의 숙성 과정을 거쳐 세편의 연작소설로 출간된 게 2007년이니 십년이 걸린 셈이다. 작품을 쓰는 동안에는 손가락 관절과 손목 통증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수 없는 상황이어서 손으로 글을 써 타이핑을 부탁하거나 볼펜을 거꾸로 잡고 자판을 눌렀다는 고백도 나온다.
어떻게 해도 복기가 잘 안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다만 이렇게 말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흔들렸고, 그 여진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많이 남아 있다. 그건 범박하게 말해 이 영화가 포착해낸 삶의 강렬하고 특별한 리얼리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리얼리티는 흔히 말하듯 핍진성의 문제만은 아닌 듯하다. 「하류」의 화면에 흐르고 있는 것들은 우리가 살았으되 살지 않은 시간이며, 우리도 모르게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간 시간이다. 혹은 가능태의 시간이다.
신춘(新春)은 '새봄'을 뜻하지만, 흔히는 새해, 신년의 시작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1월이면 겨울의 한가운데인데도 그렇게 부르는 것은 조금이라도 봄을 당겨 밝고 따뜻하게 새해를 맞고 싶은 소망 때문인지 모른다. 한자의 형상도 그렇지만 음성자질 쪽에서도 신춘이란 말은 화사한 느낌을 준다. 예전, 정초의 신문이나 잡지에서 '신춘정담' 같은 꼭지는 빠지지 않았다. 지금은 왠지 구식투가 된 듯하다. 그러나 '신춘문예'만은 여전히 '신춘'의 화사한 위세를 잃지 않고 오늘까지도 하나의 고유명으로 당당하다.
「밀레니엄 맘보」가 메워질 수 없는 고독과 그리움의 이야기인 동시에, 미래가 닫혀버린 비키와 하오하오의 세대, 그 대책 없는 세대에 대한 장형(長兄)의 책임과 부끄러움, 근심과 사랑의 시선으로 찍은 영화라는 것을 이번에 다시 보며 알았다. 그러니까 "그건 십년 전인 2001년의 일이었다. 그해 유바리엔 눈이 아주 많이 내렸다." 2015년에 무협의 형식으로 도착한 「자객 섭은낭」은,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한 장면 한 장면이 최선이었다.
'창비 부설 세교연구소 임원급의 문학비평가'가 저입니다. 저는 세교연구소 회원이고, 지금은 2년째 세교연구소 이사를 맡고 있으며, 문학비평을 하고 있으니 저를 형용하고 있는 사실들은 틀린 게 없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대목은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 저는 계간지 <창비>에 글을 쓰기도 하지만, 외부 필자로서 청탁에 응해 그렇게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더 구구한 설명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저 저는 한 사람의 문학평론가입니다. 청탁을 받아 글을 쓸지언정, '오더'를 받아 글을 쓰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저 자신의 '인격'으로, '자존심'으로 지켜지고 보호받아야 할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필립 로스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소설은 그저 독자들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할 뿐이라고 답하며 자기 소설의 사회적 영향력을 냉소에 부친다. 그러나 질문이 거듭되자 그는 결국 오랫동안 여투어두었을 진심의 일단을 내비친다. 자신은 독자를 '다른 작가들이 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소설 속에 푹 빠지게 한 뒤(사실 이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독자를 소설 읽기 전의 세상으로 다시 돌려보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독자인 우리가 잠시 그의 소설 속에 머문 뒤 다시 돌아가는 '읽기 전의 세상'은 어떤 곳인가.
기실 노년의 시간에도 얼마든지 인생이나 세상의 진실에 대한 열정을 유지할 수 있으며, 영화를 보든 문학작품을 읽든 그것이 반드시 '후회나 아쉬움으로 자신을 학대하는' 경로로 이어질 일도 아닐 테다. 그러나 나 자신 그런 동력이 떨어질 수 있는 시간에 대한 불안에 휩싸일 때도 있고, 그럴 때 좋은 영화나 좋은 문학작품을 접하는 일은 뭔가 쓰라리고 외면하고픈 자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느낌은 가진 바 있다. 예술가에게 만년의 양식(樣式)이란 게 있을 수 있다면, 일개 독자나 관객에게도 그에 맞는 합당한 양식이 있을 수 있는 것일까.
짜장면 배달부의 고뇌는 많은 이들의 삶에서 반복된다. "부르기 전에 도착할 수도 없고, 부름을 받고 달려가면 이미 늦었다." 우리는 기다림을 말하는 데 익숙하다. 그것은 살아가는 일의 어떠함을 전하는 오래된 지혜의 차원일 수도 있고, 역사의 정의를 믿고 나누고자 하는 화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것은 기다림이라기보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경일 때가 많다. '제시간'은 대개 우리의 것이 아니다.
세월호참사가 국가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절망적인 확인을 넘어, 그 국가가 부추겨온 물신과 증오의 세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쪽으로 상황이 전개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기 부끄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사후 수습 과정에서 정부가 어떤 어려움을 감수하면서도 지켜냈어야 할 도덕의 최저선은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위로와 보호여야 했다. 적어도 보상을 둘러싼 이야기가 유가족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일은 철저하게 차단했어야 했다.
노모의 입에서 맥락 없는 웅얼거림만이 남게 되었을 때도, "엄마!"란 말과 "밥 좀 줘" 하는 말에는 반응을 보이셨다는 삽화는 슬프다. 어떤 망각의 위세도 지울 수 없는 삶의 근원적 지점이 '엄마'와 '밥' 두 단어일 수밖에 없는 한 세대 한국 여성의 시간이 거기 있다. 그런데 노모의 기억이 이제 그녀의 어린 시절, 그러니까 열살, 다섯살, 세살 무렵으로 돌아갔다면 어째야 하나. 아들이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어머니 역시 어린 시절 들은 이야기일 테고, 그것은 그렇게 물려받고 물려준 세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