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배운 여자'이기 때문에 나는 저학력의, 빈곤층 남성들의 젠더 감수성을 비판할 자격을 박탈당하는가? 어째서 '젠더'가 계급을 형성하고 여기에서 착취와 차별과 억압이 일어나고 있음은 은폐되는가? 다시 말하자면, 어째서 젠더의 계급-또는 여성성의 계급('창녀'와 '모성'의 스펙트럼 같은)은 계급의 문제로 논의되지 않는가? 블랙넛이나 정중식처럼, 소위 '루저' 감성의 혹은 실제로 남성성 경쟁에서 상대적 약자인 남성이 여성을 대상으로 착취나 비하, 혐오 발언을 할 때 이것이 논란이 되면 왜 그들보다 계급이 높은 여성을 기어이 '가정'하고, 여성이 반드시 약자는 아니라는 아무말 결론을 이끌어내는가?
며칠 전 정중식 씨는 특정 세력의 항의 때문에 무대에 설 수 없다는 글을 썼다. 거의 밥줄이 끊길 지경이라는 토로였다. 나는 소비자 행동에 의해 기회 자체가 차단됐다는 점에서 김자연 성우의 계약 해지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고 안타까움을 느꼈다. 논란된 창작자나 예능인에게 '기회의 차단'은 가혹하다. 그가 개털이라면 더욱 더. 나는 이 헬조선에서, 개털들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되도록 보장받길 바란다. 그 뒤 시장이나 평단에서 평가받도록 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본다. 상업적 무대의 주최 측에 대한 직접적 압력이 과하다고 느낀 이유다.
'소외된 남성' '빈곤층' '젠더 의식 부재'. 여기에서 추출해 낼 수 있는 것이 유영철까지 나아가야 한단 말인가. 이것은 우리 주변에 있는 보통 사람이 맞다. 남성 혐오도 아니다. 저 글을 읽었을 때 내가 떠올렸던 건, 중학생 때 오빠가 컴퓨터 안에 숨겨두었던 [유출] 꺾쇠가 달린 동영상, 성매매를 했다는 걸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바람에 나랑 엄청나게 싸웠던 내 친구, 아는 형이 자기 너무 힘들다면서 노래방 데려가더니 노래방 도우미 불러서 떨떠름하게 있다가 나왔다던 내 친구. 그 사람들은 유영철이 아니다.
이 문제의 핵심은 여혐을 한 중식이를 진보정당 정의당이 끌어들였단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런 논란이 일어난 후에 취한 당의 대응이다. 내가 짜증 나는 건 왜 이 사과를 정의당 '여성위원회'가 했냐는 것이다. 이거 좀 이상한 그림 아닌가? 차라리 여성위원회가 당원들의 문제 제기를 받아서 중앙당에 사과를 요구하거나 하는 그림이 되었어야 맞는 거 아닌가? 오히려 이런 그림이 문제를 더 좋지 않은 그림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