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행복을 줬던 그 이상으로 행복하길."
이수만, 박진영, 양현석, 배용준에 이어 '연예인 주식 부호' 5위다.
어딘가 질병 같은 사내였다. 열이 끓어오르고 고통을 자아내는 질병이 아니라, 별다른 징후나 증상 없이 찾아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질병 같았다. <페드라>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새엄마를 두고 분투하는 알렉시스를 연기할 때도, <싸이코>에서 이미 죽고 없는 엄마에 빙의되어 자신에게 접근하는 여성들을 도살하는 노먼 베이츠일 때도, <심판>에서 인간이라는 자기 한계에 부딪혀 자폭할 수밖에 없는 케이를 연기할 때도, 앤서니 퍼킨스는 늘 창백하고 유약하지만 치명적인 공기로 관객을 집어삼켰다.
건국 1백년도 채 안 된 사이 우리 기득권의 가치관과 행태는 천년 제국 로마의 후기를 닮아가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는 로마 공화정 당시 '개천에서 난 용' 격인 마리우스의 탄생을 기대할 수조차 없다. 그렇다고 근현대 영국 상류층에 필적할 노블리스 오블리제 개념은 더더욱 없다. 자신의 자녀들을 전쟁의 일선은 고사하고 군대에 보낼 마음조차 없다. 그런 상황에서 그저 민주주의의 퇴행이나 천민자본주의 단계의 시장 경제에 자족하며 마음 속으로 외칠 뿐이다. '이대로 영원히!'
홍봉한은 정작 사도세자가 죄인으로 죽고나서 그 아들인 세손 정조의 왕위계승도 위태로워졌을 때 외손자인 세손을 구출하기 위해서 나선 걸 보면 괜시리 홍봉한에 대한 변명을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딸을 과부로 만들고 외손자가 아비 없이 커야 하는 기막힌 상황이었다ㅠㅠ 과부조차도 개가(改嫁)를 못하는 성리학 탈레반 사대부가 지배계급인 조선시대였고 그게 아니더라도 세자빈이 세자 사후 개가라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위를 구하려고 나섰다간 집안이 망했을 거고 그 잘난 사위 따라다니다가 소속 당파가 폭싹 망할 지경이었으니;; 홍봉한 이 양반 눈물을 머금고 사위를 버리고 딸하고 외손자랑 집안을 구하는 대규모 사석(捨石) 작전을 쓴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