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양심" -이명원 문학평론가
24일 '결혼작사 이혼작곡' 2회가 방송된다.
필명이 ‘피비’가 된 이유도 범상치 않다.
안방극장에 피바람이 불 전망이다.
절필을 선언했던 임성한 작가가 5년 만에 돌아온다.
김순옥에 이어 임성한, 문영남까지 이른바 '막장 트로이카'의 귀환.
배우 성훈은 임성한 작가 드라마 '신기생뎐(2011)'에 출연했다.
시즌제가 될 전망이다.
앞서 SNS 중단 선언을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암세포도 생명 임성한의 건강 365일' 이라는 책을 냈다
"김부선, 강용석 측은 저와 이씨를 고소하겠다고 노발대발했고 저는 김부선씨에게 정말 미안했습니다”
"국민들과 직접 소통 하는 길"이라고 적었다.
"거듭 말하지만 사과할 뜻은 없다.”
과거에 훌륭한 삶을 산 지식인이 말년에 이르러 당혹스러운 주장으로 구설에 오르는 경우를 이따금 보게 됩니다.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지요. 리영희 선생의 절필 선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선생이 훌륭하니 그대로 따르라고만 한다면, 보통 사람에겐 비현실적인 조언이겠지요. 마치 어설프게 쓰인 위인전처럼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10월 초 창비 부설 세교연구소 임원급의 문학비평가와 며칠 여행을 같이 하게 됐던 한 친구의 말에 따르면, 당시 창비 핵심으로부터 그 비평가에게 창비와 백낙청을 옹호하라는 '오더'가 수차례 떨어졌다고 한다. 놀랄 일 아닌가? 아마도 그에게만 그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창비의 창비스러움은 처음엔 백낙청 개인의 권위주의적 성격 때문에 불거졌지만, 이젠 그 개인을 넘어 창비라는 조직이나 진영의 신뢰와 관계된 문제가 되었다. 작가는 사과하고 뒤로 물러났는데, 정작 창비는 사과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조직을 지키라는 지침을 보냄으로써 소위 공부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조직원으로 여기고 있음이 드러났다.
유홍준의 글이 달라졌다.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친절해졌다. 한때 강고(强固)를 넘어 일편 생경하기 했던 필봉이 어느 틈엔가 둥글어졌다. 유머에도 독성 가시가 걸러졌다. 나이도 웬만하지만 나이보다도 더 '어른'이 된 것 같다. 자신의 숙성을 스스로 대견히 여기는 듯한 자술이다. 저자의 만보완상(漫步玩賞)에 동참한 명사 문화유객(文化遊客)들의 훈수 객담도 별미다. 선뜻 길 나서지 못하는 독자는 안방에서 책을 벗 삼아 느긋이 와유(臥遊)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한국인의 특전이다.
아무리 대외적으로는 진보와 민주와 평화를 논의하고 표방한들, 자신이 직접 동원하고 광고하고 형성한, 그래서 직접 자기 자신과 관계된 권력과 자본에 대해서는 아무런 진실성과 성실성을 보일 수 없다면, 그 집단의 지식과 문학성이 도대체 무슨 소용인가? 대표 지식인 그룹이라 자처하는 집단이 자신과 관계된 공적인 문제에서 비판적 거리를 확보하지 못한 채, 대외적으로만 진보적인 의제를 주장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문제가 많은 부패한 지식-권력의 복합체일 것이다. 나쁜 권력과 폭력을 휘두르는 자가 꼭 보수를 표방하는 사람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아무리 진보적인 주제를 내세우거나 지지하는 사람이나 조직이더라도, 실제로는 얼마든지 폭력적이거나 기만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백낙청이 정점에 있는 창비 시스템이 바로 그 행태를 보인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실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