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글도 함께 공개됐다.
대니 로즈는 이런 인종차별을 "일상적"으로 겪는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겐 사활을 거는 싸움이다
지난 몇 주 성가시리만치 문재인 정부의 새 내각 인선을 둘러싼 청문회가 이어졌다. 새 정부의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될 인물의 면면을 헤집고 고발하면서 적임인지 아닌지 시비가 뜨거웠다. 정치적으로 큰 역할을 하게 될 인물이, 누가 봐도 본보기가 될 만한 인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그럴듯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모범적인 인격을 지닌 이들에 의해 세상이 좌지우지된다는 선량한 믿음 속에는 어딘지 구린 구석이 있다. 의롭고 떳떳한 인물을 정치지도자로 뽑아야 한다는 원칙은 그럴듯하지만 정치가 인격에 좌우되는 것이라고 볼 이유는 전연 없기 때문이다.
1991년 4월 26일, 시위에 참가한 한 학생이 전투경찰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학생은 바로 명지대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강경대였다. 강경대의 죽음은 내가 어떻게든 버텨보려던 군 복무의 당위성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우리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라는 객관적 사실은 당시 내가 해야만 했던 전투경찰의 임무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굳어지게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시청에서 시위 진압 대비 근무를 서다 그곳을 나와 강경대 타살사건 대책위원회가 있던 연세대학교로 가서 양심선언을 했다.
징병제를 악용하는 의무경찰제도는 진작에 폐지 됐어야 했다. 한국의 의경은 다른 징병 국가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괴이한 제도이다. 싼값에 이만 여명의 인력을 동원하여 집회를 방해할 수 있는 곳이 한국이다. 예를 들자면 반 트럼프 시위를 저지하기 위해 동원되는 미국경찰은 경찰노조가 있을뿐더러 야근수당까지 지급된다. 한국의 의경은 국방의 의무라는 미명 아래 현역 군인과 똑같은 십여 만원의 월급으로 집회저지에 동원되고 있다.
위헌의견은 영창제도의 뿌리를 일제강점기 일본 육군의 '육군징벌령'에서 찾고 있다. 하지만 현재 일본 자위대는 영창제도와 같은 징계제도를 유지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과 독일 등 인권선진국에서는 군 및 경찰 등에서 영창제도를 찾을 수 없다. 일제의 잔재인 영창제도를 아직도 유지하는 우리 군과 이를 비호하는 헌법재판소는 일제에 항거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말하는 우리 헌법을 무시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