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SNS로 출마 선언하며 대선에 본격 등판한 이재명 경기도지사.
강남은 진짜로 나랏돈을 들여 집중해 개발한 곳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나의 인관관계가 내 시력의 캄캄한 상황과 큰 상관관계가 없는 것을 보면 그것은 해부학적인 안구의 상태나 혹은 그것과 관련된 기관들의 생리학적 활동성과 직접적인 관계를 논한 것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그것이 '만남'이라고 하는 물리적 거리의 축소 혹은 그에 준하는 여러 통신수단의 연결횟수를 의미한다면 시각의 장애는 관계의 형성이나 유지 혹은 발전에 부정적 요인이 되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기 위해서는 그 사이를 이어주는 이동의 수단이 필요한데 시각의 장애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선택할 수 있는 이동의 경우의 수를 현저히 축소시키는 작용을 동반한다.
그 이유가 무엇이건, 정부의 잦은 입시제도 변경이 공식적으로 표방했던 주요 목표는 늘 분명했다. 국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입시지옥'과 '사교육 공포'로부터의 해방에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그런 고상한 목표를 가진 일이 매번 실패로 돌아갔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고도 분명하다. "바보야, 문제는 '임금 격차'야!"
정부가 학계를 통해 기업을 지원하려고 해도 이것이 현재의 제도적 문제, 혹은 다른 원인에 의해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공대 교수들의 산업 경험 부재에 기인한다. 대부분 교수들은 미국에서 석·박사를 받고, 몇 년의 포닥 과정(post-doctor)을 거쳐 교수로 임용된다. 산업과의 교류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산업계의 실제 요구와 문제를 파악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연구주제도 외국 저널에서 찾게 되고, 우리 산업체들의 현실과도 괴리가 발생하게 된다.
다섯째, '시험을 위한 삶'에서 '삶을 실험해볼 수 있는 교육'으로의 전환을 시도한다. 싱가포르는 학습과 삶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을 매우 중요시했다. 싱가포르는 이런 전환을 위해 교사들이 교육과정을 개발할 때 전체의 20%를 여백(White Space)으로 비워두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도 2015개정교육과정을 통해 20% 학습량 감축을 시도했지만 형식적 감축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어 싱가포르와 같이 20% 여백을 가질 수 있기까지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학계를 비롯하여 사회의 다양한 조직에서도 우리 교육의 큰 흐름을 형성했던 5.31 교육개혁을 반추하면서 새로운 교육개혁 패러다임을 탐색하기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진행하고 있다. 학회, 진보진영, 보수진영이 기반하고 있는 교육적·정치적 관점과 배경에 따라 새패러다임은 약간의 차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20년 전인 1995년처럼 지금이 새패러다임을 필요로 하는 전환기라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 공감하고 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 결정적인 순간 어떻게 행동했을까? 마지막까지 배에 남아 최후를 맞는 영화 속 선장이 될 수는 없다면, 나보다 승객 목숨을 먼저 생각해 탈출시키는 영웅적 선원이 될 수는 없다면, 최소한 희박한 확률의 대형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회사 이익을 희생하도록 만드는 사장이나 직원은 될 수 있었을까? 그것조차도 쉽지는 않았으리라는 게 나의 솔직하고 좌절스러운 답이었다. 여전히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은 '먹고사니즘'이다. 안전이나 직업윤리보다는 속도와 회사 이익과 생존이라는 가치에 우선순위가 있다. 이를 거슬러 행동하려면 영웅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순응해도 문제는 있다. 운이 없으면 대형사고를 만나 순식간에 악마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