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L 소녀‘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다.
차은택은 한때 뮤직비디오의 모든 것이었다. 그의 이름에서 '미르재단'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이 뮤직비디오들을 한 번 떠올려보시라. 1999년 모든 뮤직비디오 상을 독식하다시피 했던 이승환의 '당부'. 양조위와 전도연과 류승범이 소매치기로 등장한 '더 네임'(The Name), 장진과 김현주가 애틋한 사랑을 나누던 브라운 아이즈의 '벌써 1년'. 그가 박근혜 정부 아래서 맡은 직책들을 보라. 인천아시안게임 영상감독, 밀라노 엑스포 전시관 영상감독, 창조경제추진단장,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
한글로 '이대가(이대 앞 거리)'라고 쓰여 있는 귀여운 간판. 십여 개의 점포가 모여 작은 거리처럼 꾸며놓고 한국식 떡볶이와 김밥 등을 팔고 있었다. 요즘 서울 거리를 점령하다시피 한 중국인 관광객들의 '한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줄 먹을거리인가? 중국 현지에서 확인하는 한류 열풍. 근처에는 이니스프리, 에뛰드하우스 등 한국 화장품 매장들도 성업 중이었다.
썰물 때는 세계에서 제일 길다는 23마일의 해변 모래사장을 자동차로 달려볼 수 있다. 타원형으로 둥근 수평선이 온 시야를 가득 채운다. 보이는 것은 모래사장과 드넓은 바다 뿐. 바다가 내 가슴 속으로 쏟아져 들어올 것만 같다. 피스모비치에서 이틀을 보내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아름다운 자연 환경이나 이런저런 구경거리가 아니라 바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선착장 끝까지 가니 과연 백여 마리쯤 되는 바다사자가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나무 선착장의 좁은 공간 위로 저희들끼리 몸을 포개고 또 포개면서도 불편한 기색 하나 없이 느긋하기만 하다. 그러다 다른 놈에게 밀려 바다로 떨어지면 유유히 물장구를 치다가 도로 올라가 남의 몸뚱이 사이로 다시 비집고 들어간다. 덩치 큰 바다사자 틈바구니에 물개 몇 마리도 끼여 있다. 이들과 손 닿을 듯 가까운 난간에는 바다사자와 비슷한 숫자의 사람들이 몰려서서 그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들은 산불이 나도 일부러 끄지 않는다. 건조한 시기에 바람에 의해 나무에 불이 붙는 것도 자연 현상의 일부이고, 인간이 개입할 일이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오랜 가뭄 때문에 요즘 들어 부쩍 산불이 많이 난다. 우리가 요세미티를 관광한 이날도 산불이 민가를 덮쳐 동네 주민들이 대피하고 집들이 전소되었다는 소식이 TV 뉴스에 나왔다.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병풍처럼 하얀 바위산 아래로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녹색의 침엽수림이 푹신한 융단처럼 깔려있다.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나무숲은 더욱 울창해진다. 그렇게 한 30여분쯤 달렸을까. 넓은 주차장과 예쁘장한 리조트, 콘도가 있는 곳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이 계곡의 진짜 용도를 깨달았다. 이곳은 겨울이면 세계 최고의 강설량을 자랑한다는 그 유명한 솔트레이크시티 스키장이 있는 곳이었다. 하늘을 찌를 듯 그림처럼 서 있는 초록색 침엽수들 사이로 잘 닦인 스키 슬로프가 수십 개는 되어보였다.
서쪽 방향으로 도시를 벗어나자마자 일대 장관이 펼쳐진다. 소금, 소금, 소금. 좌와 우, 앞과 뒤, 보이는 모든 것이 새하얀 소금이다. 말로만 듣던 거대한 솔트레이크 사막(The Great Salt Lake Desert)의 장관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다. 우리 차의 속도가 시속 90마일(약 140km/h)이었는데 이 속도로 한 시간을 달리는 동안 주변이 온통 소금밭이었다.
에너지솔루션아레나와 솔트팰리스 컨벤션센터 사이를 무단 횡단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경찰이 임시 횡단보도를 만들어 지나가는 차를 멈추고 사람들을 건네주는 것을 보았다. 정부가 사람들에게 '우리의 규칙에 따르라'고 강요하는 대신 사람들의 요구를 수용해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준 것이다. 여전히 민(民)을 대하는데 관(官)의 권위주의를 내세우고, 민원인의 편의보다 까다로운 행정 절차를 앞세우는 우리나라의 행정 기관들이 보고 배워야 할 부분이다.
미국에서는 사이드 디시를 추가하면 추가 요금을 받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조금씩 아껴 먹었는데, 한국과 다름없이 반찬을 그냥 더 갖다 주는 것을 보고 무안한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손님은 대체로 한국 사람들이 많은 편이었지만, 백인 노부부나 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흑인 부부 등 외국인 손님도 적지 않아 좀 놀라기도 했다.
유타는 미국의 다른 지역들에 비해 우리에게는 덜 알려진 곳이지만, 알면 알수록 참 묘한 매력이 있는 곳이었다. '구세주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간다'고 가르치는 다른 기독교 종파들과 달리, '살아생전에 자신이 행한 행동'을 중요시하는 교리 덕분인지 이곳은 미국의 다른 곳에 비해 범죄율도 현저히 낮고 사람들도 친절하다. 솔트레이크시티에 머무는 동안 나는 종종 늦게까지 홀로 쏘다니다가 밤 10시가 되어서야 숙소에 들어가곤 했는데, 여자 혼자 늦은 밤 인적이 드문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도시는 미국 내에서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정제하지 않은 통곡물을 먹는 것은 모르몬교의 창시자인 조셉 스미스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스미스가 교시한 '건강 수칙'에는 이밖에도 고기 섭취를 줄이고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으라는 것, 술과 담배를 금하라는 내용도 들어있다. 덕분에 모르몬교도들이 주로 살고 있는 유타 주(전체 인구의 90% 가량이 모르몬)의 암 발생률은 미국 평균보다 남자는 35%, 여자는 28%나 낮으며 심장병 환자도 절반 이하라고 한다. 유타 사람들, 풍부한 홉의 향이 살아있는 진짜 맥주 맛은 영영 모를 테니 그거 하나는 좀 안쓰러운 걸.
붉은 카펫이 깔린 실내에는 한국의 오락실 게임기처럼 생긴 수많은 게임기가 가득했다. 모두 버튼을 누르면 따거나 잃은 액수가 화면에 숫자로 표시되는 자동화된 방식이다. 손으로 당겨서 동전이 우수수 떨어지는 슬롯머신은 추억의 영화 속에나 등장할 뿐, 이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게임기의 종류도 무척 다양했는데, 심지어 드라마 '섹스앤더시티'에 나오는 네 명의 여주인공을 소재로 하는 게임도 있었다. 딜러들이 손님을 상대로 카드 게임을 하거나 룰렛을 돌리는 것을 구경하다가 다시 거리로 나왔다.
공항 활주로를 따라 느리게 움직이던 비행기가 어느 지점에 딱 멈춰 섰다. 이륙 직전의 순간이다. 잠시 후 '위잉' 하는 커다란 소리와 기체 전체가 떨리는 진동과 함께 급격하게 출력을 올리며 무서운 속도로 앞으로 달리기 시작한 비행기는 이내 거짓말처럼 가볍게 날아오른다. 1초, 2초, 3초....... 공항 건물은 물론이고 도시 전체가 순식간에 멀어지면서 고층 빌딩들이 장난감처럼 작아졌다. 해외에 나가기 위해 비행기를 탈 때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 중 하나다.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듯 가장 짜릿하고 스릴 넘치는 순간.
열두 살 어린이가 쓴 것이지만 이것은 엄연히 시이고 예술이다. 예술의 본질은 내면의 표현이다. 예술의 힘은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진실에서 나온다. '내가 이렇게 표현하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눈치를 보는 것은 예술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가면을 썼기 때문이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과격한 장면이 나오는 것과, 실제 현실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당신은 누군가가 죽이고 싶도록 밉거나, 타인에게 해를 끼치고 싶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는가? 삶의 복잡다단한 감정과 아픔을 마음껏 표현하고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이 예술이다. 작가가 미성년자라고 해서 이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마녀사냥하듯이 이 어린 작가를 몰아붙이고 손가락질하는 '패거리'들 중에, 이 꼬마 작가만도 못한 사고 수준을 가진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